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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인공 시점(설혜)

















종이 울리자 선생님이 헐레벌떡 다음 교실로 향했다.


쉬는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나는 점심시간 종이 울릴 때까지 계속 엎드려있기만 했다.



더 이상 잘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렌즈가 뒤집힐테고, 수술을 받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그렇게 쏟아지는 잠을 죽어라 견디며 몇 시간을 어찌저찌 버텨낸다.




드디어 찾아온 점심시간.

다들 점심을 먹으러 쏜살같이 급식실로 내려갔기에 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렌즈통을 꺼내들었고, 눈에다가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 까꿍!! "




" ...... "








...내가 내 눈을 찌른 격이다.







" 아 씨발... 내 눈.... "




나는 눈을 부여잡고 욕짓거리를 해대며 뒤를 홱 돌아봤다.


그 곳에는 딴청을 피우며 서 있는 한 남학생과 또 한 명의 남학생, 여학생이 서 있었다.

나는 이를 바득 갈며 한 손으로 딴청을 피우는 남학생의 멱살을 잡았다.





" 미친 놈아. 나 눈 병신되면 책임질꺼냐? "



" 하... 아하하... 진정해.. 진정... "



" 진정하게 생겼어?! "



" 설혜야 참아!! "



" 안 참아! 아니, 못 참아! "








내가 눈 병신이 되면 내 수익에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고!







" 조용히 좀 해라. "




날 유일하게 말리지 않던 다른 남학생 한 명이 내 팔을 끌어당긴다.



그의 품이 갑작스럽게 와닿자 나는 내 눈이 커지는 것을 느꼈고,

급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 눈을 부여잡고 있던 손을 반사적으로 들어 그의 옆구리를 가격한다. 그가 숨을 훅 내뱉는다.






" 아! 왜 때려! "



" 어디서 개수작이야. "



" 수작은 개뿔! 니가 저 새끼 반병신으로 만들까봐 막은 나를! "



" ...재윤아. 수작인건 너무 티나. "



" 와! 나 화병나서 죽겠네! "






내가 멱살을 잡고 있던 남학생마저 다른 남학생, 재윤을 몰아가자 그가 어이 없다는 눈으로 머리를 쓸어올린다.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려 내 눈에 대한 살인미수를 저지른 놈을 강렬히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 즉시 다른 여학생 뒤로 쏙 숨어버린다.





" 흐엉. 가연아. 내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저 마녀에게 전해주겠니? "



" 휴.. 그렇다고 하는데, 검은 마녀씨? "








마녀.



나는 이 단어에 흠칫했다가 곧이어 어이가 없어졌다.





결국 나는 화를 못 참고 놈의 정강이를 한 번 후려친 다음 렌즈를 다시 뺐다.




그는 책상에 걸터앉아 정강이를 붙잡고 낑낑 거렸다.

마치 주인에게 걷어차인 강아지 마냥 온갖 불쌍한 표정을 다 하는 그이다.





" 안의준. "



" 씨... 왜! "



" 괜찮냐? "



" ..니 눈엔 괜찮아 보이디...? "



" 아니. "




이재윤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까 나에게 맞은 옆구리가 생각난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렌즈통을 닫았다. 눈동자를 무겁게 내리 누르던 렌즈를 빼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러자 최가연이 불쑥 얼굴을 내밀며 내 눈을 바라보고는 탄성을 지른다.





" 항상 보던 눈이지만,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



" ....그래? "



내가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자 이재윤과 안의준도 내 앞으로 와서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반설혜. "


" 왜. "



" 그냥 렌즈를 빼고 다니지 그래?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 너.. 렌즈 뺀 눈이 훨씬 더 나아. "



" 맨날 본 우리에게나 그렇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안 봐주더라. "



" 누가 그러는데? "




재윤의 말에 가연이 반박하자, 재윤이 다시 가연에게 물었다.

나는 더 이상 듣기 싫은 마음에 최대한 목소리를 가볍게 내려고 애를 쓰며 끼어들었다.




" 왜. 때려줄꺼냐? "



" 올. 재윤이가 드디어 여자에 눈을 뜬 건... 으악!! 왜 다들 나만 때려!!! "



" 니 밖에 맞을 인간이 없잖아 새끼야. "



" 에라이!! 친구를 때려죽이는 이 더러운 족속들!!! "



" .....한 대 더 맞고 싶지? "



" ..미안. "





재윤이 내가 아까 때린 의준의 정강이를 다시 한 번 때리자, 의준은 정강이를 또 부여잡고 펄펄 뛰었지만 재윤의 한 마디에 바로 입을 닫았다.


가연은 뒤에서 키득거리더니, 나에게 크림빵과 바나나우유를 주머니에서 꺼내 건넨다.


나는 이게 뭐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 누가 준 건지는 비밀인데, 택배야. "



" 생각 없어. "



" 야, 너 지금 완전 이쑤시개 같은 건 아냐? 점심 좀 제때에 처 먹어! "



" 허, 그것 참 감동이네. "



" 비아냥 대기는..... 근데 너 치마가 굉-장히 짧다? "




가연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치마를 가리키자 남자 둘의 시선도 일제히 내 치마 쪽에 쏠린다.

뒤늦게 손으로 다리를 가려보지만, 당연히 가려질리는 없다.



제길... 이래서 점심도 안 먹은건데....





" 와.. 설혜야. 너 내가 없는 사이에 학생을 때려치우고 일진의 길을 택한것이더냐? "



" 지랄한다. "



" ...근데 너 진짜 치마 왜 그러냐. 그게 수건이지 치마야? "





재윤이 내가 오늘 아침에 중얼댔던 말과 똑같이 말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기름을 붓는 그의 반응에 덩달아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 수건 치마다. 꼽냐? 내가 한 거 아니야. 어떤 개같은 놈이 이랬는지 원...

잡히면 그 새끼 얼굴도 확 수건으로 만들어버릴테다. "



" 오우, 아니야. 늘린 것 보다 그게 더 보기 좋아. 우리 설혜는 다리가 예뻐서... "



" 아가리 찢어버린다. "



" 넵. "





안의준이 장난스럽게 말하다가 내 한 마디에 입을 다문다.


쟤는 저러니까 맞는거지. 근데 자기가 정작 그걸 모르고 있으니...





아까부터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가연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그녀의 손에서 크림빵을 빼앗아 봉지를 뜯는다.


달콤하고 고소한 크림 냄새가 내 코를 압도하자, 그제서야 내가 어제 저녁부터 공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크림빵을 한 입 크게 베어물고서는 우물거렸다. 그리고는 가연을 보면서 말했다.




" 근데 니들은 여기 왜 왔냐? "



" 심심해서. "



" 내가 놀이기구냐? "



" ...응 이라고 하면 때릴거지? "



" 응. "





내가 싸늘하게 대답하며 크림빵을 베어물자, 의준은 하하 웃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그런 의준을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던 재윤은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사실, 안 좋은 이야기 하러 왔다. "



" 뭔데. "





내가 시큰둥하게 묻자, 재윤은 어련하겠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일신남고 새끼들이 기어코 도전장을 통과시켰어. 미친 교장도 수락했대. "






" 그래?













.....잠깐, 교장도 허락했다고?! "




" 타이밍 참... "



" 아니 이것들이 쌍으로 처 돌았나! "



" 올. 보스몹이 깨어나셨네. 그렇게 싫어? "



" 당연한거 아니냐? 내가 지들 물건이냐고! "





의준의 그렇게 싫냐는 말에 크림빵을 책상에 팽개치며 성내듯이 대꾸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일주일 전, 우리 학교에 요상한 공문이 하나 도착했었다.


그 공문은 일신남고의 교장이 우리 학교에 보내온 공문이었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바로 일신남고의 복싱부원들이 우리 학교 복싱부원들과 경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공석에서 말이다.


처음에는 우리 학교 교장이 우리 학교 복싱부에는 여학생들도 있기 때문에 결말이 뻔하다며 거절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온 공문의 내용은 우리의 거절에 대한 승복이 아니었다.


일신남고의 교장이 말하기를, 우리 학교 복싱부는 태권도부, 유도부, 이중격투기 등등까지 겸하고 있으므로 다들 실력자 일터이니 성별에 관계없는 멋진 경기가 펼쳐질거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 학생들의 도전을 여과 없이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지금 그 제안을 교장이 결국 승인했다는거고.



여기까지는 뭐, 딱히 나에게 손해볼것은 많지 않았으나 그 뒤에 딸려온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 우리가 이기면 그 쪽의 주장을 일주일만 빌려달라. '










주장.




우리 학교 복싱부의 부장.

















' 주장이 반설혜 양이라지요? '









지금 이게 무슨 웃기지도 않는 조건이란 말인가!


왜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판매물품처럼 걸어놓는거야?




이 소식을 재윤에게 전해들은 나는 교장에게 찾아가 어찌된 일이냐며 따졌었다.



그 때 내 질문에 교장이 답하기를,




' 일신남고 학생들이 나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고 하도 조르기에 승리 상품으로 걸어놓는 것을 승인했단다.


설혜 네가 그 곳에 가서 너의 가르침을 널리 퍼지게 하면 우리 학교의 명성도 올라갈테고, 그 학교 학생들도 좋아할테고, 너에게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테고.


일석삼조 아니겠느냐? '









한 마디로 교장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이득 보는 장사였던 것이다.




나는 교장에게 절대 싫다며, 죽어도 안 한다며 이미 극구 만류한 상태인데...


지금 이 상황은 교장이 내 말을 씹어먹었다는 소리 아닌가.







" 에이, 설마. 걔들이 너한테 이상한 짓......이라도 하겠어? 하하! "




" 이상한 짓이라는 말 뒤에 붙은 침묵이 되게 거슬린다? "






내가 의준을 곁눈질로 째려보자, 의준은 ' 난 무슨 말도 못해... ' 라며 입을 삐죽댄다.







" ....할거냐? "






재윤이 내가 앉아있는 의자 앞 책상에 걸터앉으며 내 크림빵을 빼앗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우물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 후... "



나는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렸다.










" ...그냥 이렇게 된 거, 부딪힐까? "





내가 말하자, 가연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진다.







" 뭐여, 그럼 니가 직접 나가겠다는 소리야? "




" 왜, 안되나? "




" ....니가 진짜 일신남고에 가기 싫은가 보구나... "




" 어. 완전, 진심으로 가기 싫어. "




" 그럼 이따 방과후에 부로 내려와. 어차피 오늘 쌤들도 없으니까. "





재윤이 내 크림빵을 한 입 더 베어물고는 나머지를 내 입에 쑤셔넣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나는 다급히 입을 우물거리며 그를 불렀다.






" 으읍! 으응으! "




" ......쟤 지금 뭐라는 거냐. 옹알이 하냐? "




" 통역. 재윤! 잠깐만! "





의준이 내 말을 그대로 통역해주자, 재윤이 다시 몸을 돌려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나는 빵을 다 씹어먹은 뒤에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보았다.




나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더 낮아져있었다.










" 경기 방식은? 설마 토너먼트냐? "





" 아니, 올킬이다. "





" 종목 제한은? "





" 그 쪽은 복싱만. 우리는 복싱, 태권도, 이중격투기까지 허용. "





" 그럼 혹시.... "




내가 뜸을 들이자,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 ....글러브냐? "









내가 묻자, 의준과 가연까지도 재윤을 쳐다보았고, 재윤은 아무 말이 없다가 씨익 웃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 ......아니, 맨손이다. "









그 말을 듣자, 나도 그와 똑같이 씨익 마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지금까지 교장이 한 짓 중에 가장 마음에 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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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29 20:33 | 조회 : 1,070 목록
작가의 말
비제르

오랜만입니다! 약 2달 전 2화에 올라온 눈0눈 님의 댓글 보고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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