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러니까

"정말 혼자 괜찮겠니?"

진욱의 엄마 정원이 연지의 손을 꼬옥 잡아오며 물었다.

곧 쉰이되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리호리하고 어여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진짜 괜찮아요. 오늘도 푹 쉬었고요."

그런 정원을 보면서 연지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어젯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걱정이 되었는지 밤에는 마음의 안정에 좋다는 아로마 향초를 피워주셨고, 아침에는 몸보신에 좋다는 음식들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주었다. 점심을 먹고는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약을 짓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불안한 것인지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남편 상민의 누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졌다고해서 급히 내려가는 거라 섣불리 동행하자고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느껴져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이 아려오기도 했다.

"그만하고 가. 들어가서 쉬라고 해야지. 계속 세워둘거야?"

보다못한 진욱이 조수석의 문을 열고는 안절부절하는 정원의 팔을 잡아 당겼다.

"어머어머.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괜히 공부한다고 늦게 자지 말고 이번주는 그냥 푹 쉰다고 생각해. 밥도 잘 챙겨먹고. 응?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네!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진욱이 문을 닫는 순간까지 걱정을 멈추지 않는 정원에게 연지가 손을 흔들며 웃어보였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걸음을 옮겨 뒷자석의 문을 열려고 하던 진욱이 몸을 돌려 연지를 보며 말했다.

"내가 애냐? 이모 말씀으로도 충분하거든. 게다가 너 아까 우리 집 들어가서 불 다 켜놓고 혹시 모른다고 집 뒤진 거 기억 안나? 너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알았다."

정원과 얘기할 때와 다르게 장난스레 인상을 찌푸리며 툴툴거리는 연지였다. 진욱은 피식 웃으며 그런 연지의 머리를 툭 하고 한 번 치고는 조수석에 올랐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닫히자 검은세단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차가 사라지는 것까지 본 연지가 바로 옆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막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보니 진욱에게서 온 메세지였다.

[엄마 그냥 걱정하시는 거다. 지나가던 고양이가 쓰러져도 우실 분이라는 거 알지? 괜히 쓸데없이 신경 너무 많이 쓰시는 거 아니냐면서 신파극 찍지 말고 걱정시키기 싫으면 밥이나 잘 먹고 있어라.]

툭툭 던지는 말 같지만 자신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배려하는 진욱의 마음이 느껴져 연지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진욱이도 서연이도 자기와 친구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 건지 보호자라고 되는양 항상 챙겨주었다.

[글쎄... 나는 걱정하셔도 너는 쓰러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실 걸? 나중에 이모가 안 돌봐준다고 괜히 상처받지 말고 너나 몸 조심해라.]

장난스레 답장을하고는 기분 좋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분명 자신의 것이 아닌 검은 양말을 신은 두 발이 보이자 연지는 잔뜩 얼어버렸다.

한쪽 발만이 신발에서 나와 거실 바닥을 밟은 채로 얼어버린 연지가 오래사용하지 않았던 기계처럼 끼긱거리며 고개를 들자 익숙한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안녕! 어제 봤는데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지?"

붉은 입술의 입꼬리를 올리며 위험하게 웃고 있는 것은 분명 골목길의 그 사내였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들어와."

연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자 사내는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양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가면서 말했다.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내를 보며 연지는 당황했다.

도대체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주인행세까지 하다니....

"그나저나 너 문단속 좀 철저히 해야겠더라. 아까 네 친구가 살펴보는 것 같기는 하던데 창문은 안보더라고. 그렇게 열어 놓으면 너 위험하다? 아무리 2층이라도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어올 수 있어요~"

허허.

연지는 기가찼다.

지금 위험한 짓은 혼자 다 해 놓고서는 태연하게 자신의 걱정을하고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에요?"

다른쪽 발도 거실로 들여 놓은 연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사내를 바라봤다.

"어제도 말했잖아. 저승사자라고."

사내가 예쁘게 씨익 웃어보였다.

"그게 말이 되요?"

"왜 말이 안되지?"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연지를 바라봤다.

"어제도 봤잖아. 네 앞에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거. 그리고 네 친구가 왔었던 것도 다 알고 있고. 너랑 네 친구랑 아무 것도 없는 거 확인했는데 여기 들어와있잖아. 이게 인간이 쉽게 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해?"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으며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해오는 사내의 말에 연지가 입을 앙 다물었다.

확실히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가능한 범주의 일을 뛰어넘은 것은 사실이니, 믿고싶진 않지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제,제가 죽을 때라도 된 거에요?"

만약 진짜로 자신의 앞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저승사자라면 이곳에 왜 온 것일까 생각하던 연지는 결국 자신이 죽을 때가 된 것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

멀쩡히 서 있다가 뜬금없이 얼굴이 파래지면서 내뱉는 소리에 남자가 기가차다는 듯 '허-!'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저승사자가 찾아온 이유라면 하나 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연지의 말에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하튼 티비나 책이 애들을 다 망쳐놓는다니까? 주로 밖에서 활동할 때에는 죽은 영혼들을 데려오는 일을 하긴 하지만 그거 말고도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죽은 영혼 데려와야지, 온갖 서류 작성해야지, 행사라도 있으면 동원되야지, 악귀 잡아가야지. 저승사자는 그 망할 옥황상제랑 계약 한 번 잘못 맺어서 무보수로 이것저것 별 고생 다하는 저승 공무원이라고 부르지만 노예에 가까운 존재들이란 말이야. 아, 갑자기 그 놈 얘기하니까 열이 오르는 것 같네."

흥분한 듯 언성을 높이던 사내는 당황하는 연지의 표정을 보고는 심호흡을 하며 물 한 방울 안 뭍혀봤을 것 같은 커다란 손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미안, 흥분했다. 여튼 네 목숨 받아가려고 온 거 아니니까 괜히 겁먹지 마. 어제도 말했잖아 너 해치러 온 거 아니라고."

"그럼 왜....?"

연지의 질문에 사내는 천천히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이분들 때문에."

탁자 위에 올려진 사진을 가리키며 사내가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연지의 눈이 커졌다.

액자에는 사진이 오래된 것을 보여주는 유행이 지나보이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는 두 남녀가 보였다.

노란 꽃들 사이에 이제 막 걸어다닐 수 있을 법한 작은 아이와 함께한 둘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희... 부모님 때문이요?"

떨리는 목소리를 누르려고 애쓰며 물었다.

"응. 이분들이 나한테 부탁을 하셨거든."

사내는 부드러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빠 엄마는 먼저 가니까 딸은 자신들 몫까지 더 행복하고 더 즐기다가 할머니가 된 먼 미래에 다시 만나고 싶다고."

"......"

연지의 두 눈이 촉촉히 젖어들었다.

죽어서까지 자신을 걱정하셨을 두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견뎌내려면 힘들텐데 좀 지켜달라고."

"....."

"원래는 들어주면 절대 안되는 부탁이거든. 사람의 죽고 사는 운명에 관해서는 한낱 공무원 따위인 내가 관여해서는 안돼는 일인데, 약속을 해버려서 말이야."

눈물을 참기 위해서 입술을 꾸욱 깨물었지만 눈물을 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앞에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펑펑 울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물고 있는 입이 찢어서 피가 맺혔다.

안쓰러운 그 모습을 본 사내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연지가 물고 있는 입술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리고는 연지를 폭하고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울어도 돼."

그 목소리가 뭐라도 되는 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지는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그러니까 내가 온 거잖아."

사내가 연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의지하라고."

꺼억꺼억 소리까지 내면서 울면서 흘러내리는 콧물을 자신의 팔로 대강 훔쳐내는 모습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앞으로는 내가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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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5 10:09 | 조회 : 2,148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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