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다중인격(多重人格) - (5)

“여어, 아가씨 어디가려고 그래? 술이나 더 마시지.”
“그래그래, 저런 비리비리한 놈은 버리고 우리랑 같이 한잔 하자고.”

어느 틈엔가 그들의 주위로 다가서는 낯선 사내들. 자세들이 하나 같이 껄렁껄렁한 것이 척 보기에도 그다지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뭐에요?”

비릿한 비소를 지으며 점점 다가오는 낯선 사내들의 모습에 시연의 인상이 차갑게 내려앉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지레 겁을 먹거나 순응하는 반응이 아닌, 순전히 짜증이 서려있는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사내들의 인상에 주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짜증이야.”
“그래,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 대? 그냥 술이나 가볍게 같이 하자는 거 아니야.”

금세 험악하게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협박하듯 말을 잇는 사내들. 당장에 같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한 대 때리기라도 할 듯이 흉흉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강압적인 사내들의 태도에 주눅이 들 법도 하건만, 시연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당당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그만 마신다고요. 죄송하지만 좀 비켜주실래요?”

차분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시연이었건만 이어지는 사내들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었다.

“아니 근데 이 년이 진짜!”

결국, 냉담한 시연의 반응에 분노가 극에 달한 사내의 주먹이 천장으로 치켜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고운 그녀의 뺨을 강타할 듯한 사내의 우락부락한 주먹. 하지만 다행히도 사내의 손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적당히 하고 그만 가지?”

분명 몇 병이나 술을 들이켰음이 분명하건만, 놀랍게도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처럼 민첩한 움직임으로 은성이 사내의 손을 낚아챘던 것이다. 은성은 물론 현의 인격이 튀어나왔을 때와도 확연이 다른 분위기. 어딘지 모르게 포악한 맹수와도 같이 근본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사내들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리고 말았다.

“너, 넌 또 뭐야?”
“알아서 뭐 하게?”

차갑기 그지없는 싸늘한 한 마디.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잘 벼린 칼날과도 같이 심장을 옥죄는 음성에 사내들은 흠칫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까딱 잘못 말했다간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감각이 전신을 억눌렀던 것이다. 맹수 앞에 던져진 초식동물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치기엔 그들의 자존심이 너무도 셌다.

“이, 이 새끼가!”

콱!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고서 은성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사내, 하지만 육감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고서 감행한 그의 공격은 허무하게 막혀버리고 말았다. 곧바로 은성의 손에 붙잡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어지는 그의 행동에 손을 붙잡힌 사내의 입에선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아악!”

사내의 팔을 붙잡던 은성의 손이 사내의 팔을 비틀어 꺾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손을 꺾여버린 채로 행동불능이 되어버린 사내. 그런 사내의 모습에 일행들은 다시금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간단한 동작들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였는지 눈앞의 사내의 장난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이윽고 묵묵히 사내의 팔을 꺾고 있던 은성의 눈살이 꿈틀거리며 그의 입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왜, 꼽으면 한판 제대로 해볼까? 난 너희 전부도 작살낼 자신 있는데 말이야.”

등 뒤로 오한이 느껴질 정도로 섬뜩한 경고와도 같은 한 마디. 그런 그의 한 마디에 사내들은 차츰차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두, 두고 보자!”
“너, 너 조심해!”

간신히 은성의 손에서 팔을 빼낸 채, 흔한 악당의 말들을 내뱉으며 황급히 사라지는 사내들. 그런 사내들의 모습에 은성은 가볍게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별 것도 아닌 놈들이.”
“되게 의외네? 그냥 안 보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정말 감탄하는 듯한 기색으로 팔꿈치로 툭툭 치며 장난스럽게 웃음을 짓는 시연. 조금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시연의 말에 은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강호 네가 저런 사람들을 보낸 경우는 거의 없잖아.”

입가는 웃고 있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번에 파고드는 시연의 한 마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은성, 아니 강호는 낮게 혀를 찼다.

“쳇, 그걸 금세 눈치 채다니 눈치도 되게 빠르네.”
“그야, 은성이는 너처럼 그렇게 과격한 성격이 아니니까. 전에 말했잖아. 네가 튀어나올 때 제일 알아보기 쉽다니깐?”

금세 흥미가 떨어진 눈빛으로 툴툴거리는 강호, 조금 전의 서슬 퍼런 살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삐진 아이 같은 그의 반응에 시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오야, 그렇게 실망했어?”
“애 취급일랑 관둬.”

어린애 다루듯 쓱쓱 머리를 쓰다듬는 시연의 손길을 피해내며 강호는 휙하니 발걸음을 돌렸다.

“어? 어디가.”
“가자. 어차피 술도 다 마셨고, 딱히 할 것도 없잖아?”

단호한 강호의 한 마디에 시연의 쩝쩝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술도 다 마셨고 은성이 아닌 다른 이와 딱히 2차의 생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은성’이었지 그 안에 있는 다른 ‘인격들’이 아니었다. 미련 없이 계산을 끝낸 강호가 가게를 나서자 시연 역시 그의 옆에 꼭 붙은 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창피를 당한 사내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다.

**********************

“좀 떨어져서 걸어라.”
“뭐 어때, 팔짱 낀 것도 아닌데.”

무심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이는 강호의 한 마디에 시연은 태연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는 묵묵히 어둑어둑한 밤거리 사이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그 역시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옆에서 같이 걷는 그녀의 시선이 그의 얼굴로 고정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고서 말이다.

“그만 좀 쳐다봐라.”
“닳는 것도 아닌데 왜?”

좀 전과 똑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시연, 남들이 보기엔 귀엽기 그지없는 반응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스트레스 덩어리일 뿐이었다.

“신경 쓰인다고.”
“응?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결국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친 채로 천천히 입을 여는 강호였지만, 이내 그는 말을 멈추고 황급히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일 틈도 없이 그의 뒤쪽으로 끌어당겨진 시연의 입에서 멍한 한 마디가 흘러나오며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앞쪽으로 옮겨졌다. 그곳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골목길 사이를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경차의 모습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만약 몇 걸음만 더 내딛었더라면 위험천만한 사고를 당할 뻔한 아찔한 상황, 그러한 사실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순간 강호의 입에서 노기 어린 음성이 새어나왔다.

“이런 것 때문에 신경 쓰이는 거라고. 앞 좀 보고 다녀라 이 여자야.”
“보, 보고 있었다고.”
“말은.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던 주제에.”

무심하게 중얼거리는 강호의 한 마디에 시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심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은근히 자신을 챙겨주는 그의 행동에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이다. 게다가 그 외면이 자신이 연심을 품고 있던 이이니 그녀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쩔 줄을 모르는 시연의 반응에 강호의 얼굴에 의문의 표정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는 그러한 호기심을 훌훌 털어버리고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싱겁긴. 빨리 와.”
“가, 같이 가!”

무심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모습에 시연 역시 그를 따라 황급히 그의 옆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잠시, 그들의 발걸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뭐야?”
“크큭.”

골목의 깊숙한 곳, 희미하게 빛나는 전신주만이 주변을 밝히는 어두운 골목 사이로 낯익은 사내들이 연거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꽤나 낯이 익은 사내들, 그것도 호의의 감정은 아니었던 것인지 손에 쇠파이프나 각목 같은 둔기들을 쥔 채로 천천히 다가오는 사내들의 모습에 시연의 입에서 당혹성이 튀어 나왔다.

“뭐, 뭐야?”
“뒤로 물러서.”

적의를 가득 품은 채 점점 조여 오는 사내들. 비릿한 비소를 지은 채로 위협하듯이 천천히 다가오는 사내들의 모습에 강호와 시연은 조금씩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좁은 골목 한쪽 구석으로 내몰리는 그들. 빈틈없이 사방을 옥죄며 천천히 다가오는 사내들에 의해 강호와 시연은 결국 막다른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뭐, 뭐하는 짓이에요. 자꾸 이러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계속되는 사내들의 만행에 참다못한 시연의 입에서 성난 노성이 튀어나왔다. 애써 담담한 척 소리치지만, 약간의 떨림이 섞여있는 것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평소에 아무리 강한 척하곤 하지만, 그녀 역시도 두려움을 느끼는 한 명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기색을 눈치 챈 것인지 사내들의 얼굴에 조롱의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큭, 왜 이제야 우리가 무서운가 보지?”
“아까는 잘도 우릴 무시 했겠다?”
“......아까? 서, 설마.”

비웃음이 잔뜩 어린 사내들,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그들의 모습과 이해가 잘되지 않는 그들의 말을 곱씹고서야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 것인지 시연의 표정에 당혹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아까 치킨집에서의!”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시연의 모습이 뭐가 그리 웃긴 것일까? 사내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야 생각이 났나 보지?”
“덕분에 개쪽을 당했다고. 우리 체면이 말이 아니야.”

마치 억울한 사고의 피해자인양 소리치는 사내들의 말에 시연은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그게 무슨 자신의 잘못도 아니거니와, 먼저 시비를 건 것 역시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진짜 피해자인 그녀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와 같은 생각인 것인지 강호는 고개를 떨군 채,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헌데 무언가 좀 이상했다. 반응이 사뭇 달랐던 것이다.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마치 무언가를 격렬하게 ‘참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강호야?”

전신을 엄습하는 불길한 느낌, 만약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어지간한 스릴러 영화 저리 가라할 정도의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사내들이 아니었다.

“이것들이 진짜.”
“아직도 우리도 우릴 무시해? 오냐 오늘 한번 죽어봐라.”

결국, 그들의 분노가 극에 다다른 것인지, 사내들 중 한명의 각목이 시연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어찌나 강하게 내리꽂히는 것인지 한눈에 보기에도 절대 위협의 의도는 아니었다.

“꺄악!”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턱!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그들이 예상하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사내의 각목이 ‘그’의 손에 막혔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무작정 충격을 받아내는 것이 아닌, 정확한 타이밍에 손목을 비틀어 각목의 윗부분을 잡아내는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는 그대로 각목을 끌어당겨 사내에게서 각목을 뺏어냈다. 순식간에 무기를 빼앗겨 버린 어이없는 현실에 사내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 뭐야 방금......”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얼빠진 사내들. 그런 그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는 등 뒤의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0
이번 화 신고 2015-09-02 09:17 | 조회 : 954 목록
작가의 말
류운

간밤에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다들 조심하세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