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안녕 아가씨?

"야. 정연지 집에 안 갈 거야?"

툭툭 자신을 치는 느낌에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자 팔짱을 끼고 자신을 내려답고 있는 서연이 보였다.

"뭐야...."

형광등빛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비비자 쯧쯧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긴뭐야. 야자 끝났어. 집에 가야지!"

이미 짐을 다 싼 것인지 분홍생 가방을 메는 서연을 보며 연지도 슬금슬금 책들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화장은 언제 한거야?"

자신이 잠들기 전에 눈을 감으며 봤던 얼굴과는 다른 모습의 친구의 얼굴을 보며 연지가 장난스레 물었다.

어찌나 정성스레 화장을 한 것인지 한듯 안한 듯 촉촉한 피부며 탱글탱글한 입술이이며 도무지 고3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 하기는! 너가 침 질질 흘려가면서 잘 때 한 거지. 사진찍어서 대문짝만하게 인쇄해가지고 교문에 붙이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다. 누가 잡아가도 모르게 자더라."

톡 쏘아붙이듯이 말하는 서연의 말투에 연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왕 챙겨주고 걱정해 줄 거 말 좀 예쁘게 하면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네가 김훈한테 하는 것의 반의 반만이라도 한다면 나는 너를 천사라고 부를텐데."

"하하. 부러워 하는 거야?"

쯧쯧 혀를 차면서 가방을 메는 데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둘의 뒤에 다가온 훤칠한 키에 단정한 외모를 가진 훈이 두 눈을 곱게 접으며 웃어보였다.

"훈아!!"

서연은 반사적으로 콧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훈이의 팔에 찰싹 들러붙었다.

"오늘은 안 힘들었어? 공부하기 힘들지?"

"아니아니~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너 보고싶어서 많이 힘들었어."

요즘 드라마에서도 쓰지 않을 삼류영화의 대사와 콧소리에 소름이 돋은 연지는 실내화를 던지듯이 실내화주머니에 구겨넣었다.

둘다 꽤나 도도하게 생겨가지고는 둘이 하는 짓을 보면 닭살이 돋다 못해 오그라들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다정한 눈빛으로 서연의 머리를 넘겨주며 속삭이는 훈을 보는 순간 연지는 찌푸려지는 인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나 먼저 간다.... 으억!"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연지를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서연이 신기하게 알아채고는 턱하고 가방을 잡아챘다.

그 힘에 연지는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끙끙거렸다.

"뭐 먼저 가. 같이 가야지. 오늘 한진욱 그 녀석도 없잖아."

"뭐야. 그게 어때서."

무지막지한 손아귀힘에 잡힌 자신의 가방을 빼낼려고 안간힘을 쓰며 끙끙거리며 연지가 말했다. 도대체 매일 몰래 녹용이라도 먹는건지, 아니면 자신몰래 어디 특수부대에서 훈련이라도 받았던 것인지 이놈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너네집 가는 길 위험하잖아. 좋은 동네 가는 길이 왜 그런지... 여튼 우리가 데려다 줄테니까 떡볶이 먹고 같이 가자. 어차피 주말이니까 좀 늦게 들어가도 상관 없지?"

"그래. 데려다 줄테니까 같이 가자."

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화들짝 놀란 연지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하는 짓이 어린애잖아. 게다가 맨날 사고나 달고다니고."

"뭐 뒤엣 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괜찮거든. 나 혼자 잘 갈 수 있어."

연지의 말에 서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연의 얼굴을 본 연지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그럼 뭔데?"

서연의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서 있었다.

"너희 둘 사이에 껴 있느니 그냥 귀신이랑 같이 있는 게 훨씬 나아서 그런다! 안그래도 솔로인거 서러워죽겠는데 너희 둘 사이에 껴서 어떻게 걸어. 됐어, 됐어. 학교랑 집이랑 먼 것도 아니고 무서우면 너나 진욱이나한테 연락할게."

서연은 그 말에도 인상을 피지 않고 뭐라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자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훈의 손길에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문을 나와서 5분 정도 걷던 연지는 와글와글한 아이들무리에서 떨어져나가 사람이 없는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에서와 다르게 펄펄 나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곧 터벅터벅하는 자신의 운동화가 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확실히 서연이 걱정할 만한 곳이었다.

스릴러 영화에서 살인범이 사람을 죽이는 골목과 매우 흡사한 이곳은 예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들과 같이 재개발을 하려고했으나 여러사정으로 개발이 중지되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들만 남아있었다.

높은 담벼락이 이어져있는 이 길은 딱히 불량배가 출현하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있는 가로등과 적막감이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했다.

빨리가서 쉬자는 생각으로 연지가 바닥을 보며 속도를 내서 걷는데 순간 싸한 느낌이 들어 앞을 바라보니 어떤 형체가 보였다.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곳에 있기에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사람이 윤곽이었다.

".....!"

원체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에 사람이, 그것도 가만히 담벼락에 기대어있다는 사실에 머리에는 수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타났다.

처참히 살해된 자신의 시신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경찰관과 과학수사대, tv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자신의 얼굴과 그 슬픈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슬퍼해줄 몇몇의 소증한 사람들...

끔찍한 생각들이 당장이라도 여기서 뒤 돌아서 뛰어가고 싶었지만 괜한 사람을 건드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쉽게 행동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분명 체육은 거의 기본점수만 받는 자신이 최대한 속력을 낸다 해도 무사히 이 골목에서 벗어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결국 연지는 자신의 가방끈을 야무지게 꽉 쥐고서 더욱 속도를 높혀 걸었다.

애써 신경쓰지 않는 척 하며 걸었지만 그 검은 형체의 앞을 지날 때, 긴장으로 인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부디 저 남자에게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다행히도 자신이 남자의 앞을 지나서 꽤 걸었는데도 발자국소리는 커녕 작은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드는데...

"드디어 찾았네. 안녕? 오랫만이네 아가씨."

분명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를 한 커다란 남자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래? 괜찮아?"

눈 앞에서 몇번 손을 흔들더니 고개를 숙여 자신과 눈을 맞추려는 순간 연지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아아!! 읍....."

하지만 그 마저도 커다란 손에 의해 순식간에 제지당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연지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까 서연이가 집에 같이 가자고 할때, 조용히 같이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렇게 죽으면 죄책감을 가질 생각을하니 미안하기도 했다.

"뭐야, 누가보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하려는 줄 알겠다. 왜 소리를 질러?"

남자가 당황해서 살짝 언성을 높히자 연지의 눈에서 주르르륵 눈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뭐야? 왜 울어? 나 아무 짓도 안 할거야. 진짜야."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에 당황한 남자가 연지의 입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는 두발자국 정도 성큼성큼 떨어지더니 무기도 없다며 자신이 손을 쫙 펴며 흔들었다.

그에 연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남자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란 건 알겠는데 정말 너를 떄린다던가 뭐 어떻게 한다던가 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그만 울어. 나 너 해치러 온 건 아니니까. 나 그런 거 하면 큰일나."

최선을 다 해 설명을 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한 동안 정적이 찾아왔다.

이제 연지가 진정되었다고 생각한 남자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려고했지만 연지가 조금 더 빨랐다.

"귀...귀신이에요?"

"....뭐?"

못 들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남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까.... 분명... 발소리도 안 났는데 갑자기 제 앞에 서 계시고... 제가 아까 친구들한테 차라리 귀신이랑 같이 있는 게 낫다는 말을 듣고 나타나신 것 같아서..."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연지의 말에 남자가 기가 차다는 듯 '허!'소리를 냈다.

조용히 있는 동안 자신이 안전한 것인가를 고민하는 줄 알고 기다렸더니만0 저 조그마한 머리통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았다.

뒷 머리를 살짝 헝클인 남자는 연지에게로 다가가서 무릎을 굽혀 연지와 눈을 마주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연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신을 차리고 마주 본 남자의 얼굴은 살인마나 귀신이라고 할 수 없는 외모였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이런 날씨에 뭘 한 건지 잡티하고는 하나 보이지도 않는 뽀얀 피부를 가진 남자는 고운 선을 가지고 있는 미남이었다.

"뭔가 착각을 한 모양인데. 나는 땡깡이나 쓰면서 이성도 잃고 날뛰는 그런 것들이랑은 급이 다른...."




"저승사자야."



"...예?"

당황한 연지가 되묻자 남자가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리며 매혹적이게 웃었다.

"말 그대로..."

"정연지 거기서 뭐해?"

사내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으려는 찰나,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인상을 구기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왠지 안심이 되어서 연지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욱아!!! 근데, 여기....!! 어?"

기브스를하고도 불편하지도 않은지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는 것을 본 연지가 혹시 진욱도 위험해질까 경고를 하려는데 고개를 돌리자 아까까지만해도 자신의 바로 앞에 있던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골목길을 바라보는 연지의 팔을 낚아챈 진욱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혼자 여기에서 왜 울고 있어? 겁도 많은게. 김서연 걔한테 좀 데려다 달라고 하지. 걔는 맨손으로 소를 두마리 때려잡고도 남은 녀석이잖아. 아니면 나한테 전화를 하던가. 핸드폰은 왜 가지고 다니는데? 훈이랑 김서연이 연락 안했으면 어쩔 뻔 했어."

숨도 안 쉬고 궁시렁거리면서도 연지의 가방을 뺏어서 매고는 떨리는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주었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자신이 이끄는 데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계속해서 끅끅대던 연지를 흘끗 내려다보고는 진욱이 물었다.

"아니 아까.. 어떤 사람이... 아니... 막... 검은 게 막 나타나가지고 깜짝 놀랐는데.. 분명 아까까지만해도 있었는데 네가 오니까 갑자기 사라졌어."

"뭐? 헛것 본 거 아니야?"

연지의 이야기를 들은 진욱이 깜짝 놀라 연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아니야. 분명히 얘기도 하고 내 내 어깨도 잡고 그랬단 말이야. 나는 나 죽이려는 줄 알고... 너한테도 미안하고 서연이한테도 미안해서...."

결국은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서 울어버리는 연지를 보며 진욱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근데 내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였어."

"그러니까... 너가 오니까 사라졌어."

"아마 겁을 먹어서 헛 게 보인 걸거야. 고3이잖아.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그럴 수 있다고 들었어. 괜히 헛것도 보이고 들리고 그런 경우도 있다더라."

"그...그런가?"

헛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경험이기도 했고, 믿고 싶지 않기도 했기에 별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약해져서 그런거야. 기가 약해져서.'






"이제 좀 괜찮냐?"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베드밴치기대 뚫어져라 tv화면만 바라보던 진욱이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응!"

커다란 흰색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돌돌 말아올린 연지가 딸기 바디워시 향을 폴폴 풍기면서 방에 들어왔다. 아까 펑펑 운 탓인지 눈 주면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네 말이 맞았어. 역시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까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더라고."

불과 20분 전까지만해도 이제 괜찮은 듯 해서 씻고 음료수나 마시면서 진정하라니까, 씻다가 귀신이 나오면 어떻하냐고 자신의 팔을 붙잡고 찡찡거렸던 것을 잊어버렸는지 평온한 표정으로 당차게 말하는 연지를보며 진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내 말 들어서 안 좋을 거 하나 없다니까."

"그러니까."

"그런데 왜 맨날 말해도 말해도 또 내 말을 안 듣는 건지."

장난스레 혀를 차는 진욱을 슬쩍 노려본 연지는 폭신폭신한 침대후드 쪽에 앉아 진욱의 머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내가 욕실에 앉아서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내가 요즘 피곤해서 그랬던 것 같아."

"기가 허해져서 그런걸 거야. 그럴 때니까. 엄마한테 부탁해서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오라고 할테니까 그거 먹고 기운내서 다녀."

"그렇게 까지는...."

"아까 엄마가 걱정하시더라."

진욱의 말에 연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뭐 그렇다고 그렇게 신경쓸 것 까지는 없고 그냥 주는 거 잘 먹고 그러면 되니까."

얼음이 동동 뜬 차가운 아이스티를 연지의 두 손에 쥐어준 진욱이 슬쩍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었다.

"자고 갈거지?"

"응."

"거기서 놀다 자라. 나는 어차피 오늘 하루 종일 자서 오늘 밤 샐 것 같으니까."

진욱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tv로 몸을 돌렸다.

그에 안심한 연지는 아이스티를 마시고 침대에 누우며 미소를지었다.

"그래. 기가 허해진거야."

작게 중얼거린 연지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내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흐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은 형체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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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5 10:07 | 조회 : 3,260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안녕하세요~ 브리사 입니다! 저승사자의 입맞춤은 네이버 챌린지 리그에서도 보실 수 있어요// 1화 다시 수정했습니다.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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