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뭘 키우라고?

차가운 물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입과 코로 사정없이 들이치는 물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헉, 허억...”

어딘가로 이동되는 느낌과 함께 숨이 쉬어졌다. 물을 한차례 뱉어내곤 몸을 일으켰다. 으슬으슬 떨리는 것이 나중에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았다. 음, 감기는 싫은데 말이지.

“도착은 제대로 했나보네.”

동굴 벽에는 간간히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이끼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었고, 저 멀리 거대한 문이 보였다. 일단 저 문까지 걸어가며 푸른 이끼를 따서 모았다. 이 이끼는 마나를 머금은 이끼로, 여러 약의 원료로 사용되므로 괜찮은 가격으로 팔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마나란 마법사들만 사용하기에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얼마 안 되어서 아마 지금은 더 비싸게 팔리겠지. 땡잡았다.

“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자 곧 문에 다다랐다. 거대한 문에는 여러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원작에 따르면 정령들의 언어라고 한다. 원래라면 그것을 번역하여 이 문을 여는 주문을 말해야 했겠지만 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신의 아이를 찾으신다면 문을 닫으소서. 당신의 아이를 찾으신다면 문을 닫으소서. 신의 아이를 찾으셨다면 문을 여소서.”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모른다. 솔직히 알게 뭔가. 난 이 문을 열고 기연만 찾으면 된다. 내가 이 말을 하자 글자들이 붉게 물들며 – 솔직히 동굴이 어둡기도 해서 조금 무서웠다. - 문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아, 기름이라도 발라두지.

안쪽은 문에 적혀 있던 것과 같은 글자들이 사방에 적혀 있었다. 심지어는 발 밑 까지도 그 글자로 가득 차 있었다.

“소름돋...음.”

아이의 시체인 듯, 작은 시체가 한 구 놓여 있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듯 마른, 볼품없는 시체다. 시체보단 미라에 가까운 형태이다.

시체를 지나 벽의 끝에는 제단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반지 한 쌍이 놓여 있었는데, 이게 내가 혼자 온 이유였다. 만약 반지가 하나였다면 기연으로 강해지는 김하재를 데려왔겠지.

푸른빛이 일렁이는 은색의 반지는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다. 반지를 얻고 나서 다시 뒤를 돌아 나가려 할 때였다.

“으...아...”

흠칫,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방 안에는 나 밖에 없는데. 저런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인기척이라곤 없다는 게 더 소름 돋는다. 유령이야 뭐야?

“어...ㄷ, 가...”

나한테 하는 얘기야? 뭔데?

슬쩍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벽들이 글씨가 붉게 물들었다. 글자들은 일제히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구 형태로 모여들어 아이의 시체를 가두듯 모여들었다.

“무슨...?”

그러고 보니, 원래 아이의 시체가 있었던가? 그냥 표현이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의 시체만 덜렁 있는데 묘사를 안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저 아이는 대체...

붉은 글씨로 이뤄진 구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이의 시체가 빠르게 변화하여 새하얀 백골이 되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글자들이 펴져 문장을 이루는 듯 하더니 어딘가 익숙한 문장이 나타났다.

[신의 아이가...]

끊겼다. 뭐지? 신의 아이라면 내가 문 앞에서 읽었었던 문장과 관련이 있는 걸까?

[신의 아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기요. 잠시만. 저거 강림 문구인데? 신들이 강림할 때 나온 문구라니까?

제단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더니 형상 하나가 나타났다. 어딘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인간의 형상을 한 불투명한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다.

아마 신의 아이라고 불리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는 내게 무언가 말하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잘...키워, 달라고?”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그는 곧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응?”

제단 위에 검은색 일색의 알이 놓여 있었다.

“이걸 키워 달란 말인가?”

손안에 꼭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의 알은 – 달걀...? - 방금까지 누군가 품고 있었던 듯 따뜻했다. 기분 좋은 온도이나, 꺼림칙했다. 그게 내가 방금 겪은 일 때문인지, 아님 이 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여기에...”

제단 위에 포탈이 생성됐다. 원래는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서 주인공 일행들이 의아해 했던 게 생각났다, 원래의 던전이라면 클리어 했을 때 다른 곳에 포탈이 생겨나기 때문인데, 이번엔 그 신의 아이를 만나서 클리어로 인정된 걸까?

이 알은 김하재한테 감정해달라고 해야겠다. 이럴 때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점은 꽤나 불편하다.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감정이 가능하니까. 아, 이 몸도 플레이어라면 편할 텐데.

***

“그래서, 뭐라고 나와?”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뒤, 베키와 김하재가 돌아오고 알의 감정을 맡겼다.

“어, 그냥 물음표로만 뜨는데...적어줄까?”

"응.“

[???의 알]
[???의 알이다.]

”이게 다야...?“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정보였다. 그저 이게 알이구나, 라는 봐도 다 알 수 있는 사실만 알려줄 뿐 이었다.

”쓸모없어...“

”...미안“

내가 작게 중얼거린 말에 김하재가 충격 받은 얼굴로 시무룩해 한다. 축 쳐진 강아지의 귀가 보이는 듯한 모습이다. 생긴 것도 행동하는 것도 귀여워라.

”너한테 한 말 아냐. 그리고 이거.“

반지를 내밀었다.

”뭔데?“

”기연.“

”어, 이거, 나 줘도 돼?“

이미 목걸이의 형태로 만들어 놓은 – 반지는 거슬리는데다가, 이렇게 써도 효과는 적용된다. - 반지를 흔들었다.

”이미 하나는 나한테 귀속 됐으니까.“

”그럼, 잘 받을게.“

베시시 웃은 김하재는 손가락에 반지를 착용했다.

”뭐야 뭐야, 나는 없어?“

입술을 비쭉 내밀며 말하는 베키의 당당한 태도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내보였다.

”기연이 흔한 줄 알아?“

”하재한텐 주면서.“

”집세야.“

음, 집세치곤 비싸려나.

”이게 집세면 넌 평생 여기 살아도 될 텐데...“

김하재가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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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25 23:18 | 조회 : 1,626 목록
작가의 말
11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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