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



<8> # part 2.



- 여주인공 시점(설혜)








[ 어세스. 뒤에 3명 달라 붙었어. ]



“ 나도.... 알아. ”





나는 벽에 몸을 밀착시키고 잠시 기다렸다.


뒤쪽에서 발소리가 났고, 그들이 내 앞에 다다랐을 때 쯤 튀어나가 한 명의 총을 홱 빼앗아버렸다.

그러자 자동적으로 나머지 2명의 남자가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나는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 재빠르게 몸을 돌려서 2발을 쏘고 몸을 숙였다.

한 발은 나에게 총을 빼앗긴 남자의 머리에 명중했고, 다른 한 발은 총을 든 채 뒤에 있던 또 다른 남자의 목을 파고 들었다.


내 머리 위로 총알이 쐐기처럼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가 몸을 숙인 나를 향해 다시 총구를 겨누려고 하는 순간, 나는 아까 뺏어든 총을 강하게 던져서 정확히 그의 이마를 때려 맞춘다.

그는 단단한 총을 맞고 그대로 푹 고꾸라져서는 기절해버린다.


1명은 그냥 기절이지만, 두 명은 죽였다.


나는 혀를 차며 그들의 주머니에 있는 무전기를 부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동이 이렇게 굼떠서 누굴 지킬런지. 생각보다 보호망이 너무 약했다.





“ A-3 지역은 전멸했어. 바로 B-1 지역으로 간다. ”



[ B-1 지역은 거기서 멀어. 바로 C-3로 가. 그보다... 전멸이라니? 너 설마! ]



“ 한 명 살아 있으니까 걱정 마. ”



[ ....수십 명 중에서 겨우 한 명...? ]



“ 다 죽이는 것 보다야 낫잖아. ”



[ 그래. 어련하시겠어. ]





귓속에서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최대한 외진 길로 몸을 틀어서 빠르게 달렸다.


그러고 보니.... 정작 얘는 어디 있는거지?





“ 그보다 넌 어딘데? ”



[ 난 B-3의 전망대에 있어. 여기 뜻밖의 선물들이 있길래. ]



“ 선물? ”



[ CCTV가 대량으로 설치되어 있더라고. 다 부숴버렸지. ]



“ 그래.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안 찍힐 순 없으니. 경찰들은? ”



[ 보스가 여기 통신망 완전히 망가뜨려놨어. 경찰을 부르려면 이 산골짜기에서 3시간은 걸어가야 할거다. ]






총을 쏘고 있는 건지 그의 목소리가 총성과 뒤섞인다.


이 곳은 회장의 별장이었다. 고로, 별장은 도심 속에 짓지 않는 법이다.

불행하게도 그의 별장은 산 속에 있었고, 산 속은 통신망이 사라지면 연락할 수단은 통째로 없어진다.


우리는 그걸 노렸다.





“ ...거기서 내 길잡이나 해.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



[ 흥. 싫거든? 그리고 거기 아니야. 왼쪽 갈림길로 가. ]





나는 오른쪽 갈림길로 몸을 돌리다가, 그의 말에 황급히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젠장. 분명 지도는 외웠는데... 망할 놈의 기억력 같으니.





“ 인원은? ”



[ 음... 대략 45명 정도. 이런, 여기가 무슨 개미 소굴인가. 끝도 없군. ]



“ 나 혼자 간다. 니가 B-1으로 가. ”



[ 45명을 너 혼자 상대하겠다고? 이 봐, 너 지금 100명은 훨씬 넘게 때려잡았어! ]



“ 잔소리 말고 가. 시끄러워. ”



[ ...알겠어. 조심해. ]



“ 니 걱정이나 하시지. ”





그 때,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걸음을 멈춘 뒤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모두들 손에 총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더군다나 방탄복 차림이다.


나는 이를 까득 갈았다. 젠장, 쉽지 않겠는데. 그냥 오라고 할 걸 그랬나.





[ 헉. C-3 애들은 무슨 육군이냐? 심각하네. ]





아직 전망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귀에 있는 무전기에서 다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 너 알고 있었어? ”



[ 전혀. 다른 곳과 스케일부터 다르군. ]



“ 젠장. 오늘이 내 제삿날인가. ”



[ 미안하지만 나 이제 너한테 못 가. 이미 구름다리 건너 버렸... ]



“ 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나도 지금 후회중이니까 입 다물어. ”



[ 쳇... 부탁하면 다시 구름다리 되돌아가려고 했는데. ]





그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킥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 ...어? 너 방금 웃었어? 웃은 거지? ]



“ 됐고, 위에서 지원 사격 좀 해줘. 스나이퍼 있지? ”



[ ..하나 있어. 저격해줘? ]



“ 어. 니가 저 우두머리로 보이는 훈장 단 놈부터 저격해. ”



[ 쳇. 난 스나이퍼랑 안 맞는데. ]



“ 그럼 어떡할까. 내가 빙의라도 해줘? ”



[ 하하. 사양할게. ]



“ ....그럼 시작한다. 열외선 탐지기 모드로 돌려. ”



[ 연막탄 터뜨리게? 오케이. ]





그의 목소리 뒤로 철컹거리는 소리와 무언가가 고정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자세를 잡았다는 신호였다.


나는 수풀 사이로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연막탄의 핀을 뽑았다.


그들이 움직이려는 듯이 크게 웅성거렸고, 별안간 우두머리가 선두로 나온다.

저격 당하기 좋은 위치로 알아서 나와 주시는군.


나는 만족스럽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핀이 뽑힌 자리에서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손에 힘을 주며 눈으로 거리를 계산한다.

정중앙, 사람들 사이에 공간이 뻥 뚫려있다. 좋아.





“ 준비해. ”



[ 맡겨만 주셔. ]





우두머리가 앞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나는 팔을 뒤로 크게 젖히고 힘껏 정중앙을 향해 탄을 던졌다.


이미 연막탄에서는 푸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바닥에 그것이 떨어진 직후,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폭탄처럼 터져 나오는 연기에 혼비백산이 된다.

우두머리가 우왕좌왕 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 침착하라! 이건 단순한 연막탄이다! 모두들 무기를 장전하고 위치로 가 대비를... ”









타앙ㅡ!!




그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우두머리의 눈동자가 멍해진다.

그는 갑자기 입을 헤 벌린 채로 뻣뻣하게 서 있더니, 곧이어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의 곁에 있던 다른 이들은 소리를 꽥 질러 댔고, 허공에다 총을 휘젓는다.


어디선가 헬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나는 고개를 치켜 들었지만 하늘은 적막했다.


그리고, 내 시선을 다시 앗아간 것은 실성한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이다.





“ 저... 저격수다! 저격수가 있다!! ”



“ 분대장님이 총에 맞으셨다! ”



“ 으아악!! 어디야! 앞이 보이질 않아!! ”





당연히 보이지 않겠지. 보이면 그게 연막탄인가.


모두들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넘어진 동료를 밟고, 밀치고, 외면하며 도망쳤다. 나는 또 한 번 혀를 찼다.





“ ...계속해. ”






타앙ㅡ! 타앙ㅡ!!






“ 으악! ”




“ 윽!! ”





도망치던 인간들이 하나 둘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수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이성은 분열되어갔다.


천우는 연기 속에서 우왕좌왕 거리는 이들을 차례로 명중시켜 저 세상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나는, 연기 속에서 헤메이다가 우연찮게 빠져나온 이들을 처리했다.


손에서 느껴지는 총의 진동이 짜릿했다.

스나이퍼는 권총처럼 빠르게 목표물을 바꾸고 쏠 수 없기 때문에, 연기 속의 이들이 점점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아까부터 계속 사용하던 검은색 총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나의 전용 총인 은색 총을 꺼내들어 양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치명적인 곳을 맞추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를 썼다.

하지만 습관 때문인지, 내가 방아쇠를 당기면 항상 총알들은 그 사람의 머리나, 목이나, 가슴만을 꿰뚫었다.


그건 천우도 마찬가지인가보다. 귀에서 그의 욕설이 들리는 것을 보면.





[ 젠장. 아무리 살려주려고 해도 자기들이 알아서 머리를 갖다대는구만! ]



“ 몇 명 남았냐? ”



[ 5명. 에라이, 조준은 어깨에 했는데 자꾸 움직이니까 머리를 쏘게 되네. ]



“ 이 쪽도 마찬가지야. ”





나는 중얼거리며 빠져나오고 있던 한 남자의 머리를 총의 밑부분으로 가격했고, 다른 한 명은 돌려차기로 광대뼈를 세게 갈긴다.


나는 이마를 총구로 긁적이며 별안간 내 눈에 포착된 한 남자의 배를 쐈다.


그는 배를 부여잡고 반쯤 혼절을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 3명 제압. 2명은 귀찮으니까 그냥 죽여. ”



[ 이미 죽였어. 안 죽이고 어떻게 해치웠냐? ]



“ 한 명은 총으로 때려서 기절, 적어도 뇌진탕. 또 한 명은 내 발에 맞아서 기절, 얘도 뇌진탕.

마지막은 배에 총을 쐈는데, 출혈만 있지 오래 방치만 안 된다면 살아 남을 것 같다. ”



[ 캬.. 이제야 너랑 팀 인게 실감이 난다. ]



“ 이로써 C-3 지역도 전멸. 다음은? ”



[ B-1은 인원이 열 댓명 정도라 배제해도 돼. A 구역이랑 C 구역은 니가 다 쓸어버렸고... B-2는 아까 정리 했어. ]



“ 좋아. 그럼 D 구역으로 와. 저택으로 들어간다. ”



[ 뭐? D 구역? 거기까지 가려면 10분은 걸려. ]





그가 총을 어깨에 매고 뛰기 시작했는지 그의 발소리와 함께 총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와 동시에 달리기 시작하며 탄창을 꺼내 은색 총에 집어넣었다.

검은색 총은 허리띠에 끼우고, 왼손에 은색 총만을 쥔 채 전속력으로 달린다.


나의 위치에서 저택의 위치까지의 거리는 고작 30m 정도다. 나는 말했다.





“ 그럼 나 먼저 가 있는다. 회장실로 곧장 와. ”



[ 좋아. 이따 봐. ]





저택은 의외로 썰렁했다.

저택 안의 경비들 마저도 밖에 나와서 우리를 제지했던 건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계단을 조용히 올라갔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도 없진 않을텐데... 회장을 지키는 경호원들도 없단 말인가.


결국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은 채 안전히 꼭대기 층에 다다른 나는 총을 고쳐 잡고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 끝에 보이는 커다란 문이 회장실의 문이었다. 적어도 정보에 따르면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소리를 죽이고 걸음을 옮기는데, 그 오른쪽 모퉁이에 나있던 하나의 문이 갑작스럽게 벌컥 열린다.


나는 몸을 빙글 돌려서 바로 그 쪽에 총을 겨누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던 그 때, 밑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자 시선을 좀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렸다.


그 문 앞에는 키가 아주 조그맣고, 자신보다 훨씬 큰 잠옷을 입은 채 멍한 눈을 비비고 있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총을 등 뒤로 숨긴다.


여자아이는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비몽사몽거리고 있었고, 나는 그 틈에 얼른 총을 허리띠에 집어 넣는다.

기껏해야 4살 정도로 밖에 안 보였다.





“ ....언니는 누구세요? ”





여자아이가 어느새 똘망똘망해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그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무릎을 굽혀 앉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앉아서 망설이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나를 보면서 무언가 떠오른 듯이 삿대질을 했다.





“ 언니, 혹시 뱀파이어예요? ”



“ ...에? ”



“ 언니 눈이 빨개요. ”





아이가 순진한 말투로 내 눈을 가리켰다.



아차.. 렌즈를 안 끼웠었지.



나는 움찔하면서 그 아이를 쳐다보았지만, 다행히도 그 아이는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따뜻하게 말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 ...그래. 난 뱀파이어야. ”



“ 나를 잡아먹으려고 왔어요? ”






아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물었다. 저런 말을 왜 웃으면서 하는 거야..





“ 아니. 나는 나쁜 어린이만 잡아먹어. ”



“ 그럼 나는 안 잡아먹어요? ”



“ 그래. 꼬마야, 이름이 뭐니? ”



“ 강유희예요. ”





유희라는 아이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나는 이 아이를 죽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괜스레 안도했다.





“ 유희야. 나랑 약속 2가지만 할까? ”



“ 약속? ”



“ 그래, 약속. ”





나는 유희의 작은 두 손을 한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 오늘 유희는 언니를 못 본거야. 알겠니? ”



“ 왜요? ”



“ 나는 몰래몰래 다녀야 해서, 들키면 안 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나를 봤다고 얘기해선 안 돼. ”



“ 응. ”





유희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다행히 말귀는 잘 알아듣는 편인가 보다.





“ 그리고 하나 더, 지금부터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마. ”



“ 왜요? ”



“ 밤에는 언니 같은 뱀파이어들이 잔뜩 있거든.

나쁜 뱀파이어들이 유희를 잡아먹을지도 몰라. 누가 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열어주지 말고. ”



“ 으응! 알았어요! ”





유희가 자신 있게 소리치며 헤헤 웃는다.

아직 어려서 말은 서툴렀지만, 총명해 보여서 더 이상 당부의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약간 미소를 띄우고 유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유희를 다시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유희가 방 안에서 문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쳐다보자, 나는 말했다.





“ 언니랑 약속한거다? ”



“ 응. ”



“ 그래. 잘 자. ”



“ 언니도 잘 자. ”





유희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서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고, 곧이어 꿈쩍도 안하던 문이 굳게 닫힌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고비는 넘긴 건가.





[ 푸.. 푸웁... 크큭.... ]





그 때, 귀에서 천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웃음소리라기보다는 웃음을 있는 힘껏 참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 큭... 푸흡.... ]



“ 너... 들었냐? ”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결국 그는 숨이 턱 막히는 소리를 내며 더 이상 참지 않는다.





[ 크흑... 푸하하하하!! 뱀파이어랜다, 뱀파이어! 크크큭... 푸하하하! ]



“ ..... ”



[ 끄흐흐흐... 아이고, 배야... 웃겨서 눈물이 다 나네.. 크큭... ]



“ ..... ”



[ 흐하하! 야, 설혜야. 너 언제부터 뱀파이어였냐? 착한 뱀파이어는 할 만하디? 푸흡! ]



“ ....죽고 싶냐? ”



[ 크크큭.. 큭.. 아니... 흡.. 그럴 리가... 푸흐흐흐.... ]



“ 닥치고 빨리 오기나 해. 죽여버리기 전에. ”



[ 그래애... 알겠어... 넌 먼저 회장의 피나 시식하고 있어... 크흡... ]



“ 얼씨구? 이젠 우냐? 가지가지 한다. ”



[ 아, 이걸 녹음해 놨어야 하는데. 우울할 때 마다 들으면 그냥 확 기분이.... ]



“ 한 마디만 더 해봐. 부숴버린다. ”



[ 넵. ]





아직 웃음기가 가득 담긴 어조였으나, 그가 대꾸했다.

나는 짜증스러운 마음에 무전기의 전원을 꺼버린다. 아, 스트레스 받아.


회장, 넌 오늘 잘못 걸렸다.


나는 조심성이라곤 없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문을 있는 힘껏 발로 뻥 찬다.

그러자, 이미 열려 있었는지 문은 쉽게 나가떨어졌고, 나는 재빨리 들어가서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활짝 열려있는 창문과, 아까 어렴풋이 났던 헬기 소리를 매치시켜 보았다.


회장은 이 저택에서 탈출한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자신의 부하들과, 저택과, 손녀딸인지 조카인지 모를 어린 여자아이도 내팽개쳐 놓고.


상상한 것 보다 더 쓰레기였다. 그 회장이라는 사람은.



나는 말없이 다시 무전기의 전원을 켜고 총을 허벅지에 꽂아 넣었다.





“ 야, 들려? ”



[ 응? ]



“ 비상이다. 회장이 증발했어. ”



[ 뭐어? ]



“ 우리가 개미 군단 때려 잡을 동안 헬기를 타고 도망친 것 같아. ”



[ 어? 나 아까 헬기 봤었는데.. 저격하려다가 니가 한창 바빠보여서 너 도와주느라 그냥 보내줬단 말이야... ]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나는 순간 머리 끝까지 용암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 넌 의뢰보다 내가 더 중요하냐? 바로 저격했어야지! ”



[ 그야 당연히 니가...! ]



“ 잠깐. ”



[ 어? 왜 그래? ]





나는 무언가가 번쩍 떠오르는 느낌을 받으며 회장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귀중품은 대충 챙긴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 시가 급한 상황에 모든 것을 빠짐 없이 다 챙기진 못 했을 터....


더군다나 USB를 챙겨야한다는 생각보단 금고를 챙겨야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 마련이다.


나는 서랍을 아예 엎다시피 하며 꼼꼼하게 살펴보았으나, 나오는 것은 각종 귀금속 뿐이다.



생각을 해, 생각을.

분명 이 방 어딘가에 있어. 나 같으면 어디에 숨겼을까... 다른 사람 같으면.....





“ 이 봐, 너 같으면 중요한 물건은 어디에 숨길 것 같아? ”



[ 몸에. ]



“ 아니, 방 안에서. ”



[ 방에서? 흐음... 책상 밑에. ]



“ 엥? 책상 밑? ”





나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 책상 밑에는 손이 잘 닿으니까 그 자리에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고, 쉽게 꺼낼 수 있고,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리지 않잖아. ]





그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는 듯 했다. 나는 곧장 고개를 숙여 회장의 책상 밑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조용히 말했다.





“ 아무것도 없는데. ”



[ 더듬어봐. ]



“ 뭐? ”



[ 더듬어 보라고. 꼼꼼하게. ]





그의 황당한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으나 지금으로써는 그의 말을 시행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회장의 책상을 더듬으며 모서리까지 세밀하게 만져보았다.

그러나 만져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마지막으로 가운데를 쓸어보면서 그에게 욕이라도 할 참이었는데 바로 그 때, 손 끝어서 움푹 패인 홈이 만져진다.


나는 깜짝 놀라서 패인 부분을 눌러도 보고, 쓰다듬어도 보고, 때려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잡아당겼는데, 잡아당김과 동시에 그 홈이 쑥 내려가면서 책상의 가운데 부분이 뽑혀버린다.


나는 바닥에 툭 떨어진 네모난 상자를 집어 들어서 뚜껑을 열어보았다.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말없이 조용히 일어서서 그 내용물을 재킷 안 쪽 주머니에 쑤셔놓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 백천우. ”



[ 으응? 나 이제 D 구역이야. ]



“ 넌 정말.... ”





나는 뒷말을 잇는 대신 서둘러서 저택을 빠져나가 저택 앞 오솔길을 달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 스나이퍼를 등에 메고 나에게 손을 흔드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힘겹게 입고리를 살짝 끌어올린다.



“ ...천재야. ”



[ 엥? ]



“ 임무 완수다. ”



[ 지..진짜?! ]



“ 어. 이제... 집에나 가자고. ”



[ 아싸! 보스에게 자랑해야지! ]





그가 멀리서 환호성을 지르자, 나도 걸음을 빨리하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말 별나다니까, 이 녀석. 보기와는 다르게 항상 반전이 있다.

그가 기분이 좋아보여서, 그의 손이 내 손가락을 툭툭 건드려도 오늘은 잠자코 있기로 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지금 시각은 5시. 해가 세상을 굽어살피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둡다.

천우의 얼굴은 이렇게나 밝은데, 우리는 아직 어둡다.



태양이 자신의 밝음을 너무 자만하지 않고, 우리들까지 꼼꼼하게 비추어줬더라면, 우리는 어두웠을까? 지금도 그림자가 되어 이 곳에 서 있을까?





“ 팀이라... 해보니까 나쁘지 않네. ”



“ 거 봐. 나랑 하니까 좋지? ”



“ 근데 다신 안 할거다. ”



“ 에? 어째서? ”



“ ...너 되게 시끄러워. ”



“ 헐.... ”





그림자로 영원히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우리를 봐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누군가가 우릴 알아주길 바라지 않았다.





“ ....수고했어. ”



“ 그래. 어세스, 너도. ”



















우리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삶으로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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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8-02 10:58 | 조회 : 1,001 목록
작가의 말
비제르

으음.. 10명보다는... 많은 것 같죠? 자, 그럼 떡밥 농사를 시작해볼까....(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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