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2)




<9> # part 2.









“ 난 잘 있어. 넌? ”



[ ...나도. ]



“ 그래. 다행이네. 완쾌는 가능한 거지? ”



[ 응. 내일이면. ]



“ 내일? 생각보다 빠르네. 보스 말로는 전치 2주랬는데. ”



[ 맞아. ]



“ 어엉? 근데 어떻게 일주일 만에 나와? ”



[ ...갈 곳이 있어. ]



“ 참 다닐 곳도 많다. 내일 데리러 가줘? ”



[ 아니. 칸이 와준댔어. ]



“ 칸? 아, 백천우? ”



[ 응. ]



“ 알았어. 퇴원하면 연락하고. ”



[ 응. 조만간 봐. ]



“ ....끊는다. ”







뚝.



“ 조만간이라...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 인가? ”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기어코 다시 새로 사서 늘린 치마를 펄럭이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향수 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치 며칠 씻지도 않은 몸에다가 향수병 하나를 들이붓기라도 한 듯한 냄새랄까.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쥐었다.

냄새가 점점 가까워지는데다가, 인기척이 느껴지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치마인지 걸레인지 모를 길이의 하의였다.

껌을 쩍쩍 씹으며, 어울리지도 않는 미백크림을 덕지덕지 처바른 괴상한 여학생 5명은 삐딱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냄새는 저들의 머리에서 나는 냄새가 분명했다.

머리를 감던가, 왜 향수만 뿌리고 지랄이야. 그리고 뭘 바를 거면 목에도 좀 바르던가.


그 여학생들 중 파란색 져지를 걸친 한 명이 팔자걸음으로 걸어 나와서 내 앞을 떡 하니 막아선다.


학교가 끝나고 복싱부에 내려가던 길이었는데, 뜬금없이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원.


나는 코로 숨을 쉬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녀들을 내려다보았다. 다들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았다.





“ 야, 니가 반설혜야? ”





....이게 초면부터 반말을 까네?





“ 나 알아? ”



“ 하.... 뭐? 나 알아? 얘 싸가지 좀 봐? ”



“ 씨발.. 키 존나 크네, 짜증나게. ”



“ 야. 너 뭔데 반말이냐? ”





그들이 나에게 한 발씩 다가오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 니 년들이 먼저 반말 깠잖아? ”



“ 와... 패기 지린다. ”



“ 씨발년이.. 너 우리 누군지 몰라? 이 학교 3학년이잖아. 눈 없어? ”



“ 어딜 봐서 니들이 3학년이냐? ”





내가 픽 웃으며 고개를 들고 그들을 깔보듯 바라보자, 파란 져지를 입은 여자는 입술을 꾹 깨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 저런 썅년이...! ”





그녀는 날 한 대 치기라도 할 것처럼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녀가 조금씩 걸어 올 때 마다, 나도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 아, 다가오진 마. ”



“ 뭐? 하, 설마 지금 쫄았냐? 아까 그 패기는 어디가고 이제 와서.... ”



“ 아니, 니 정수리 냄새가 엄청 독해서 말이지. 숨을 못 쉬겠거든. ”





내가 코를 틀어쥐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려보이자, 그녀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변해 버렸다.

그녀가 소리를 빽 지르면서 손을 올렸다.





“ 이게 자꾸....! ”





그녀의 손이 빠르게 내려오자, 나는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고 악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녀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듯이 꽉 조였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 꺄아아악!!! ”



“ 기차 화통 삶아먹었냐? 목청 좀 봐. ”





나는 그렇게 말하곤 그녀를 던지듯 확 팽개쳤고, 그녀는 그대로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채 휘청이다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중심을 잡는다.


그녀가 날 죽일 듯이 째려보는데, 눈빛으로 살인을 할 수 있다면 난 이미 즉사했을 것 같다.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녀의 눈이 뒤집힐 듯 커진다.





“ 저 미친년이! 잘못한 건 너야, 너란 말이야!! ”



“ 저건 또 뭔 소리야. ”





내가 짜증이 서린 표정을 지으며 서늘하게 말하자, 그녀는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날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 너 때문에 태훈이가 날 떠나갔어. 그깟 아무것도 아닌 니 년 때문에!

그렇게 착하고, 나만 바라봐주고, 나에게만 웃어주던 그 태훈이가!!!

너 우리 태훈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어떻게 꼬리를 쳤길래 태훈이가 날 떠나가냐고!! 이 더러운 걸레년아!!! “





순식간에 내 머릿속이 새빨갛게 변한다.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저 여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태훈? 그게 누구더라. 솔직히 말해서, 정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런 남자를 목격한 적도, 얘기해 본 적도, 더욱이 꼬리를 쳐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그게 누구고 무슨 이유로 이 여자를 떠나갔던 간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고로, 그녀는 지금 착각에 빠진 상태라는 거다.

그럼 그냥 좋게 넘어갈 수 있는 거겠지. 만약 내가 참을 수만 있다면.





“ 쓰레기 같은 년! 더러운 년!! 너 같은 건 불에다 태워 버려도 모자라!! ”









쿵ㅡ









“ ....뭐? ”



“ 하... 다시 한 번 말해줘? 너 같은 건 불에.... 꺄악?!! ”





머릿속이 더욱 새빨개진다.

마치 커다란 불꽃이 뇌를 둥글게 감싸는 듯 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핑 돌아가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받으면서, 반쯤 이성을 잃어 버렸다.

좋게 넘어가고 뭐고 간에 다 필요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단숨에 그녀의 멱살을 잡아 올리며 꽉 비틀었다.









“ 씨발.... 뭐? 뭐에 태워? ”






‘ ...워라! 태워라! ’






“ 불에다 태워? ”






‘ 악마.... 반역자를 태워라! ’









머릿속에서 이상한 공명이 일어났다.

나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리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소리를 질렀다.





“ 니가 뭔데!! 니가 뭘 안다고 불에 태우겠다 지껄이는 거야!!! ”



“ 꺄악!! 으흑.. 흐윽.... ”





내 주먹이 어떻게 막을 새도 없이 들어 올려 지더니, 곧장 그녀의 광대뼈를 후려친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내 주먹에 밀려 저 멀리 벽까지 날아갔고, 그대로 벽에 부딪혀 우당탕탕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벽에 부딪히면서 이라도 뽑힌 건지, 그녀는 흐느끼며 얼굴을 감쌌고 그녀와 함께 있던 패거리가 그녀에게로 황급히 달려갔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저절로 움직이는 발에 무기력하게 내 몸을 맡겨버린다.

새하얗게 변한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공명이 일어났다.

더 이상 내게 이성이란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 흐윽.. 아니야... 아니야..... ’







내 발은 이미 패거리들을 강하게 밀치며 흐느끼는 파란 져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 손은 그녀의 멱살을 또 다시 쥐고 있었고,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내 쪽으로 질질 끌려왔다.


나는 손에 힘을 주며 그녀를 홱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는 그대로 숨통을 차단당해 격렬하게 켁켁 거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키가 훨씬 작은 그녀는, 이미 발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다.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쿨럭 거리며 산소를 찾아 발을 버둥댔지만, 사실상 그저 소용없는 몸부림일 뿐이었다.


나는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씨발. 날 태워보겠다며? 근데 왜 못하고 있어? ”






‘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






“ 왜, 갑자기 무서워지기라도 했나? ”






‘ 흑... 흐윽.... 아무 짓도 안했어.. 안했다구... "






" 어디 한 번 태워봐! 그 때 그 날처럼!!! "



" 꺄아아악!! 으흐윽... 흐윽... "



" 새까만 재로 하늘에 흩날리게 해 봐!!! "






' 제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 하지 말란 말이야!!!!! '






그녀의 눈에서 까만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내가 무의식중에 그녀를 또 때렸는지, 그녀는 옆구리를 붙잡으며 하염없이 흐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이상하게도 패거리들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기침 소리와 눈물에도 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또 다시 주먹을 치켜 올렸는데, 누군가가 내 손목을 뒤에서 탁 잡아챈다.





" 야, 반설.... "



" 놔. "





내가 홱 뿌리치자, 아까와 또 다른 손 하나가 이번에도 내 손목을 동시에 낚아챘다.

그리고는 날 확 끌어 당겨서 자연스레 그녀의 멱살을 놓치게 만들어 버린다.


그녀는 맥없이 땅으로 추락해 갑작스레 폐로 들이닥치는 산소를 가까스로 흡입했고, 어느새 나타난 패거리들은 그녀를 부축하며 내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이 손은 절대 여자의 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패거리들이 이 곳에 제 3자를 불러들였다는 것.


나는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발을 들며 빠르게 뒤 돌려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이성을 잃었을 때의 내 발차기는 그닥 정확하지 못했고, 금세 누군가의 손에 덥썩 붙잡히고 만다.

손의 주인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 와. 오늘 일기라도 써야겠는걸. ' 오늘 처음으로 설혜의 발차기를 막아보았다. ' 라고? "



" 야. 얘 지금... 제 정신이 아닌데? "



" 눈 좀 봐. 동공이 완전 풀렸잖아! "





뭐야, 3명인가?


내가 발을 거두어들이며 고함을 지르려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양 손으로 턱 붙잡았다.

코 끝에서도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고, 그만큼 누군가를 해치기도 쉬운 거리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 야, 설혜야? 반설혜? 너 왜 이러는 거야? "



" 씨발, 놓으라고 했어! "





내가 소리를 지르며 앞의 이의 턱을 후려치자, 내 어깨를 잡은 손의 힘이 더욱 세졌다.





" 반설혜! 나라고, 이재윤!! "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제 정신이 아닌 나머지 뿌옇게 변한 시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어 그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진다.





" .....이재윤..? "



" 그래, 나야. "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곧바로 날 파고들어서 내 뇌리에 박히자, 이성이 미친 듯이 소리쳐 말하고 있었다.



지금 너의 앞에 있는 사람은, 니가 아는 이재윤이라고.



점점 정신이 돌아오더니, 시야가 갑작스럽게 맑아지면서 눈 앞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성이 다시 내 몸을 장악한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턱이 붉게 변한 이재윤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전학생, 토끼눈이 된 안의준이다.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보자, 나는 방금까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나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 니가 왜 여기 있어? 먼저 복싱부에 가 있겠다고 했잖아? "



" 후아, 돌아왔다.... "





재윤이 주르륵 주저앉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자 의준이 다급히 재윤에게 달려가 턱을 살펴주었고, 전학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전학생이 날 심각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 너... 괜찮아? "



" 멀쩡한데. "



" 그럼... 아무 생각 안나? 니가 방금 뭘 하고 있었는지? "



" 내가 방금 뭘 했는데? "



" 아니, 너 방금까지 재로 어쩐다느니 뭘 태우라느니 어쩌구 했었잖아? "





보다 못한 의준이 식은 땀을 닦으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가 '태훈'이라는 이에 대하여 말하던 것 까지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 뭔 소리야. 난 저 새끼가 남자친구한테 차였다고 자랑하길래 들어주고 있었.... "





나는 말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녀의 몰골에 깜짝 놀란 나머지 뒷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 헐? 쟤 왜 저렇게 너덜너덜 거려? "



" ...너 진짜 병원에 한 번 가봐야 겠다.... "



" 설마 너희가 때렸냐? "





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들을 돌아보자, 그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 와... 쟤 우리한테 저래도 되는 거냐? "



" 야, 저거 니 작품이야. "



" 에? 난 그런 기억 없는데. "



" 그러니까 넌 병원이나 한 번 가봐!!! "



" 이게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





의준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나도 똑같이 소리를 지르며 대응했다.


어느새 패거리들 쪽으로 간 재윤은 왜인지 그들과 합의를 보는 중이었고, 전학생은 전화기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몇 분 뒤 우리 쪽을 돌아본다.

전학생이 진지하게 말했다.




" 설혜야. 너 혹시... 스트레스성 부분 기억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



" ....뭐? "



" 왜, 스트레스를 갑자기 과도하게 받으면 스트레스를 주었던 그 부분의 기억만 통째로 삭제되는 장애 있잖아. "





장애. 장애라고? 기억 장애?

내 머릿속으로 커다랗게 왜곡된 단어들이 불규칙적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그 말인즉슨, 내가 병신이다? "



" 아니, 그게 아니.... 윽?! "



" 미친 새끼가. 왜 멀쩡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고 지랄이야. "



" 설혜야아, 제발 좀 진정해! "



" 너 같으면 진정하겠냐!! "





내가 왁왁 거리며 두 명의 남자를 상대로 난리를 치고 있던 그 시각, 합의를 보던 재윤과 패거리들이 나를 바라보며 흠칫 떨고 있었다.


패거리들은 내게 목을 졸린 여자를 감싼 채로 나를 두려운 듯 흘겨보았다. 그러더니 곧바로 재윤에게 웅얼거렸다.





" 그냥... 그냥 없었던 일로 해주세요. 저희가 시비를 걸어서... 애초에 저희가 잘못했으니까... 그냥 그런 걸로.... "





여자의 말에 긴 한숨을 내쉬던 재윤이 나를 돌아보았다.

뒷 쪽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시선에 뒤를 돌아본 나는 뭘 보냐는 듯 그에게 눈썹을 치켜 올렸고, 그는 그런 내 표정에 피식 웃음 지었다.


그가 시선은 내게 고정한 채, 패거리들에게 낮게 읊조렸다.

























" ....네. 정말,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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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8-10 18:49 | 조회 : 951 목록
작가의 말
비제르

좀 늦었죠? 앞으로도 자주 올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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