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0>





“ 더... 더 빠르게! ”






재윤이 소리쳤다.

그러자 전학생은 움찔하더니, 발을 무리해서 빠르게 놀리기 시작했다.

재윤이 그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소리칠 새도 없이, 결국 전학생은 발을 접질러 미끄러지더니 쿠당 하고 주저 앉았다.


그 진동에 의해 내 손에 있던 레몬차가 순간적으로 출렁인다. 재윤이 소리쳤다.







“ 이 봐, 괜찮아? ”



“ 으... 뭐가 이렇게 힘들어... ”



“ ..그러게 왜 설혜랑 그런 약속을 한거냐? ”







의준이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는 의준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갑자기 미간을 팍 찌푸리더니 그대로 굳어버린다.







“ ....뭐야, 왜 그래? ”



“ 흠, 삐었나보군. ”







내가 레몬차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고 옆에 있던 구급상자를 집으며 말했다.


나는 링의 줄을 잡고 한 손으로 홱 점프하며 링 안에 착지했다.

내가 다가가자 의준은 자리를 쓱 비켜주었고, 나는 전학생의 옆에 털썩 앉으며 그를 끌어당겼다.







“ 야, 앉아 봐. ”







내 말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일으키려던 몸을 다시금 주저앉혔고, 아프긴 아픈지 눈살을 찌푸리며 발목을 내어준다.


나는 구급상자를 열어서 파스와 압박붕대를 꺼내들고, 옆에다 잠시 놓아둔 뒤 그의 발목에 손을 대었다.







“ ..여기야? ”



“ ....아니. ”



“ 여기? ”



“ 아니. ”



“ 그럼 여.... ”



“ 아! ”







내가 그의 복숭아 뼈 옆 부분을 건드리자, 그가 대답 대신 신음을 흘린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 운이 좋네, 파스만 뿌려도 되겠어. 그냥 인대가 놀란 거야. ”




“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







전학생이 피식 웃으며 묻지만, 나는 대꾸 없이 그저 파스를 뜯고 있을 뿐이었다.



그야, 어느 곳을 다쳐야 치명상을 입는지 정도는 알아야 편리할 테니까. 내 직업 상.


나는 뜯은 파스를 이리 저리 돌려보다가, 곧바로 그의 발목에 붙인 후 꾹 눌렀다. 그는 또 한 번 신음을 흘린다.


나는 일어서서 다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윽고 내 손을 덥석 붙잡고 입술을 꽉 깨물며 일어선다.

나는 한 번 피식 웃고는 곧바로 링에서 내려와 링 옆의 의자에 앉아서 레몬차를 집어 들었다. 이미 차는 식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식은 차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개의치 않았고, 남은 차를 조금씩 마시며 의준에게 수업을 받는 전학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어느새 이재윤이 내 옆에 와 있었다.






“ ....며칠 남았더라. ”



“ 사흘. ”



“ 순서는, 정했어? ”







그가 내 레몬차를 빼앗더니 한 모금 마시면서 물었다.


하지만 식어서 맛이 없는지 곧바로 내게 돌려주곤 또 다른 레몬차를 타기 시작한다. 나는 말했다.







“ 잘은 모르지만, 일단 나는 마지막이다. ”







내 말에 그는 레몬차를 타다 말고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다.







“ 왜? 니가 첫 주자로 나가면 금방 끝날 텐데. ”




“ 내가 나가는 이유는, 그저 만일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







나는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나는 얼굴을 많이 알려선 좋을 게 없기에...


혹시 모를 일신남고의 선전에 대비하기 위하여 비장의 카드 노릇을 하는 것 뿐이지,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런 대회의 참가를 최대한 기피해야하는 입장이었다.

난 밤에 눈이 밝은 편이라 일을 할 때도 주로 밤이어서 대부분의 ‘제거 대상’들은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나와 같은 밤에 밝은 눈을 지닌 이가 또 있을지 말이다.







“ 뭐, 최후의 수단 같은 건가? ”



“ 그런 셈이지. ”



“ 그래. 네 판단이 그렇다면야. ”







재윤은 피식 웃으면서 레몬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너무 뜨거운 듯 재빨리 입을 떼곤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링 쪽을 바라보았다.


전학생과 의준은 스파링 중이었는데, 멀리서 코치만 듣다가 실전으로 스파링을 해보니까 조금 힘이 드는지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중이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다가, 문뜩 의문이 들어서 재윤을 돌아보았다.







“ 근데, 우리가 이겼을 땐 정말 나를 지키는 것 빼곤 다른 상품이 없냐? ”



“ 아, 그거 말이지. 그거 교장끼리 합의 봤다고 하던데. ”







재윤이 깜박 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 뭘? ”




“ 우리가 이기면, 일신남고의 ‘반설혜 대여’ 요구를 철회함과 동시에 케이크 전문점 무료 쿠폰을 준다는데? 한 10만원 어치였나? ”




“ ....케이크..? ”

























‘ 이 봐, 어세스. 넌 도대체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아니지, 음식을 좋아하긴 하는 거야? ’



‘ 글쎄... 스테이크? ’



‘ 헤에.. 스테이크를 처음 사줬던 게 엊그제 같은데. ’



‘ 그러는 너희 둘은 뭔데? ’







그 때, 두 사람은 내 말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동시에 말했다.







‘ 케이크!! ’



‘ ...케이크? ’



‘ 응, 난 하루 종일 케이크만 먹어도 살 수 있어. ’



‘ 설마 샨 너도? ’



‘ ...응. 칸이랑 똑같아. ’



‘ 거 참. 샨, 그냥 웨이렌이라고 불러. 네가 날 칸이라고 부를 때 마다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 같다고. ’



‘ 싫어. ’



‘ 어째서! ’



‘ 얼씨구, 또 싸우네. 됐으니까 니들이 환장하는 케이크나 먹으러 가자. ’



‘ 쳇. 알았어. 샨, 가자! 아주 그냥 가게를 파산내고 오는 거야! ’



‘ 뭐, 사준다면야. ’



‘ 괜찮아, 어세스가 사주겠지! ’



‘ ...망할 식충들 같으니... ’



















그 때, 조금 떨어진 근처 케이크 집에 가서 셋이서만 케이크 5개를 먹고 돌아왔다.

나는 3조각 만에 포기를 선언했으나, 그 둘의 케이크를 향한 전투력은 어마 무시했다.


벌써 5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 그 애들이... 좋아하겠네.... ”



“ 응? 누구? ”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







재윤이 묻자,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빈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건지... 이러니까 내가 한 50살 쯤 먹은 노인네 같군.







“ 어이! 좀 쉬었다 해! ”







나는 방 안에 홍수가 나기 전에 그들의 땀을 식혀주기 위하여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스파링을 멈추고 순식간에 이쪽으로 뛰어오더니 재윤이 건네는 물통 한 개씩을 싹 비운다.


나는 빈 패트병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의준에게 물었다.







“ 그래서, 어떻든? ”



“ 어후, 쟤 키가 장난 아니게 커서 목 아파 죽겠어. 뭐, 그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 되겠지만, ”



“ 그래. 그럼... 나만 하고 이만 마무리 할까. ”







내가 무심히 내뱉은 말에 재윤과 의준이 돌처럼 경직된다.


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의준이 조용히 다가와서 내 어깨를 비장하게 붙잡는다.







“ 설혜야. ”



“ 왜. ”



“ ....절대로, 절대로 흥분하면 안 된다.... ”



“ 알았다니까. ”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그의 말에 성의 없이 대꾸하고는 링 쪽으로 걸어갔다.


이것들은 내가 24시간 흥분한 상태로 사는 줄 아는 건가. 나도 때와 장소는 가릴 줄 안다.



뭐... 아마도.



나는 고개를 우드득 꺾으면서 눈을 돌려 전학생을 바라보았고, 전학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리고 목을 긁적거렸다.


나는 링 위로 걸어 올라가면서 아까 전학생을 치료할 때 썼던 구급상자를 저 멀리 던져 놓는다.

아마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넘어지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재킷을 천천히 벗으며 그에게 올라오라는 듯 고갯짓을 해 보인다.


그는 어색한 듯이 밍기적 거리면서 링 위로 올라왔고, 나는 가벼운 회색 반팔 티와 트레이닝 바지만 입은 채 신발까지 벗는다.

재윤은 또 내가 실내화가 아닌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고 뒤에서 투덜거렸고, 의준은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손에 남아있는 물기를 털어내기 위해 팔을 크게 휘두르며 몸을 푼 다음, 곧바로 자세를 잡는다.

전학생은 그런 내 모습에 뭔가 각오를 한 듯 가드를 들어올린다.


내가 조용히 말했다.







“ 난 코치 해주지 않을 거야. ”



“ 뭐? ”







그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가드를 약간 내린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 네 코치는 이재윤이 할 거야. 이재윤이 내 자세를 분석해주면 알아서 들어와라. ”



“ 결국에는 내가 노동하라는 거냐.... ”







이재윤이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쉰다.

의준은 자신이 코치로 지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쁜지 재윤의 옆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몸을 살짝 앞 뒤로 흔들며 무게중심을 수시로 바꿨다.



내 모습을 본 이재윤은 그 즉시 내 자세를 파악하고 소리쳤다.







“ 조심해! ”







전학생은 깜짝 놀라더니, 몸을 뒤로 젖히면서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 덕에 그는 자신의 턱으로 날아오는 나의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물론 그가 적당히 피할 수 있게 천천히 주먹을 휘두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 계속 이 정도의 속도로 공격을 했을 때, 피하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대처를 할 수 있는지 확인이나 해볼까... 나는 눈을 다시금 크게 떴다.



성과를 시험해 봐야겠군.



나는 발을 겹 딛으면서 스텝을 꼬이게 하여 방향에 혼란을 주다가, 일부러 타닥 하는 발소리를 내고 곧바로 오른쪽으로 움직여 체중을 실은 주먹을 날렸다.


훅 소리가 나더니, 그는 또 다시 아찔한 간격으로 간신히 머리를 젖혀 피했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추어서 이를 악물고 내 옆구리 쪽으로 달려든다. 재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 안 돼, 빠져 나가! ”



“ 늦었어. ”







나는 방향을 틀어서 곧바로 몸을 뒤로 홱 물린 다음에, 반동을 이용하여 발꿈치를 사선으로 휘두른다.


직선으로 걷어차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머리 쪽을 겨냥해볼까.


그는 날아오는 나의 발꿈치를 보고 ‘아차, 태권도가 있었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가드를 관자놀이 쪽으로 올린다.

빠져나가거나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기에, 가드로 충격을 줄여 데미지를 최소화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었을 터.


나는 대충 그가 입을 타격을 생각해서 어딘가 붓거나 멍들거나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발꿈치를 천천히 휘둘렀다.


그는 내 발에 세게 맞더니, 실내화가 닳을 정도로 왼쪽으로 휙 밀려난다.



한편 의준은 내가 발꿈치를 들어 올리자마자 손바닥을 들어 눈을 가리더니, 어느새 손가락 틈 사이로 우릴 곁눈질 하고 있었다. 그가 겁난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저 죽음의 각도에서 설혜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걷어찼다면 바로 응급실 행이었겠지..? ”



“ 응급실 행은 무슨. 즉사야, 즉사. ”







재윤도 멍하니 함께 중얼거렸다.


전학생은 왼쪽으로 강하게 밀려난 탓인지 실내화가 마찰로 탄내를 풍기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재윤이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소리쳤다.







“ 이 봐, 강유현! ”



“ 응? ”




“ 오늘 설혜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힘’인 듯 싶다. 한 번 맞으면 어딜 맞던 간에 단박에 골로 갈 수도 있어. 웬만하면 피하고, 빈틈이 보이면 옆구리보다는 어깨를 공략해. 너무 가까이 붙지는 말고.

오늘 주 컨셉이 ‘힘’이라고 해서 설혜의 스피드가 느려지는 것도 딱히 아니거든. ”



“ 이런 망할..!! ”







그는 약하게 소리를 지르며 내 주먹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피하는 중이었다.


하긴.. 내가 예전부터 힘이 좀 세긴 했지.

조금 어렸을 적, 그러니까 조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일 즈음에 한 번은 노인네의 전용 총을 부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단지 손의 힘으로 말이다.


당시에도 조직의 보스였던 노인네는 시험 삼아 쥐어보라고 내 주었던 자신이 총이 한 여자아이의 손에서 작살이 나자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난 그저 총을 잡는 법조차 몰라 이리저리 만져보던 것 뿐 이었는데.



그 후로 노인네는 입버릇처럼 내게 힘 조절에 주의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훈련을 할 때도, 복싱 대회에 나갈 때도, 심지어 의뢰를 할 때도 절대 나의 힘을 온전히 발휘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언젠가 내가 그의 잔소리에 넌더리가 나서 내가 힘이 세면 얼마나 세다고 이러냐며 분개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 어세신. 그 총은, 1톤짜리 트럭이 밟고 지나가도 부서지지 않던 총이였어. 이젠 고물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총이긴 했어도... 그걸 악력만으로 부쉈다는 것은 절대 보통 일이 아닌거다.

너의 순수한 힘만으로도, 넌 우리 조직에서 충분히 위험한 존재야. ”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나는 사실 그를 진심으로 상대해 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난 한 마디로 그를 ‘봐 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땀이 많은 편인건지 아니면 이 정도로 봐주는 것도 그에겐 버거운 건지 그는 의준과의 스파링 때 흘렸던 땀보다 2배 정도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땀에 미끄러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땀이 떨어진 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 순간, 그는 내 빈틈을 찾은 듯이 순간적으로 자세를 낮추고는 내 허리를 확 껴안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나는 그의 몸에 밀려 뒤로 넘어졌고, 그도 내 위로 우당탕 쓰러졌다.

재윤이 그에게 옆구리가 아닌 어깨를 공략하라고 했으니 태클을 걸진 않겠거니 하고 방심한 탓이었다.


그는 씨익 웃으며 이겼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고, 나는 이 번 라운드는 내 실책이 컸으니 져주자는 마음에 몸에 힘을 풀고 저항을 멈추었다.

이제 그가 내 몸을 조이면서 몇 대 때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그가 나를 후려치기를 기다렸다.


근데 그가 나의 몸에 올라타서 몸을 죄려고 하는 순간, 그와 나의 눈이 딱 마주친다.


아직 그는 허리를 펴지 않은 채 내 위에 약간 떠 있는 상태로 엎드려 있었고, 그가 몸을 일으키려고 뻗은 두 팔 사이에는 내 머리가 있었다. 자세가 어째 좀 이상했다.


전학생과 내 얼굴 사이의 거리는 불과 10cm에서 15cm 정도.


그의 동공에 강진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 뺨에 또 다시 정체 모를 아주 희미한 홍조가 띄워진다.


나도 벙진 얼굴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얘 지금 뭐하는 거야?



난 곧바로 눈빛에 굉장히 싸늘한 기운을 심으며 비하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 너... 지금 뭐하냐? ”







그리고 난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주먹을 들어 그의 팔꿈치 안 쪽을 거세게 가격한다.

그는 윽 하고 신음을 흘리더니 맞은 팔꿈치 쪽으로 기우뚱해졌다.


나는 그가 몸이 기울어지자마자 인정사정없이 그의 옆구리를 발로 차면서 그를 옆으로 넘어뜨렸고, 몸을 굴려 벌떡 일어나 곧장 그의 위로 올라탄다.


나는 즉시 그의 목에 팔을 눌러 숨통을 조였다.


그가 잊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태권도와 권투 말고도, ‘이중격투기’가 있다는 것을.







“ 방심한 대가다. ”



“ 컥.. 으극.... ”



“ 미쳤구만. 그렇게 완벽한 기회를 멍 때리다가 날려? 바로 올라타서 다리로 몸을 죄었어야지! ”



“ 윽... 어떻게 그.. 커억.... ”



“ 도대체 뭐한 거야? 적어도 5초 정도는 가만히 쳐다봐줬는데, 그 5초 동안 너도 날 쳐다보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치자, 전학생은 말없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위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바라본 쪽에는 의준과 재윤이 있었고, 그들은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저 놈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모르는 건지, 아는데 태연한 건지 나 참... ”







의준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 무슨 말이야. 그런 쪽이라니. ”



“ 아니, 설혜야. 생각을 좀 해 봐. 복싱에 관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란 말이야. ”



“ 그러니까 뭘? ”







내가 답답하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되묻자, 의준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냐며 재윤을 붙잡고 고뇌하기 시작했다.

재윤은 그냥 말하지 말라는 듯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고 중얼대고 있었고, 전학생도 조여드는 성대로 좀 닥치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나는 의준의 말이 궁금한 나머지 전학생이 숨만 쉴 수 있고 말은 못하도록 목 뒷부분과 옆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꾹 눌렀다.

결국 전학생은 목소리를 잃은 채 숨만 조용해졌고, 이윽고 주변이 고요해진다.


내가 재촉하는 눈빛으로 의준을 바라보자, 이렇게까지 주변이 조용할 필요는 없었다는 듯 난처한 얼굴을 하는 의준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이 선 듯 한 의준이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남자들은 말이지. 그런 각도로 여자를 쳐다보게 되는 순간... ”




“ 순간? ”







그는 뜸을 들이더니,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꺼냈을까 하는 후회 막심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다.







“ ....그게... 음... 그게 깨어나. ”



“ 에? ”



“ 깨어난다고, 그게. ”



“ 그게? 그게가 뭔데? ”







내가 되묻자, 그는 ‘맙소사.’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 음.... 그러니까... 뭔가가 갑자기 팍 온다고 해야 하나... ”



“ 그러니까 뭔가가 뭔데? ”



“ 아, 왜 그거 있잖아! 남자들의 대자연의 본능 말이야!! ”



“ 본능? ”



“ 그래, 이 순백의 신생아 같은 놈아! 그 치명적이고 순수한 본능을 니가 알기나 해?! ”



“ 모르니까 묻잖아 미친놈아! ”







나도 참다못해 그에게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인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나를 이해시키려는 것을 포기한 듯 천천히 말했다.







“ 너 같은 얼굴이 그 각도로 들어오면 상대방의 뇌가 포맷된다는 소리다, 임마. 정신이 회까닥 나간다고. ”



“ 염병.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







나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며 전학생의 목을 놓아준 뒤 몸을 굴려 일어선다.

그러자 전학생은 살았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 모습을 본 의준이 또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자 재윤이 귀에서 손을 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 그걸 굳이 설명하는 너도 대단하지만, 그걸 끝까지 못 알아들은 설혜도 어지간하다. ”



“ 아니, 도대체 내가 뭘 못 알아들은 건데! ”



“ ...몰라도 돼, 임마. ”



“ 그렇게 말하는 그 쪽은 변태세요? 안 듣겠다더니 다 들으셨구만? ”



“ ........ ”







의준이 깐죽대자, 재윤은 말없이 발목을 풀더니 의준의 정강이를 발로 후려친다.

그러자 의준은 고통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강이를 잡고 펄펄 뛴다.


저 정강이는 얼마 전에 내가 찼던 곳인데... 저 놈도 은근히 잔인한 녀석이란 말이지.


나는 그들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다가 눈을 돌려 전학생을 바라보았다.







“ 뭐, 상대는 남고라 경기에서 남자의 본능 어쩌구로 인해 실수하진 않겠지만, 주의하도록 해. ”



“ 어... ”



“ 근데, 그 각도라는 거에서 보면 난 어떻게 생겼냐? ”



“ 엥? ”



“ 뇌가 포맷된다며? ”







내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모두에게 물었다. 그러자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전학생이 머리를 긁적인다.







“ 음... 눈이랑 입술이.. 확대되어 보인 달까... ”



“ 그게 어때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



“ ...반설혜 쟤는 나중에 신혼여행가서 독방 쓸 새끼야. ”



“ 인정. 쟤는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



“ 다 들리니까 찢어버리기 전에 입 다물어. ”



“ 넵. ”







내가 살벌하게 얘기하자, 의준과 재윤의 입이 지퍼처럼 닫힌다.


아니, 여기서 신혼여행이랑 각방이 왜 나오는 건데? 설마 저 새끼들... 진짜 변태인가?


내가 뭔가 깨달은 듯이 측은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유독 찔리는 구석이 있는 듯 의준이 당황해선 손사래를 쳤다.







“ 아니야, 니가 생각하는 건 무조건 아니야! ”



“ 내가 뭔 생각을 하는 줄 알고? ”



“ 뻔하지! 신종 변태라던가, 저질이라던가! ”



“ 잘 아네. ”



“ 우아악! 알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 짓지 마! ”



“ 지랄 발광을 해라, 아주. ”







나는 혀를 쯧쯧 차면서 다시 재킷을 걸치고 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원래 앉아있었던 그 의자로 돌아와 신발을 신는다.


눈이랑 입술이 확대되어 보인다고? 그럼 얼마나 괴상하게 보인다는 거야? 아, 원래 그런 뜻인 건가?


나는 내 얼굴에서 눈과 입술만 확대된 모습을 상상하다가 금세 그만둔다. 상상속의 나의 얼굴은 못생긴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럽게 턱을 만지다가, 옆에 재윤이 다가오자 고개를 들고 말했다.







“ 넌 어떨 것 같아? ”



“ 뭐? ”



“ 확대되어 보이니까 못생긴 걸 넘어서 혐오스럽게 보이지 않나? ”







내가 그를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묻자,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뭔가를 고민하는 듯 공상에 잠겼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공상에서 벗어나 나를 향해 장난 끼가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가 내 의자를 손으로 받치며 씨익 웃어보였다.

















“ ..글쎄. 직접 보기 전엔 모르겠는데. ”






0
이번 화 신고 2017-02-25 15:38 | 조회 : 884 목록
작가의 말
비제르

혹시 저 기다리셨나요?ㅎㅎ 다음 화는 여러모로 아주 중요한 화입니다! 잊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