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도박

다시 병실의 침대에 눕자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원인이라 할 만한 게 하나밖에 없긴 한데...”

오묘하게 나른한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자세히 보니 이 남자 엘프다.

“몬스터랑 엘프 혼혈은 멀쩡해서 너도 멀쩡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생각보다 엘프랑 뱀파이어의 힘이 잘 안 맞더군. 네 몸도 살아있는 게 기적이야.”

나도 알고 있다. 죽어가는 몸뚱이를 간신히 이 땅에 붙잡아 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험해보고 싶긴 한데...네 몸뚱이는 상당히 비싸서 말이지.”

그게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이냐, 의사가. 아니 의사이기도 전에 보통 엘프는 저런 말 안할 텐데.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아직 꼬맹이 주제에.”

내 머리를 툭 하고 밀어 완전히 눕힌 그는 더 이상 뭘 해줘도 나아질게 없다며 빨리 나가라고 했다.

“의사가 저래도 되나?”

작게 중얼거리자 다인이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이종족에 대해 잘 아는 의사는 저사람 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보면 참 착한 놈인데.

“그나저나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다니.”

꽤나 심각한 표정이다.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김하재는 어디로 사라진건지 모르겠다. 병실에서 나와 주변 복도를 살펴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슬슬 다음 기연을 얻으로 가야하는데.

“헌터 자격증 바로 딸래요? 시험만 치면 제가 해결해 줄게요.”

고개를 끄덕이니 다인도 사라진다. 병원 복 말고 처음에 입고 있던 옷과 갈색 망토를 걸치고 쓸데없이 긴 머리를 묶었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공원의 벤치에 김하재가 앉아 있었다.

“가자.”

“어, 어? 그래.”

당황하며 일어서는 김하재의 손을 잡자 말자 누군가 병원에서 뛰어나와 우리 앞에 섰다.

“이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이름. 원래 이름을 쓰긴 싫었다.

“네가 지어줘.”

김하재의 손을 잡고 그를 바라보았다. 나보다 키가 큰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목이 살작 아프다.

“이름을? 엘프들한테 이름은 소중한 거잖아?”

“그닥.”

내가 진짜 엘프도 아닌데 뭐 어때. 슬슬 귀찮아 지는데 원래 이름으로 할까.

“...틴?”

그 이름이 왜 네 입에서 나와. 원래 세상에서의 내 이름이다. 한국인인 나한테 부모님은 저 이름을 쓴 종이쪽지와 함께 날 버렸지. 아직도 저 이름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왜 틴이야?”

“그냥, 음, 틴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서.”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냥 그걸로 할래.”

다른 걸 생각하기엔 저 사람이 너무 급해 보인다. 날 버린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라 그닥 좋아하진 않았는데 어쩌겠어. 김하재가 저 이름을 떠올린걸 보니 뭔가 있을지도.

“그럼 틴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급히 달려갔다.

“너도 헌터 자격증 딸 거... 아.”

문자가 왔는지 말을 멈추곤 핸드폰을 바라본다.

“내일 9시까지 헌터 아카데미로 오래. 길 모르지? 내가 데려다 줄게. 일단 우리 집에 가자.”

김하재가 앞장섰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엘프든 뱀파이어든 힘을 쓰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게 분명한데. 일단 하루가 있으니 기연 하나 얻어둘까.

한 번 기억하기로 한 것은 잘 안 잊는 엘프의 특성상, 내가 읽었던 부분 정도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적을 필요도 없고. 그러고 보니 종족 특성은 사용해도 부담이 없는 것 같다. 가령, 햇빛에 약한 뱀파이어의 특성이라던가...

“...힘들어.”

땀은 흘리지 않지만 체력적으론 한계다. 얼마나 걸었다고. 기연을 얻어야 쓰겠다, 이 몸.

“혹시 햇빛 때문이야? 양산 필요해?”

당황하며 걸음을 멈춘 날 보며 김하재가 말했다.

“어느 정도 남았어?”

“10분 정도.”

사달라고하기엔 부끄러워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김하재의 집에 들어왔다. 힘들어 죽을 거 같은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이 몸은 신기 그 자체다.

“진정됐어?”

찬물을 주며 묻는 김하재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김하재는 물을 마시는 내 앞에 앉더니 긴장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기, 내 힘을 기르는 방법이 뭐야?”

“기연.”

이 세상에는 통칭 기연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소수의 헌터가 던전 안에서 발견하는 것. 유물일 수도 있고, 능력 그 자체라거나 아이템 같은 것들을 말한다. 주인공의 능력은 기연을 얻어 신에게 그 모습을 보임으로서 그 신의 힘을 얻는 것. 기연을 다른 사람한테 전해줄 수도 있다. 보통 기연은 다른 사람에게로의 양도는 불가능 하니까.

“기연?”

“기연을 얻고 그 모습을 신에게 보여. 신은 네 능력을 높여 줄 거야. 물론 기연을 뺏기진 않고.”

그 말에 급격히 그의 표정이 어두워 진다. 기연은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우니까. 그럼 여기서 내 필요성을 알려보자. 얹혀살기 위해선 날 필요로 하게 만들어야지.

“기연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뭐?”

이게 될 줄 모르겠다. 근데 그 신이라면 해줄 수도.

“나도 기연이야.”

도박이다. 그것도 성공 가능성이 제법 큰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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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9-29 15:27 | 조회 : 1,854 목록
작가의 말
11月

도박은 언제나 즐겁죠....후후. 전 편에 아무도 의견을 안주셔서 김하재 시점은 없습니다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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