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용서해줘

바글바글한 사람들, 여기저기 널린 화려한 천들, 행복한 웃음소리.

다른 날들과는 다른 특별한 날임을 알려주듯 행복과 기쁨이 가득찬 거리.

하지만 그곳에 서 있는 사내의 얼굴에는 수심만 가득했다.

"하..."

결국 한껏 잘 차려입고 서원을 만나러왔지만 여전히 불편한 마음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 어미와 꼭 닮은 얼굴이니 사람 하나 홀리는 건 일도 아니겠지!'

오늘 아침에 나가는 자신을 보고는 뿌듯하게 그런 말을 내뱉던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한 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집안이었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은 부족했다.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강제로 취하다 싶이 얻은 제 어머니는 마음 고생만 죽어라 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계집질에 술판을 부리던 작자는 제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아버지... 그 전에 인간이라고 할 만한 인간이 못되었다.

탐욕스럽기 그지 없는 인간은 이제는 제 동생을 볼모로 잡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자신까지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마음 비밀 언덕이었던 제 동생 역시 어느새 제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어머니! 저는 저 다과가 먹고 싶습니다."

그 때 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거 말이냐?"

"네!"

"한 개만 주십시오."

"와아!"

별 것 아닌 다과하나에도 치켜올라가는 입꼬리에 잔뜩 부풀러오르는 뺨이 사랑스러웠다.

"어머니도 좀 드십시오."

"괜찮아. 많이 먹어라."

"예."

"그나저나 너희 아버지는 어디가신거니? 요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것을 또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

"설마요... 아! 저기 계신다! 아버지!!"

질이 좋아보이지 않는 천으로 만든 옷에, 그 옷마저 몇 번이나 기웠으니 묻지 않아도 저 집의 사정이 눈에 보이듯 훤했다.

그럼에도 다복해보이는 가족에 가슴이 저릿하도록 부러움이 치밀었다.

'하루라도 좋으니 저렇게 살아보고 싶군.'

아쉬운 눈빛으로 그 가족을 좇았다.

가족이 내 목줄을 움켜쥐어 휘두르지 않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집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보고 싶었다.

"부러우십니까?"

"...!!"

갑작스러운 물음에 깜짝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뜨니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멋쩍어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에 다시 한 번 살풋 웃어보인 여인은 달처럼 잘 빚어놓은 희고 고운 얼굴에, 별을 박아넣은 듯 반짝이는 눈, 붉으스름한 입술을가져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서원이다.

김서원.

"죄송합니다. 아쉬운 눈빛이신 것 같아서 여쭤봤습니다."

"아...예... 조금."

얼어있던 진욱이 멈춰있는 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저렇게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 부러웠습니다. 저한테 가족은 숨을 못쉬게 하는 존재라..."

"사연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씁쓸한 미소에 서원이 조금 밝게 답했다.

"저리 화목해 보여도 무언가 문제가 있겠지요. 저잣거리 다니다보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다 모입니다.그 중에 마냥 행벅한 집이라고는 없더라구요."

"...그렇습니까?"

"아! 그렇다고 힘드시지 않은거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까의 다정하고 온화한 얼굴은 사라지고 놀란 토끼같이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린애같은 얼굴을 보자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왜 사람들이 그리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지,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그저, 나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적어도 한 둘은 더 있겠구나 생각하니 위로가 됩니다."

해사하게 웃는 모습을 보던 서원이 당혹스러웠던 웃음을 지우고 활짝 웃어보였다.

"다행입니다. 지금은 조금 힘드셔도 좋은 가정을 그리시는 분이니 나중에 좋은 가정을 만드실 겁니다."

"제가요?"

"예!"

확신에 찬 맑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화목하지도 않은 가정, 있는 것은 돈 밖에 없지만 그래도 무시받는 핏줄, 덕망 없는 집안.

모든 것들은 알게 모르게 항상 자신을 위축되게 만들었고,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여인이 자신을 깊은 물 속에서 한 번에 끌어올려준 느낌이었다.

그래.

언젠가는.

언젠가는 가장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지.







"맛있냐?"

진욱이 스무디를 맛있게 마시고 있는 연지를 보며 물었다.

"응!"

"기분 좋아보인다? 듣기로는 저쪽 집에 계신 분은 죽어가신다던데."

진욱의 말에 고개를 든 연지가 푸스스 웃어보였다.

"좋아? 어떻게 그러냐면서 걱정하더니, 엄청 즐거워보인다."

"처음에는 그래는데, 지금은 재밌어. 쩔쩔 매는 거 보는게 귀엽기도하고....."

"그래? 잘됐네."

다른 사람한테 마음을 표현하던 것을 어려워했었던 연지였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운 것인지, 한울이 편한 것인지 사고 후 처음으로 마음껏 서운한 티, 속상한 마음을 내보이는 것이 마냥 좋았다.

알게 모르게 항상 꾹꾹 마음을 감추었었는데 편하게 내보이는 것에 후련한 느낌이었다.

"그래. 그래도 이제 슬슬 그만 괴롭히고 잘 지내. 행복하게."

"지금도 행복해."

"그럼 좋지만."

"너는 뭐 안 행복한 사람처럼 말한다?"

스무디가 담긴 유리잔을 두 손으로 꼬옥 쥔 채 진욱을 물끄럼히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내가 언제까지 네 뒤치닥거리만 하고 사냐? 나도 예쁜 여자친구 만들어야지."

"뭐? 시합 끝난지 얼마나 됐다구."

"너는 뭐 수능이라도 끝났냐?"

"칫."

살짝 부풀어오른 볼을 콕 하고 찔러보았다.

말캉히 감겨오는 볼살처럼 마음도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곱게 키운 내 소녀를 그 놈한테 보내는 것이 여간 아까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20년 동안 함께 있어도 부족했던 것을 채워주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끝까지 같이하진 못하겠지만, 내가 없는 마지막까지도 행복하길.

부디, 그 때의 빚을 지금 갚는 것을 이해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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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18 22:40 | 조회 : 1,332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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