7화-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

두려운 마음에 연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꽁꽁 묶어놓은 듯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섬칫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한발짝 한발짝 걸어오던 아이의 고개가 갑자기 꺾여 머리가 어깨에 닿아버렸다.

그러더니 괴기스럽게 미소를지으며 끼긱거리며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온몸을 비틀며 크기가커졌다.

마치 몸에서 무엇이 자라듯 살갗이 찢어지며 크기를 키워나갔다.

아까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흉측한 모습을 한 귀신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자 연지는 눈을 꼬옥 감았다.

제대로 생각도 할 수 없는 공포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온힘을 다해 눈을 감는 것 밖에 없었다.

백지장이 된 머릿속에 의문스러움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몇 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분명 고통이 느껴진다던가 더욱더 극한의 공포가 다가온다던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조심스레 꽈악- 감고 있었던 눈을 뜨니 검은 수트에 감싸여진 슬림하면서도 탄탄한 등이 보였다.

한울이 조종하고 있는 듯한 푸른 빛이 도는 쇠사슬같은 것이 그 커다란 귀신을 꽁꽁 감싸고있었다.

"끄어어-"

귀신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자 화가난건지 이상한 소리를 질렀댔다.

깜짝놀란 연지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검은색 옷자락을 꼭 쥐었다.

놀란 듯 움찔 올라갔던 어깨가 다시 내려가더니 평소와 다정없는 얼굴을 한 한울이 뒤를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한 한울은 수트 안 주머니에서 흔한 스마트폰같이 생긴 검은 기계를 꺼냈다.

"거참, 엄청 시끄럽네."

화면을 몇번 톡톡 치고는 귀신이 있는 쪽을 향해 화면을 돌렸다.

그러자 무섭게 생긴 검은색의 작은 문이 열리더니 소름끼치는 비명소리를 내는 귀신을 삼켜버린 후 쾅!하고 문을 닫고는다시 사라져버렸다.

"됐다. 이제 괜찮아."

"아....."

한울의 말에 무슨 힘이라도 있는 듯 괜찮다는 한 마디에 맥이 탁 풀려버린 연지는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래도 빨리 나아서 다행이다. 의사선생님도 이렇게 빨리 낫는 거 신기하다고 몇 번이나 그러셨다니까?"

운전대를 잡은 정원의 다정한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원래 건강하잖아. 잘먹기도 하고."

원래 하고 있었던 깁스를 푸르고 가벼운 반깁스를 하게 된 진욱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더 걱정이었지. 세상에 어렸을때부터 계단에서 굴러도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합숙 갔다가 다쳐와서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도대체 뭘 어디서 어떻게해야지 그 튼튼한 애 다리가 그렇게 똑!하고 부러질 수가 있어? 나는 또 네가 다시는 배구 못하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그때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정원이 약간 흥분해서 말을 뱉어냈다.

"말씀들였잖아. 밤에 혼자 놀러나갔다가 바위로 떨어져서 그런거라고."

진욱은 그렇게 말하면서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때 만났던 자신 또래의 모습을 한 '그것'을 떠올렸다.

장난치는 것 좋아하고 사람들 좋아하는 녀석은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청 기뻐했다.

처음 만났지만 금새 마음을 열고 이런저런 이야기까지 했었었다.

하지만 같이 놀다가 녀석이 엄청난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결국 다리까지 아작났던 걸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싫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몸관리 못한다고 코치님에게 혼나고 울며불며 달려나온 어머니를보고 어떻게 다쳤는지 이유를 고민하고 설명하느라 꽤 진땀을 빼야 했었던 일은 분명 좋은 일의 범주에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그나저나....

'요번엔 내가 미안했다. 좀 더 힘 조절하는 법을 매워서 내가 꼭 다음에 널 찾으러 갈게!'

해맑게 웃으며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안그래도 요즘 복잡한데 귀찮은 게 하나 더 붙어버리면 곤란했다.

그 엄청난 힘을 제대로 조절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할 것 같기도했다.

진욱은 심란해지는 마음에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제 허벅지를 두드렸다. 그러다 스르르 닫히는 연지네 집 문을 발겨난 진욱의 눈이 살짝 커졌다.

"어, 연지 지금 들어가나보네? 조금 늦은 거 아니니? 아까 아빠가 연지가 좋아하는 케이크가게 케이크 선물받았다고 연락왔었는데 같이 먹자고 하기에는 늦나?"

"아아.. 혹시 피곤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내가 가져다 줄게."

"그래. 아, 그리고 연지 내일 먹을 밑반찬 좀 만들어서 챙겨줄테니까 그것도 가져가. 그래도 내가 가져가는 것보다는 네가 갖다주는 걸 더 편해할 것 같으니까. 애 쉬기도하고 공부도 해야하는데 괜히 나 가면 방해일 수도 있으니까."

진욱은 '너는 막대해도 되니까.'라고 장난스레 말하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것저것 뭘 싸줄지 중얼거리는 자신의 엄마를 보면서 '그럼 늦지 않을까?'라고 내뱉으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항상 바라왔던 이 따뜻함 역시 자신에게는 매우 소중했고 또 지키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힘이 풀린 연지를 끌다 싶이 방으로 데려와 침대 헤드에 기대게 해 놓고는 마실거라도 가져다 주려는데 연지가 한울의 옷자락을 다시 한 번 꼭 쥐었다.

"알았어, 어디 안 갈게."

연지의 눈에 어린 두려움을 읽은 한울은 그렇게 말하고는 둘이 써도 넉넉할 것 같은 커다란 침대 위에 걸터 앉았다.

그제서야 옷에서 손을 뗀 연지가 한울에게 물었다.

"아,아까 그건 뭐에요? 전에 말한 제 영혼을 가져가려는 뭐, 그런거에요?"

"아니야. 그리고 내가 네 냄새를 억눌러놨는데 그런 하급의 귀신이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을리가 없어. 아까 너희 학교에 있던 지박령들한테 물어봤을 때 저런 귀신 얘기는 없었으니까 아마 모든 걸 잊고 악만 남아서 떠돌다가 우연히 널 발견한 걸 거야."

"지박령이요? 그것도 귀신 아니에요?"

연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귀신 안에 속한다는 건 같지만... 인간들도 같은 인간인데 천차만별이잖아. 귀신도 마찬가지야. 물론 시간이 되면 돌아가야 한다는 건 마찬가지지. 예외 사항같은 건데 조항도 많고 복잡하고 인간들 기준에서는 이해가 안될거야. 한마디로 하자면 그 예외사항들은 딱히 위협이 되지 않아서 눈감아 주는 경우도 있고."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해가 될 귀신이 혹시 있나 알아본거야. 다행히 없더라고. 오늘은 정말 재수가 뭣 같아서 운이 없이 걸린 것 뿐이야."

한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연지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아까 그 귀신이 하급 귀신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그렇다면 저를 노린다는 귀신들은 저것보다 훨씬 더 무섭다는 거 아니에요?"

아까 그 모습을 봤을 때도 심장이 덜컹하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는데 저것보다 더 흉측한 모습을 보게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한울이 '글쎄...'라며 말을 흐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까 그 귀신보다 훨씬 강한 녀석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사실이긴하지. 하지만 아까처럼 그렇게 흉측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낮아."

"네?"

"상급의 귀신일수록 자신을 숨기는 것에 능해.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기다릴 줄도 자세를 낮출 수도 있지. 그리고 외적인 부분이 오히려 보기 좋은 경우가 많아. 사람을 홀린다는 귀신들이 원래 상급에 속하거든. 그런 거 있잖아 너무 아름다워서 다가갔다가 죽게만드는 요정이라던가하는 이야기 말이야. 얘네가 상급이야. 적인지 아군인지,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인지 이득을 줄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지."

한울의 얘기를 들은 연지가 시무룩해지더니 축 쳐진 모양새가 되었다.

"뭘 그렇게 걱정하고 그래? 내가 착!하고 달라붙어있으면 그럴 걱정 없어요! 응?"

한울이 개구지게 웃으며 연지의 옆에 앉아서는 쿡!하고 연지의 볼을 찔렀다.

"진짜죠?"

"그럼~ 그리고 아까 봤지 내가 진짜 멋있게 귀신 처리하는 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싸우듯 자세를 취하는 한울을 보고 연지는 결국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니까 조금 낫네. 나 여기 있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씻고 나와."

유난히도 하루가 길었을 연지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하자 연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가지를들고 욕실로 향했다.






띠디딕-

익숙한 듯 현관문 도어락을 풀고 들어온 진욱은 제일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챙겨준 밑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 양이 그려진 귀여운 분홍색 박스에 담긴 초코케이크를 꺼내 작게 한 조각을 잘라 쟁반 위에 올렸다. 흰 우유와 포크까지 챙기고서는 2층에 있는 연지의 방으로 향했다.

달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진욱을 보고 괜히 화들짝 놀란 한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다가와 침대 옆 작은 탁자에 쟁반을 올려놓은 진욱이 고개를 돌리자 한울과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모양이되었다.

'.......'

그때 진욱이 갑자기 확 인상을 구겼다.

'뭐지?'

그에 당황한 한울의 표정 역시 구겨졌다.

분명 인간, 그것도 죽을 날이 아직 먼 인간에게는 자신이 보일리가 없었다.

무언가 이상한 마음에 말이라도 해보려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연지가 나왔다. 그러자 아까 그런 표정을 언제 지었냐는 듯이 포근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응? 무슨 일이야?"

"새삼스럽게.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야 보는 사이야?"

무언가 과시하듯 자랑하는 듯한 말에 한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뭐야."

"엄마가 너 갖다주라고 밑반찬 좀 싸주셔서. 그리고 양양 베이커리 초코케이크도 가져왔어. 저기 있으니까 먹어."

"우와~"

그러자 연지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케이크 쪽으로 달려오다가 한울을 보고 멈칫했다.

"왜 그래? 안 먹어?"

"응? 아, 먹어야지."

곤란한 듯 살짝 눈동자를 굴리다가 쟁반을 드는 연지를보고 한울은 자신은 밖에 있겠다고 말한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미안한듯 자신쪽을 몇 번 흘끔거리는 연지였는데 계속 뭐하냐는 진욱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는 진욱의 옆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녀가 유별한데..."

이 여름날에 딱 달라 붙어서는 맛있냐는 진욱의 물음에 케이크 한 조각을 진욱의 입에 넣어주는 행태를 본 한울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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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5 10:13 | 조회 : 1,53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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