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기연 얻으러 갑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하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면서 데리러 온다고 했지. 난 언제 끝날지도 정확하지 않으니 오지 말라고 했는데.

“뭐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김하재는 슬쩍 내게 붙어있는 베키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나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아마 베키의 자세가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는 자세여서 인 듯 했다. 멀리서 언 듯 보면 그렇게 보일 만도 하지.

“얘기 중이었어.”

“그래?”

그 말에 안심하는 표정을 한 김하재는 이젠 베키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오, 너 인간이구나? 그런데 틴이랑은 무슨 사이야? 틴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던데 아는 사이가 있어? 아님 다른 엘프 소개를 받고? 아, 난 돌고래 수인인 베키야. 틴이랑은, 음, 친구? 우리 친구 맞지?”

친구라기엔 애매한 사이긴 하지만 딱히 대체할 말도 없겠다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베키, 이쪽은, 음...내가 신세지고 있는 사람...?”

생각해보니 이쪽도 뭐라 소개해야 할지 애매하다.

“하여튼 이름은 김하재야.”

대충 소개를 하니 김하재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신세지고 있는 사람이란 말에 상처를 받은 것 같은데 솔직히 친구라 하기도 그렇고 뭐라 할 말이 없는 걸 어쩌나.

“근데 굳이 데리러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슬쩍 시선을 피하며 묻자 김하재는 시무룩한 어투로 말했다.

“그래도 걱정되니까...”

그때, 돌연 베키가 끼어들었다.

“저기. 김하재? 하재라고 했나? 나도 같이 살게 해주라, 응? 아직 돈은 없지만 돈도 낼께! 기숙사는 너무 텅텅 비어서 대화를 할 수도 없고! 너도 헌터처럼 보이는 데, 같이 던전 돌지 않을래? 나 이래봬도 힐러거든. 어때? 장래 유망한 힐러를 집 안에 들여 볼 생각 없어?”

온통 반짝이는 눈동자로 김하재를 쳐다보며 우다다 말을 쏟은 베키는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하재는 당황스럽다는 듯 눈동자를 깜빡이다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집주인도 아니고 나를 왜 바라봐.

“티, 틴만 괜찮다면...”

아니 주인공아 진짜 호구야?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한테 뭘 묻는 거야? 베키가 만약 나쁜 놈이었으면 어쩌려고. 앞으로 곁에 붙어서 감시라도 해야 하나.

“난 괜찮아.”

물론 베키는 나쁜 놈도 아니고 원작 주인공의 동료였으니 괜찮았다.

“앗싸! 나 기숙사 가서 짐 들고 올게. 집 주소는 이 번호로 보내주라!”

이미 핸드폰 개통까지 시켰는지 김하재에게 번호를 알려주곤 달려 나간다. 돈 없다면서 핸드폰은 꽤 비싸 보였다. 뭐하는 놈인지 궁금증이 들었으나 주인공 정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주인공 동료에 대한 것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이제 집에 가자...”

살짝 지친 것 같은 표정의 김하재가 말했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듯 화면에 메시지 앱이 켜져 있었다. 베키의 이름은 시끄러운 수인 이라 저장되어 있었는데, 그 밑은 전부 이름이 아니라 그 비슷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저런 식으로 저장하면 헷갈릴 텐데,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폰 생겼지.

“폰 잠시 빌려줘.”

“어? 왜?”

“나 폰 받았어.”

의문어린 표정을 짓는 그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진짜 받은 거니까. 내 핸드폰을 꺼내들어 전화번호를 외우고 김하재의 폰에 입력했다.

“그거 최신형 아냐? 누가 선물을...? 게다가 개통까지...”

당황한 표정의 김하재를 잠시 쳐다보다가 내 이름을 틴이라 확실히 저장해 놓은 후 다시 폰을 건넸다.

“그때 금발이 줬어.”

“금발...? 아, 성자님.”

그러고 보니 성자라고 불렸다고 원작에서 보았다.

“역시 착한 사람은 뭔가 다른가?”

김하재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서 가자.”

“어, 응? 응.”

김하재의 등을 떠밀었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짐으로 짐작되는 캐리어를 끌고 있는 익숙한 퍼런색의 뒤통수...

“어떻게 짐을 챙겨온 나보다 늦을 수 있어?”

삐쭉 내밀어진 입술을 한 베키의 모습에 김하재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더니 베키의 손에 이끌려 집 문을 열었다.

“3명이서 살기엔 집이 너무 좁은데...”

베키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여기에 있는 이들 중 그 중얼거림을 듣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주방과 이어져 있는 거실과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있을 뿐인 집은 3명의 남자가 살기에 턱 없이 좁았으니.

“어쩔 수 없잖아...”

살짝 볼을 붉힌 김하재는 짐을 푸는 베키를 도왔다. 슬슬 허기질 때가 되었을 테니 밥이나 차려야지. 아, 절대 베키를 돕는 것이 귀찮은 게 아니다.

“헉, 틴, 이거 맛있어! 나 이 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것 같아! 매번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때우기만 해서 슬펐거든. 그나저나 나중에 요리하는 방법 가르쳐 주지 않을래? 던전에서 오래 보내다 보면 요리도 중요하다고 들었거든. 확실히 중요하긴 하겠다. 아무리 던전 안 이라지만 맛없는 걸 먹고 싸우면 힘이 나지 않을 거야, 그치?”

아, 정말 말 많은 돌고래다.

“맞다. 던전은 내일 가는 게 어때?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음, 하재? 라고 불러도 되지? 나 이래봬도 67년이나 살았거든. 어쨌든 내일 아침에 나랑 던전가자 틴은 못 간다고 했으니까 너만이라도 나랑 같이 가주라, 응?”

“나 그렇게 좋은 실력은 아닌데.”

“에이, 처음부터 어려운 곳에 갈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

베키는 호탕하게 웃으며 김하재의 등을 팍팍 두드렸다. 생각보다 아픈 듯 그의 인상이 조금 찡그려 졌지만 베키는 그닥 신경 쓰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쏟아 냈다. 조금은 들어 줄려 했지만 더 이상 듣다가는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조차 모를 것 같기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저렇게 말하면서도 밥을 먹는 속도가 김하재와 비슷하다는 점에선 박수를 쳐 주도록 하자. 저것도 재주긴 하네.

“그런데 틴, 던전은 왜 같이 못 가는 거야?”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김하재에게 베키의 말을 배경 삼아 대답했다.

“약속이 있어.”

“누구랑? 너 여기 온지 얼마 안돼서 만날 사람도 없을 텐데...?”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팩트로 사람을 때리다니.

“...네가 조사 받을 때 만났던 사람이야.”

“생각보다 친화력이 좋구나.”

아무 말 없이 넘어가주는 김하재가 참 이뻐보였다.

***

다음 날 아침 새벽에 김하재와 베키는 던전으로 향했다. 낮은 난이도의 던전이라고 하니 다치진 않겠지.

대충 편의점 샐러드를 먹고 나도 나갈 채비를 했다. 생각해보니 옷을 안 샀다. 김하재의 옷을 빌려 입는 중이긴 하지만 이번 기연을 얻고 옷이나 사러 가야겠다.

머리카락까진 못 가리더라도 뾰족한 귀와 붉은 눈동자를 가려줄 캡을 눌러 쓰고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 내렸다. 이번에는 깊은 산 속의 폭포가 목표였다. 미리 양산도 챙겨오긴 했는데 급하게 구하느라 레이스가 달린 것을 사버려서 쓰고 싶진 않았다.

“하아...”

산 중턱까지 올라온 뒤에야 장엄한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관광명소로 이용되었을 정도로 괜찮은 풍경 이었다.

“후읍.”

숨을 들이 마쉬곤 폭포의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5
이번 화 신고 2019-10-19 14:07 | 조회 : 1,411 목록
작가의 말
11月

10화 달성-★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