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

"같이 돌아가요."
이게 정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내 말에 답도 없이 멍청히 앉아있던 모습에 짜증이 나려던 도중 튀어나온 말이다. 그래, 난 나만 바라보는, 이런 널 원해. 정말로 내가 원하는 상황이 이뤄지니 엄청난 고양감이 해일처럼 나를 덮쳤다. 흥분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네가 해달라는 건 뭐든 내가 해 줄 테니, 넌 내게만 기대야 하며 내겐 아무것도 숨겨선 안돼. 난 네가 뭘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니까, 같잖은 거짓말로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마.
그 일기도 마찬가지고.

**


몇 초 간 정적이 흐르자 나는 내가 그제야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미쳤지, 미쳤어. 기억을 잃었다고 연인이라고 모든 게 허용되는게 이닌데. 나 같아도 향수병 같은 같잖은 핑계로 집 나갔다 기억 잃으고 나서 같이 살자는 애 있으면 열받을 거다.
몇 시간 같던 몇 초가 흐르자, 테오가 웃었다. 화사하게.
짐짓 기쁘다는 듯
"고마워, 리지. 나도 네가 떠난 후 나름 반성도 했어. 앞으로 더 노력할게."
라는 거다.
뭣 때문에 싸운 거지? 그가 뭔 짓을 했기에? 내가 잘못한 건가? 내게 질린 거면 어떡하지?
자꾸만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나도 내가 미친 것 같다. 내가 통제가 되질 않는다.

"뭘 잘못했다는 건데요?...혹시 심하게 싸웠던 거예요?"
내가 들어도 볼품없는 떨리는 목소리다. 그랑 있으면 그렇다. 수없이 연습했던 예절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리지가 부모님을 뵈어야 할 것 같다고 했었거든. 뭔가 챙길 것도 있다고 그랬고. 나도 따라가고 싶었는데,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해서 진짜 섭섭했다?"
아아, 일기장만큼이나 이상한 이유이다. 아니, 변명인가? 내가 내 편을 두고 혼자 이곳에 돌아온다고?
그러나 이어진 질문은 조금 움찔했다.
"아무것도 숨기면 안 돼요, 알았지?"
"그래요, 당연하죠."
단정적인 멍청한 답이 튀어나왔다. 물론 찔리니까.
그래도, 일기장 관련된 건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선 안 된다.
결혼 전까지의 기록(아마도?)이 담긴 일기장은 내가 찢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단순히 존재하는 수준이 아니라 높다, 매우. 종이에 물을 묻혀 찢어내는 방법은 어릴 때부터의 나만의 습관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가위를 쓰건 그냥 찢어내므로 거의 유일하게 이런 식으로 찢는 내가 그랬을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이다. 연애일기에서 무슨 찢을 내용이 있나 싶겠지만 다른 중요한 걸 써놓았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인위적인 잉크 자국과 난데없이 적힌 문장, 연애일기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난데없이 이제 더 이상 일기를 적을 수 없다는 내용.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은가.
그러니 기억을 찾으려면 찢긴 부분이 내가 제일 먼저 찾아내야 하는 단서인 것이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미안하지만 테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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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3-08 00:05 | 조회 : 454 목록
작가의 말
stande

B.A.R님 글 독자였습니다...이렇게 보네요 (? ?° ?? ?°?) 읽어주시는 모든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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