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3장 드라마틱(Dramatic) - (2)

다음 날 아침 오전 8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었지만, 이 이른 시간에 벌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카페 클라리스의 관계자들이었다.

“무슨 이 시간부터 준비해야 된다고 그러는데......”

이른 시간에 비해 반짝반짝하게 윤이 나는 카페 테이블에 앉은 채로 힘없이 중얼거리는 은성의 푸념에 매니저인 채희의 입에서 잔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다른 직원들은 물론, 예린도 없이 이른 아침부터 채희와 단 둘이서 카페 전체를 대청소를 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사장님도 그러게 왜 오늘 아침에서야 말해서 이 고생을 하시는 건데요. 차라리 어제 말씀하셨으면 애들이랑 다 같이 어제 밤에 정리했을 거 아니에요.”
“아니 촬영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돼? 우리 원래 깨끗했잖아......”

이른 아침부터 대청소를 실시한 탓인지 한층 피곤한 기색으로 투덜거리는 은성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채희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머신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신 커피 타 드릴게요. 뭐 드실래요?”
“......화이트 카페모카로.”

나지막하게 입술을 달싹이는 은성, 그런 은성의 모습에 채희는 피식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푹 퍼져버린 은성을 뒤로한 채, 바리스타 존으로 향하는 채희. 그런 채희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은성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촬영이 뭐라고...... 다음엔 대여 안 해줄 거야.”

따랑!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은은한 현관종소리가 카페 가득히 퍼져나가며, 낯익은 여인이 카페 안으로 들이닥쳤다.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시크하면서도 매혹적인 도시 여자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여인의 등장에 은성의 시선이 자연스레 여인에게로 옮겨졌다. 허공에서 맞닿은 은성과 여인의 시선, 이윽고 여인의 얼굴엔 반가움의 표정이, 은성의 얼굴엔 당황의 표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엄마!”
“아들!”

그랬다. 차도녀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여인은 바로 은성의 모친, 서현이었던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모자(母子)는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소리치는 두 사람이었지만, 먼저 상대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서현이었다.

와락!

“으이구, 아들 잘 지냈어? 밥은 잘 먹고 다니고.”
“저야 뭐...... 근데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여느 엄마들처럼 자신을 품에 안은 채로 온갖 질문들을 쏟아내는 서현의 모습에 은성을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의 물음에 서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당연히 아들 보려고 일찍 왔지. 예린이는?”
“더 자다가 온대요. 정말이지 연락도 없이... 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살짝 인상을 찌푸린 은성의 한 마디에 서현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야 뭐...... 그보다 아들 엄마 왔는데 차 한 잔도 안 내줄 거야?”
“에휴,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음, 전에 먹었던 걸로! 그거 달고 맛있더라.”
“메이플 마키아토요?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이에 맞지 않는 그녀의 입맛에 쓰게 웃으며 은성은 천천히 바리스타 존으로 향했다.

“뭐야, 심심하신 거예요? 자요. 여기 화이트 카페모카.”

때마침 부탁했던 커피를 완성시킨 것인지, 바리스타 존으로 들어온 은성의 모습에 채희는 의아해 하면서도 은성을 향해 완성한 커피를 내밀었다. 그녀가 내미는 커피를 다시금 내려놓으며 은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로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미안, 조금 이따가 먹을게. 지금은 중요한 손님이 와계셔서.”
“손님이요? 오늘 촬영이라 손님 안 받는다면서요.”
“그게 손님은 손님인데, 손님이 아니랄까?”

말장난 같은 그의 말에 채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은성은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황급히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마시는 커피이기 때문인지 그의 손길엔 정성이 가득했다. 평소와는 달리 온 정성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채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바리스타 존 밖으로 나섰다. 대체 그 손님이 누구인지 호기심이 끓어오른 것이다.

“응?”

도도하게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카페를 둘러보는 낯선 여인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채희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물들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일하는 카페의 의자에 태연하게 앉아있는 이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불혹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섭렵하는 것은 물론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뿐더러, 20대 30대는 물론 10대 여자들의 워너비로 정상에 앉아있는 실력파 여배우 김서현! 눈앞에 있는 이는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김서현이다.”
“응?”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채희의 한 마디에 찬찬히 카페를 둘러보던 서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레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채희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살면서 한번쯤은 꼭 만나보고 싶었던 이가 막상 눈앞에 자리하니 차마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채로 아무 말도 잇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서현은 조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자연스러운 서현의 인사와는 달리 점점 기어들어가는 채희의 목소리.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며 사람 대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던 그녀였지만, 꿈에도 그리던 인생의 워너비를 만난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완전히 얼어붙은 그녀의 모습에 서현은 피식 미소를 지은 채로 천천히 운을 떼었다.

“여기서 일하시는 거예요?”
“네, 넷! 여기 클라리스의 매니저, 한채희라고 합니다.”

갓 입대한 이등병 마냥 빠릿빠릿한 모습으로 황급히 대답하는 채희. 마치 신병을 데리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상병장들을 보는 듯한 그녀들의 모습에 은성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그녀들에게로 다가갔다.

“얘, 그만 괴롭혀요.”
“이게 어딜 봐서 괴롭힌 거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달싹이는 은성의 한 마디에 서현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은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 같은 그녀의 반응에 은성은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뒤에서 보면 누가 봐도 괴롭힌 거예요. 자요, 여기 메이플 마키아토.”
“오오, 역시 아들 밖에 없다니까.”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는 두 모자(母子). 편안하면서도 한없이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채희는 한 박자 늦게 당혹성을 터뜨렸다.

“에엑? 사, 사장님의 어머님이 서현님이셨어요.”
“응. 왜?”
“헤헤, 꽤 닮지 않았어요? 제가 아들 하나는 잘 낳았다니까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서도 떨리는 음성으로 간신히 입술을 달싹이는 채희의 모습에 은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현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은성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모자간이 맞긴 한 것인지 둘의 외모는 상당히 닮아있었다. 커다란 눈동자며, 갸름한 얼굴 라인에,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찬찬히 은성과 서현을 비교하며 바라보던 채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닮긴...... 닮으셨네요?”
“......중간에 그 공백은 뭐야?”

약 2초 정도의 공백, 왠지 모르게 찜찜한 말 사이의 공백에 은성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채희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이 그를 향해 소리칠 뿐이었다.

“왜 말 안하셨어요!”
“아, 아니...... ‘우리 엄마가 누구누구야’라고 말하고 다녀야 되는 거야?”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은성의 반박에 채희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확실히 아무리 연예인의 아들이라고 해도 자기 엄마가 누구라고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으니 말이다. 상당히 억울해 하는 그의 모습에 채희는 황급히 서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소 워너비였던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서현님 오래전부터 팬이었어요!”
“어머, 고마워요. 그리고 서현님이라니...... 그렇게까지 극존칭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 그럼 어, 어, 어, 어,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웠던 것일까? 채희는 귀밑까지 발갛게 물들인 채로 푹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서현은 환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저야 좋긴 한데......”
“그 나이에 무슨 언니에요?”
“보시다시피 우리 아들이 저래서요. 그냥 ‘어머님’이면 되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은성의 한 마디에 채희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떼었다. 하긴 은성의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채희의 나이는 25살, 겉보기엔 상당히 어려보이지만, 저래보여도 서현의 나이는 반세기에 근접한 나이였다. 대략 채희의 2배 정도의 나이 차이였으니 말이다. 물론 ‘어머님’이나 ‘언니’나 함부로 부르기 곤란한 호칭임에는 똑같았지만.

“어, 어머님!”
“네.”

금세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 그런 둘의 모습에 은성은 한숨을 내쉬며 자기 몫의 커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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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09 18:31 | 조회 : 900 목록
작가의 말
류운

아무것도 안했는데 또 하루가 갔네요... 무료합니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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