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

연애결혼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허락해 주셨을 리가 없다. 난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거지 딸 역할은 절대 가질 수 없으니. 멍청한 소리지만 난 그들을 증오하지만 사랑을 갈구한다. 내가 반항할 수 있을 리 없는데, 그들이 허락할 리 없는데. 신뢰가 불가능할 정도로 이상한 정보다.

**

이정도 하고 일기장을 읽어보도록 하겠다.
첫 장은 가족들 욕이었다. 뭐 당연하지. 전 일기장도 그 인간들 욕으로 꽉꽉 찼는데 이거라고 다르겠는가? 굳이 덧붙이자면 난 우리집에서 찬밥이다. 이걸로 스트레스 푸는건데, 뭐 어때.
특히 둘째놈이 밥맛이다. 그냥 혼잣말 해본거다.
연애 일기라 분홍색인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몇 장을 감흥없이 휙휙 넘기다 보니,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과의 만남이 적혀 있었다.

첫 만남은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서점에서 같은 책을 사려고 했다고 한다. 싸우다 연애하나 싶었는데, 그 사람은 재차 내 이름을 묻다 이름을 듣고 놀라며 책을 양보했다고 한다. 갑자기 뭔가 떠올린 탓인지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그 이후도 똑같다. 축제 구경이든 서점(또?)이든 연극이든, 심지어 파티에서도 ''우연히'' 만났다. 뭔가 로맨틱하면서도 이상했다. 집 분위기도 이상했으나, 일기 내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든 상황이 절묘히 맞아떨어졌으며 연극처럼 모든 상황이 설계된 것 같다.
또 지끈거린다. 아프다. 내가 제정신인가?
하지만 일기를 다 보고 자야 한다. 모조리 다, 끝까지.
머리 아픈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술렁술렁 페이지를 넘겼다. 다 소설 같은 레파토리다.
시정잡배들에게서 구해주고, 우연히 만나 축제를 구경하고, 같은 관심사를 공유해 들뜨고, 지겹고 지루한 파티에서 구해주고.

너무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 이상했다. 왠지 불길하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일기는 정말, 이상했다. 공백이 길다. 시시껄렁한 내용이라도 매일 기록하던 일기와 확연히 비교된다. 몇 주 간의 공백 후 쓰여진 일기는 물을 엎지른 듯 몇 문장 빼곤 잉크가 번져 알아볼 수 없었으며 다음 장들은 모조리 찢겨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기억을 지우고 기록을 지운 것 같지 않은가. 물에 흐려진 부분도 인위적이다. 이 문장들만 남을 수 있나? 부자연스러워.

머리가 더 아파온다. 결국 일기장을 덮고 도망치듯 책상을 벗어났다.

1
이번 화 신고 2022-03-07 13:51 | 조회 : 405 목록
작가의 말
stande

주인공 이름은 가끔 바뀔 수 있습니다. 바뀌면 다른 회차까지 이름 바꿔놀게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