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





<7> # part 1.



- 여주인공 시점(설혜)









[ 삐비ㅡ 삐비빅.. 경.. 경고... 치직ㅡ ]




" ..... "




[ 경고합니다. 이 건물은 관계자 외의 출입을 금합니다. ]




" 관계자의 출입을 허가해라. "




[ 접.. 접속되었습니다. 관등성명을 대십시오. ]





젠장할. 그 놈의 관등성명이 뭐라고...





" ...코드 네임 제로. 통칭 어세신 리엔 아르티스. "




[ 치직ㅡ... 인식 완료. ]





문간에 나 있는 지문 인식 장치에서 인식이 완료 되었다는 기계음이 들리자, 나는 손을 거두었다.

역시, 시스템을 바꿀 때도 되었는데...









[ 어서오세요, 어세신 님. ]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서 마치 UFO의 문 같아 보이는 거대한 입구가 자동으로 열려졌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며 안으로 들어섰고, 내가 안으로 들어 가자마자 문은 내 뒤로 조용히 닫힌다.


여기는 언제와도 추웠다. 심지어는 여름에도 오한이 드는 곳이었다.

추운 공기 때문에 일어나는 입김으로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주위는 어두컴컴 했지만, 바닥에 나있는 화살표 모양의 안내 불빛들이 푸른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기에 나는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화살표의 색이 바뀌는 지점에 다다른다.


나는 그 곳에서 걸음을 멈춘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 부터 맨 꼭대기층에 위치한 거대한 방에 다다르기 까지도 주변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나는 태연하게 방 안으로 들어선 뒤, 허공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자, 주위의 불들이 갑자기 켜지면서 보이지 않던 모든 게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유일한 사람 형상의 생명체가 날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 복귀한 것을 환영한다. 어세스(어세신의 애칭). "




" 젠장. 제발 저 보안 장치 좀 어떻게 해 봐. '관등성명' 이라는 말에 노이로제 걸릴 판이라고. "




" 흐음, 그건 좀 곤란하지. 몇 십년간 해왔던 보안 장치잖나. 게다가 난 네가 관등성명을 대는 모습이 흥미롭거든. "




" ...할 짓이 그렇게 없냐? "






내 이름이나 감상하는 것이 흥미롭다니.






" ....예나 지금이나 그 특유의 건방진 말투는 여전하군. "




" 뭐, 누구 덕에. "





나는 팔짱을 꼈다. 이제 말 장난은 관두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러자 그는 내 제스처를 알아들은 건지, 허리를 곧게 펴서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 그건 그렇고.... 학교에 있어야 할 네가 이런 대낮에 웬일이지? "




" 조퇴증 끊었어. 복귀도 할겸, 묻고 싶은것도 물을 겸. "




" 그렇군. 묻고 싶은 것이라면? "





그가 눈썹을 치켜올리자, 나는 이 건물 안의 공기보다 더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 내가... 백천우와 움직인다는게.... 사실이야? "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마치 대답할지 말지를 막판에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재촉의 의미로 그를 향해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는 앉아있던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하아... 어세스. "




" 내 이름으로 불러. 우리 둘 뿐인데 왜 코드네임을 사용해? "




" 네가 서로의 호칭 따윈 알 바 없다며? "





.....저 노인네가... 은근히 뒤끝이 장난 아니라니까.





" 아무튼, 설혜 네가 누군가와 같이 움직이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넌 항상 혼자 해야 일이 더 쉽게 풀린다면서 줄곧 개인 활동을 고집해왔지. 그 고집을 뒷받침할 정도로 의뢰나 임무는 매일 다 성공해왔고 말이야.

그래서 너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넌 이미 훌륭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한들 네 귀에 들렸겠니? "




" ....그래서, 이번 회장의 메모리 카드를 가져오지 못한 것을 이유로 날 팀에 엮으시겠다? "




" 뭐, 비슷한 셈이지. "




" 비슷한 거 좋아하네. 한 번 임무를 실패한 것 갖고! 게다가 그건 내 실수도 아니었잖아! "




" 맞아. 그건 정보 수집의 오류였어. 천우의 잘못이었지. "




" 그래! 근데 도대체 뭐가.... "





나는 말을 이어가려다가 도중에 무언가를 퍼뜩 떠올리는 바람에 말꼬리를 흐렸다. 반대로 생각하면 앞 뒤가 맞았다. 나는 깨달음의 신음을 흘렸다.





" ....아? "




" 내가 아주 약간의 배려로 그에게 원하는 파트너를 지목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택하더구나. "




" ...... "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떨어트렸다. 도대체 어쩌자는거지? 무슨 속셈인거야?


너랑 내가, 같이 있으면 무얼 할 수 있다고?





" 빌어먹을... 이번 의뢰는 정말 최악이군. "




" ...천우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





그의 말에 나는 다시금 고개를 들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 건 없었다. 아니, 있을리가 없었다. '무슨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 ..전혀. "




" ...그런가. 아니면 말고. "




" 그런 거 물을 시간에 껍질에 대한 대책이나 세워. 너무 허술하잖아? "




" 허술하다고? 그 정도란 말인가? "




" 뭐, 굳이 그렇게 까지랄건 없다 쳐도 다른 껍질을 고안해봐. "




" 쯧. 나에게는 이 일이 가장 쉽다고. 가장.... 재밌기도 하고. "




" 왜? 도둑이 가끔 놀러와줘서? "




" 당연하지. 그 놈이 권총이라도 꺼내는 날엔 그 즉시 우리 직원들에게 팬케이크가 되니까. "





보스가 씨익 웃자, 나도 아주 미미한 실소를 흘렸다. 우리 둘 다 공통된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다.


우리 조직은 엄연한 '길드' 였다. 의뢰나 임무를 받고, 그에 대한 일당을 받는 전문적인 길드.


이 세계에서 10개가 될까 말까한, '뒷세계' 에서는 굉장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길드였다.

많은 인재들과, 수 많은 의뢰인들과, 큰 규모의 세력들이 우리 길드를 번영시켰고 지금은 거의 최고의 길드로 군림 중이었다.

전 세계에서 상위권의 거대한 길드는 우리 길드를 포함해 서너개 뿐이다. 어느 길드는 '정보' 와 관련이 있었고, 또 어느 길드는 '인력' 에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길드는 이들과 반대로 조금 더 특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암살' 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길드는 수준급 실력의 전문 킬러들이 있는 '암살 길드'였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거나, 없애버리거나, 납치해오거나, 고문하는 의뢰들을 수용하는 그런 길드였다.

아주 어둡고, 위협적이며,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와 같은 존재들이 있는 곳인 만큼, 이 곳은 다소 무서운 면이 많았다.

이 곳에 가입하려면 적어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의 보스는 미국 마이애미 출신의 킬러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어떤 때에는 하염없이 잔혹해져서는 오디션에 붙지 못한 지원자를 산채로 암매장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지 조직의 정보를 유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보스는 이 길드를 정보의 유출이 없도록 운영하기 위하여 '껍질'을 구성했고, 비밀스럽게 세력을 키워가며 길드를 점차 성장시켰다.


우리 길드의 '껍질', 즉 한국에서의 외부 모습은 은행이었다.


보스는 당연히 은행장이었고, 나도 가끔 심심하거나 그럴 때에는 은행원을 맡기도 했다. 또 보스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땐 은행장도 맡곤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은행이었다.


카운터에서 생글거리며 상담해주는 은행원들이 모두 다 사람을 죽이는 킬러들이라니.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사실은, 당연히 강도도 몰랐을 것이다.



몇 달 전, 우리 은행에 강도가 셋 정도 들이닥쳤다.


그들은 천장에다 총을 마구 쏘아대며 카운터에 보따리를 던져놓고 가득 담으라 소리쳤다. 가엾게도.


계속 총을 쥐고 협박을 해가는데도 은행원들이 무표정으로 꿈쩍도 하지 않자, 그들은 심히 당황해했다.

거가다가 오히려 자신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흘겨보니 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당시, 카운터에는 나도 있었고, 사무실에는 보스도 있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장소를 잘못 잡은 것도 모자라 날도 잘못 잡은 것이었다.


강도가 우리들 중 한 명에게 갑작스럽게 총을 쐈다.


그 한 명은 어깨에 총을 맞고 뒤로 넘어졌고, 그 강도는 보란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이제 이렇게 되기 싫음 어서 돈을 담으라 고함쳤다.


아주 잠시 동안 침묵이 은행 안을 맴돌았고, 나는 조용히 일어서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강도들이 뭘 보냐고 소리를 지르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불 꺼. "



" 네. "



" 뭐... 뭐야! 야, 너! 누구 마음대로 불을 끄고 난리...! "



" 감시 카메라도 껐지? "



" 네. 10분 뒤 자동 재부팅 됩니다. "



" 내 말 안 들리냐? 불 다시 켜! 아무것도 안 보이.... 크억!? "





나는 중얼거리고 있던 한 강도에게 내가 앉아있던 의자를 부웅 집어 던졌다. 그러자 그 강도는 미처 말을 끝맺을 새도 없이 내 의자에 정통으로 부딪혀 바닥으로 쓰러졌다.

강도들이 얼이 빠져 소리를 지르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나는 보스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내게 끄덕인다.


승인을 받은 나는, 카운터 위로 뛰어 올랐다.





" ...날뛰어라. "





내 말과 동시에, 우리 직원들이 동시에 일어서며 강도에게 소리 없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우읍! 뭐하는 짓이... 커헉! "




" 으윽.. 여기 은행 맞.... 쿨럭... 으.. 으아아아악!!! "




여기 저기서 뼈가 부러지고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까 어깨에 총을 맞았던 이는 옷 안에 입고 있던 방탄복을 벗어던지고, 자신에게 총을 쏜 놈의 머리를 비틀고 있었다.


강도로 추정되는 목소리들이 온갖 비명을 내질렀고, 우리들은 말 없이 그들을 때려 잡았다.


10분이 다 되어 갈 무렵.

우리는 그들을 은행 뒤 골목길에다가 던져버렸고, 대걸레와 청소기로 바닥의 핏자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시카메라가 다시 돌아가기 몇 초 전, 우리는 아까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세로 자리에 착석해 일을 시작했다.


다시 들어온 감시카메라에는, 도중에 끊겼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까와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찍히고 있었다.


보스가 어느새 다가와서 씨익 웃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 ...은행 일이라는 거, 재미있군. "




" 그러게 말입니다. "





나는 감시카메라를 의식하고 존댓말로 대꾸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흥미로웠던 사건이었다.








" 그 때는 정말 즐거웠지. 아무 것도 모른 채 얻어터지는 그들의 비명은 참으로 음악적이었거든. "




" 그래. 나도 동의해. "




" '껍질'은 걱정 마라. 안 그래도 지휘자들끼리 고안 중인 것 같으니. "




" ....그래. "





나는 대화가 끝났음을 인지하고 뒤로 돌아 걸어갔다. 막 문 쪽에 다다르던 찰나, 그가 말했다.





" 오늘 밤인가... 기대하마, 설혜. "




" 그러던가. "





땅으로 자꾸 시선이 떨어져서 앞을 보고 걸을 수가 없었다. 머릿 속이 어질거렸다.


의뢰는 언제나 내게 '간단한 작업' 으로 다가오곤 했다. 왜냐하면 내게는 거의 누군가를 살해해달라는 의뢰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죽이는 것이 가장 쉬웠다.


고문이나, 납치나, 도둑질이 아닌. 순수한 살인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의뢰는... 누군가를 최소한으로 죽여야 하는 의뢰였다. 그게 노인네의 당부라고 그가 그랬으니까. 백천우의 말이 옳다.





" ....진혁이에게 안부나 전해 줘. 간다. "





나는 마지막 말만 툭 남기고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 뒤 순식간에 UFO같은 문까지 빠져나온다.


한기 때문에 소름이 돋아있던 팔이 다시 얌전해졌고, 나는 은행을 빠져나와서 거리로 나왔다.



아직 한 낮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따스했다.


거리는 생기로 북적였지만 그 생기는, 나에게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생기(生氣)? 그게 뭐지? 살아 있는 기운?



그렇다면, 나에게 그것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난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존재여야 했으니까, 살아 있는 기운이 나올리 없었다. 당연히 없었다.



초췌한 몰골 때문에 왠지 사람들이 더 쳐다보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더 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다크서클이 약간 내려온 눈을 부릅 뜨고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소리없이 거리를 질주하듯 걸어갔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투명 인간처럼, 그렇게 지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롭고, 고독하고, 조용하게. 아무도 날 모른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그럼 조금은,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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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21 17:20 | 조회 : 1,028 목록
작가의 말
비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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