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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 .... "


" 지금 장난해? "


" ...그게.... "


" 후.. 도대체 문은 왜 안 잠군건데. "


" 제 불찰로 그만... 죄송합니다. "


" 아니 그전에, 어떤 정신 나간 도둑이 값비싼 물건은 팽개쳐 놓고 남의 치마만 갈기갈기 찢어놨냐고!! "




설혜가 자고 일어나서 부스스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자, 그녀의 집사는 움찔했다.

설혜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범인이 눈 앞에 있었더라면 이미 와작와작 씹어 삼켰을 기세다.


그녀의 집사는 식은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이마에 힘을 주었다. 설혜의 저 두 눈을 보고, 죽어도 가연의 부탁을 받았다는 것을 밝히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집사였다. 그것이 밝혀진다면 집사는 산 채로 매장당할 확률이 컸다.

지금 설혜는 알 수 없는 '도둑' 이라는 존재 때문에 완전히 분노해 있었다. 만약 그 분노가 자신과 가연의 쪽으로 향하게 된다면... 그 순간 부터 자신은 남은 생을 지옥에서 보내게 될 수도 있었다.



" 다른 치마는 없어? "



설혜가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화를 애써 누르는 목소리로 묻자, 집사가 손에 있던 치마를 후다닥 내밀었다. 어젯밤 일을 치르기 전, 가연이 건네주었던 치마였다.



" 그나마 남은 치마입니다. "


" 음? 근데 어째 치마가 짧다? "



집사가 이 말에 약간 흠칫했지만, 설헤는 치마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설혜의 눈이 두 배로 커지기 시작했다.



" 잠깐... 짧은 정도가 아니라 이건 뭐 걸레 수준인데? "



설혜가 벌떡 일어나더니 치마를 허리에 대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집사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 분명히 그녀는 어제 자신의 교복 치마 2개를 모두 늘렸었다.

어제 늘린 길이는 설혜의 무릎 뒷선에서 5~6cm가 짧은 정도였는데, 지금 치마를 대어보니 오히려 엉덩이 밑선에서 5~6cm가 긴 정도로 변해있었다. 말 그대로 걸레 수준의 길이였다.


설혜는 원래부터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기에 이 정도 수준의 치마는 그녀에게 안 입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녀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치마를 침대에 버리듯이 팽개쳤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욕실로 향했다. 그녀의 집사가 그녀의 뒷통수에 대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 아가씨. 그럼... 치마를 입고 가지 않으실건가요? "



" 아니. 학교는 가야하지 않겠어? "



분노가 들끓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대꾸하며 욕실 문을 쾅 닫자, 집사는 움찔한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나보다.


집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철썩 때리며 심호흡을 했다. 분명히 잘 넘긴 것 같은데, 마치 들켜버린 것처럼 심장이 이리 튀어오르고 저리 튀어오르고 난리였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조마조마하게 살도록 만든 가연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설혜에게 산 채로 매장당하는 날이 온다면, 그는 반드시 가연도 함께 끌고 들어가리라 다짐했다.









***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힐끔힐끔 쳐다보고 부러운 목소리로 수근대기도 하였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당당하고 흠 잡을 곳 없는 걸음걸이로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그녀를 훔쳐보면서 말이다.

그녀의 얇고 완벽한 일자 다리는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와 환상적으로 잘 어울렸고, 그렇기에 그녀는 다리를 드러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몸매였다.


하지만 설혜는 다리에 와닿는 서늘한 공기에 콧잔등을 찌푸렸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때는 늦여름이였지만 아침에는 약간 서늘했다.


그녀는 짧은 치마가 창피하지는 않았다.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맨 다리가 다른 사람들 눈에 비춰진다는 것이 찜찜할 뿐이였고,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녀는 제법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치마를 들썩이며 평소와 똑같이 등교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그 때, 그녀의 주위로 미풍이 불어왔다.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칠흑같이 검은 긴 생머리가 그녀의 몸을 후광처럼 감쌌다.

등굣길에서 우연히 설혜를 발견하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어제 그 카페 사건의 소년 최민욱은 그 모습을 목격하고는 코피를 흘릴 뻔했다. 그건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얼음 같고 신비스러운 그녀는 주위 여자들의 시선도 독차지했다. 감각이 좋은 설혜는 시선들이 과도하게 몰리기 시작함을 느끼고, 재빨리 교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두들 한탄하는 사이에, 코를 틀어막고 가는 최민욱만 신나있다.


학교 안에서도 모두들 설혜를 보며 웅성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얼굴도 유리공예처럼 아주 예뻤고 쌀쌀맞은 차가운 성격 때문에 이미 학교 내에서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는 설혜를 모르는 남자가 없었다.


근데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설혜가 모태솔로라는 것일까.


뭐, 설혜는 그런 것 마저 별 감흥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은 자신 한 명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설혜가 들어서자, 떠들썩 하던 반이 아주 잠깐 동안 정적에 휩싸였지만 곧이어 활기를 되찾는다.

설혜는 어느 때와 다름 없이 아무런 표정도 띄우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털썩 앉았다.

반 아이들은 친구들과 떠들면서 서로 설혜를 힐끔거리기 바빴다.



아무도 설혜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 설혜가 인사를 해봤자 받아주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색하고, 거기다가 개학이니 만큼 인사 정도는 한 번쯤 해보고 싶었으나 또 보기 좋게 무시당할까 입도 한 번 못 열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앞의 친구들과 서로 동문서답을 하면서 횡설수설 거리고만 있는다.


어떻게 보면 이 반 아이들은 '설혜' 라는 존재에 잔뜩 압축되어 있는 진공팩이나 다름없었다. 참으로 안쓰러운 광경이다.



그 때, 앞문이 부서져라 쾅 열리더니 한 남학생이 뛰어 들어온다. 설혜도 고개를 들었따.




" 야, 속보다. 우리 반에 전학생 온댄다. "



" 뭐어? "



" 야 이쁘냐? "



" 남자다, 이 새끼야. "



" 아 씨발... 왜 우리 반에는 여자 전학생이 없냐... "



" 그 말 그대로 담임에게 전해주길 바란다. "



" 니가 전해 임마! 누구더러 그 악덕인간에게 뛰어들라는 거...! "




반에 앉아있던 남자애가 앞문 쪽을 다시 한 번 보더니 버퍼링이라도 되는 중인지 그대로 말을 멈춘다. 그러자 방금 막 들어온 남학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 뭐? 아 빨리 말해! 이제 곧 담임새끼 온단 말이야!! "


" 오셨다. 이 상놈의 새꺄. "



그 때, 앞문에 있던 남학생의 뒤에서 어느새 나타난 담임이 출석부로 그 애의 머리를 내려친다. 꽤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남자애는 비명을 지르면서 오버를 했고, 결국 담임에게 한 대 더 처 맞고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적을 되찾았을 때 쯤, 담임이 헛기침을 하더니 왠일로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조례를 시작했다.



" 자,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


" 쌤! 남자예요?! "



아까 반에 앉아 있던 아이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는 듯이 손을 들고 소리친다. 그러자 담임은 별 다른 반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



" ...오, 하느님. 맙소사.... "


" 이런 남탕에 또 남자가 오다니..."


" 야, 뭐가 어째? "


" 뭐가. 솔까 우리 반에 여자 있냐? "


" 맞아. 모르는 사람한테 여길 군대라고 소개하면 분명 믿을... "



" ...시끄러워. "




설혜가 오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다.

그러자 모두들 합죽이라도 된 듯이 입을 꼬옥 다문다. 담임은 그러한 이들의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그럼 전학생 소개를 해볼까. "



담임은 앞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 들어오렴. "



일제히 문쪽으로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유일하게 전학생에 무심한 자, 설혜는 벌써 졸고 있었다. 아직 조례도 안 끝났는데 벌써부터 꾸벅꾸벅 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태평한 모습이었다.


그 때, 드디어 앞문이 다시 한 번 열리고 깔끔한 교복차림의 남자가 들어온다.


교실에서 여학생들의 탄성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남학생들의 아주 약한 탄성과, 툴툴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 약한 탄성은 기가 뚝 끊기는 소리였나보다.

여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설혜는 시끄러운 소리에 엎드려 있던 몸을 살짝 꿈틀거렸다. 이는 시끄러운 것에 대한 짜증의 표시였으나, 여학생들은 그녀를 애석하게도 보지 못한 채 계속 웅성댔다.



" 자기 소개를 해주겠니? "



너무도 조용해서 서로의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 강 유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모두의 귓속을 후려친다.

여자들은 몸을 부르르 떠는데, 그와 대조되는 이 반 남학생들은 반대로 꺅꺅거린다.



" 사기네. 저게 고2 남자의 목소리더냐? "


" 닥쳐. 이 하모니카들아. "


" 와... 꿀이 흐른다 흘러.. "


" 모델 하나? 비율 봐... "



웅성거림 속에서 담임이 교탁을 출석부로 쾅쾅 두드리며 모두를 집중시켰다. 담임이 요상한 미소를 짓는다.



" 자, 그럼 유현이의 자리는..... "



엄청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단 한명을 제외한 모든 여학생들이 이 순간 만큼은 담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기를 빌고 있었다.

선생님도 그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 ...저기, 저 엎드려 있는 학생 옆 자리에 가렴. "




이렇게 야속하게 결정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학생에게 향했다. 전학생이 왔는데도 무관심하게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은 딱 한 명 뿐이었다. 그렇기에 눈에 제일 띄었다.


그리고 옆자리가 보란 듯이 떡하니 비어있었다.


여학생들이 탄식을 했고, 남학생들도 탄식했다. 유현은 고개를 기웃하며 성큼성큼 자리에 가서 의자를 빼고 앉았다. 왜 이런 반응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리라.

담임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한 번 교탁을 탕탕 두드린다.



" 그리고 주목, 오늘은 쉬는 시간이 없다. "


" 네?!!?! "



반이 또 한번 술렁였다.

아니, 지금 학생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쉬는 시간이 어떻게 된다고? 없다고?!



" 요 며칠 동안 선생님들이 일찍 출장을 가야해서 단축 수업을 할건데, 수업시간을 줄일 수는 없어서 쉬는 시간을 없앤거다. "



반이 항의의 외침으로 시끄러워졌으나, 담임은 단호했다.



" 이미 결정 난거다. 그러니 토 달지 말고 내가 나가자마자 1교시 준비하도록. 이상! "



오늘도 강렬하고 짧은 인상을 남기고, 자기 할 말만 한 채 홀연히 사라지시는 담임이다.



" 아 썅! 말이 돼? 쉬는 시간이 없다니! "


" 내 매점은 어찌 되는거냐... 젠장.... "



아이들이 쉴새 없이 재잘거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덩그러니 앉아 있는 유현이었다. 그의 곁으로 2명의 남학생이 다가왔다.



" 어이, 전학생! 넌 어떻게 생각하냐? "



" 글쎄... "



유현은 그들의 말에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옆의 설혜를 바라보았다. 물론 설혜는 아직도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 새끼. 과묵한 편인가봐? "


" 허어..? "



남자 중 한명이 유현의 눈길이 향한 곳을 보고는 흥미로운 눈짓을 했다.



" 어딜 보나 했더니, 반설혜를 보고 있었구만? "


" 쟤 이름이 반설혜야? "


" 그래. "


" 이름이... 예쁘네. "


" 이름 뿐이겠냐. 그보다 너... 설마 반한 건 아니겠지? "



남자가 장난스레 물었다. 마치 유현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듯이. 유현도 그를 바라보더니 그의 의도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 ...글쎄. 그럴지도. "


" ...뭐? "



생각보다 덤덤한 유현의 반응에 적잖이 놀란듯한 2명의 남학생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이어 피식 실소를 터트린다.



" 하하. 얘 봐라? 당당한데? "


" 아서라 아서. 쟤는 니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그런 레벨이 아니다 새꺄. "


" 무슨 뜻이야? "



유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 뭐, 당연히 모르겠지. '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는 그들이었다.




" ...야, 강유현이라고 했나? 너, 딴 놈들은 몰라도 쟤는 절대 건들지마. "



" 잘 때 깨우지도 말고, 시비 걸지도 말고, 말 걸지도 마. 그러면 아무 문제 없을거야. "



" 왜? "



" ...쟤가 좀.... 별나거든. "




남학생들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유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남학생 한 명이 다른 남학생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그 남학생이 한숨을 쉬더니 그에게 손짓을 하고는 속삭였다.





" 니가 아직 반설혜의 얼굴을 못 봤겠지만, 쟤가 얼굴하고 몸매 하나는 이 학교에서 거의 최고거든. 그래서 남자들이 쟤한테 여간 찝적대는게 아니야.

근데 하나 소름 돋는건, 반설혜에게 찝적대던 남자들은 항상 그 다음날에.... "



남자가 더욱 극적인 효과를 위하여 잠시 뜸을 들이다가, 숨을 훅 내쉬면서 말했다.





" ...거의 피떡이 되어 온다는 거지. "



유현이 놀란 표정을 짓자, 남학생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때, 1교시인 수학 선생님이 들어오고 그들도 후다닥 자리로 돌아갔다. 남학생들 중 한 명이 자리에 앉으면서 그에게 속삭였다.



" 장난이였겠지만, 설혜는 좋아하지 않는 게 좋아. 그 소문을 알면서도 거의 전교 남학생 모두가 걔를 짝사랑하니까. "



" 그.. 피떡이 된 거 말이야. 그거 저 여자애가 한거야? "



" 그건 아무도 모르지만,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



" 찝적대기만 하면 그래? "



" 그래. 순수하게 고백하는 건 그냥 넘어가더라고. "



" 거기, 그만 떠들어!"




수학 선생님이 소리를 빽 지르자, 대화는 중단이 되었다. 유현은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설혜를 쳐다보았다.


' 거의 피떡이 되어 온다는거지. '




' 피떡이라.... '




전혀 그렇게 얽혀 있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직 유현은 설혜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그녀의 어깨에 드리워져 있는 검은 생머리와, 좁은 어깨와, 작은 머리만으로도 그런 소문을 품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유현은 수업을 듣기 위해서 고개를 칠판 쪽으로 돌리고 가방에다가 손을 넣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오늘 처음 등교하지 않았던가. 당연히 아직 교과서가 없는 상태였다.

무의식적으로 가방에 손을 넣어 책을 꺼내려다가, 책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고뇌하는 유현이었다.



아까의 담임 선생님 말로는, 짝꿍과 같이 보면 된다고 했는데...



방금 그 이야기를 들어 놓고 짝꿍을 깨우기에는 뭔가 찜찜했다.

그렇다고 책 없이 수업을 들을 수도 없었고, 이 학교의 책상 배열은 앞 뒤와 분단 사이의 간격이 굉장히 넓었기에 그와 교과서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짝꿍 뿐이였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더니, 결심을 했는지 설혜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덥썩 잡고 살살 흔들었다. 주위의 학생들이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 저기... 일어나봐. "




그러자 그녀의 어깨가 움찔하더니 팔이 스르륵 풀렸다.


유현은 덩달아 움찔하면서 급히 손을 뗐다. 설혜는 살며시 몸을 일으키더니, 짜증나는 듯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러고는 유현을 휙 쳐다보았다. 아주 짜증나 있는 얼굴을 하고 말이다.






유현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입 밖으로 막 나오려던 교과서에 대한 말은 목구멍에서 턱 걸려 나오질 않았다.



설혜는 현재 기분이 별로였기 때문에 눈살은 한껏 찌푸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유현은 아름다워서라기 보다는, 신기한 마음에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남자들이 피떡으로 변하면서까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이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여자는, 그럴 만도 했다.


날카롭고 커다란 눈, 높고 바른 코, 가늘고 붉은 입술에 무언가를 갖다대기만 해도 토막이 날 것 같은 턱선,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까지.



아, 흠이 하나 있긴 있었다.

왼쪽 눈두덩 밑에 나 있는 길고 가느다란 흉터.

그 흉터는 이상하게도 칼로 베인 것 같이 보이는 흉터였다.


유현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결국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 뭐야, 너... 처음보는 얼굴인데. "



설혜가 찡그렸던 인상을 피며 유현 쪽으로 목을 기울였다. 그러자 유현은 그제서야 자신이 잘 자고 있던 설혜를 깨운 이유를 떠올리고 재빨리 말했다.




" 오늘 전학 왔는데, 교과서가 없어서. "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설혜는 그런 유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말없이 책상 속을 뒤지더니 수학 교과서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그는 얼떨결에 자신에게 날아오는 교과서를 받아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시 엎드리는 설혜를 바라보며 그가 용기내어 물었다.




" ..넌 안 봐? "



" 안 봐. "



" 그럼... 내가 이거 써도 돼? "



" 그러던지. "




그녀가 손을 휘휘 저으며 가지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유현은 교과서를 쥐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 고마워. "



그러자 설혜가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은 그녀가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를 똑같이 마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마음속으로 살짝 흠칫한다.




설혜가 방금 살짝, 아주 살짝 웃은 것 같은데.


착각인걸까.










" ....별 말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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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2-17 17:57 | 조회 : 1,116 목록
작가의 말
비제르

사실 남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어지게 만들 예정인 사람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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