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던전 탐사

내가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원작에서 이 비슷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꽤 초반에.

드래곤이 던전에서 나온답시고 그 던전의 기연을 삼키고 자신이 곧 기연이라며 나가게 해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뭐, 나온 뒤 주인공한테 그대로 종속돼 버렸는데, 아이템을 뱉고는 유유히 사라졌지. 난 뱉을 생각은 없지만.

그때, 환한 빛이 김하재를 감싸더니 나에게도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의 신이 당신의 존재를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저걸 왜 보여주는 건진 모르겠지만.

“헉...”

주먹을 꾹 쥐어보던가 싶더니 김하재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달리는 속도가 빠른 걸로 보아 성장은 확실히 한 듯 보였다. 그나저나 그렇게 나가버리면 내가 뭘 먹을 수가 없는데. 하루 종일 굶었는데...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열악한 자취생의 냉장고에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따윈 없었다. 양념된 거 못 먹어, 이 몸뚱어리.

***

“미안, 이거 받아.”

뭘 그리 열심히 했는지 땀에 젖은 김하재는 내게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넘기고 씻으러 들어갔다. 봉지 안에 든 것은 편의점에서 파는 샐러드 몇 개. 엘프는 음식의 영양분을 배출시키지 않고 그대로 흡수하기 때문에 많은 음식이 필요로 하지 않다. 왜 밑에 달려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쓴다.

뭐, 그만큼 독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김하재도 밥 안 먹었을 테니 대충 반찬이라도 꺼내놓으려 냉장고를 열었지만 역시 텅 비었다. 대체 뭘 먹고 산거야. 찬장에 라면이나 인스턴트식품이 가득한걸 보아 그거만 먹었나 보다.

“요리 재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 다행이네.”

된장찌개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 별로 안 쓴 건지 관리를 잘한 건지 모르겠는 새하얀 앞치마를 걸치곤 만들기 시작했다.

“뭐해?”

밑에 수건 한 장만 걸치고 나온 김하재가 나왔다. 물 흐른다.

“머리 말리고 와.”

“어, 뭐 만들어? 된장찌개?”

당황한 표정을 짓는 김하재를 드라이기 앞에 세워두고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다 됐다.”

완성된 된장찌개를 상 위에 올려놓고 미리 앉혀 두었던 밥을 푸곤 자리에 앉았다. 아, 신혼 같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하재는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맛을 못 봐서 장담이 안 된다.

“와...근데 엘프는 요리 안 하잖아.”

한 입 먹고는 놀랐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냥. 맛 괜찮아?”

내기 다른 세상에서 살다 왔다고 말하면 미친놈, 아니, 미친엘프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어. 진짜 맛있어.”

딴에는 진지한 표정을 짓는 듯싶은데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해봐야 귀엽기만 하다. 살짝 웃으며 다행이네, 라고 말하자 그의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

“처음 웃었네.”

“그랬나?”

“응...보기 좋아.”

배시시 웃으며 말한 김하재는 저도 부끄러웠는지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도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작은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시간을 기다렸다. 이번에 기연을 얻을 던전은 이미 설명해 뒀다, 밥 먹으면서. 몸을 씻고 임시방편으로 김하재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허리띠를 졸라매자 그제야 바지가 내려가지 않았다. 별로 차이 안 날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김하재의 몸이 좋다.

“갈까?”

현관문을 열고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후드까지 썼지만 김하재도 얼굴이 잘생겼기에 시선이 몰렸다. 택시를 탈 돈이 없다는 게 아쉽다.

“여기야?”

“응.”

야산이다. 밤 인만큼 어두웠다. 김하재가 먼저 앞장을 서고 내가 그의 허리춤을 잡았다. 그래도 뱀파이어라 밤눈이 어둡진 않은데 김하재가 걱정된다고 잡으란다.

“중반까진 올라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아마도.”

밤이면 강해지는 뱀파이어의 특성을 믿어봐야지. 오늘은 달도 구름에 가려졌고. 계속 오르다 중반까지 도착했다.

“어, 저기야?”

“...응.”

조금 돌아다니자 저 멀리 빛나는 곳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딧불이 들이 날아오르는 거다.

“처음이야, 저런 광경...”

나와 김하재는 잠시 반딧불이 들을 쳐다보았다. 그때, 반딧불이 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가자.”

사라진 반딧불이 들은 던전 안에 있을 거다. 전에 이곳을 발견했던 조연은 반딧불이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었고, 정령들의 검술을 얻었다. 비중도 별로 없었고 그 검술을 숨기다 죽어버렸지만. 그 조연의 이야기는 왜 그 시점으로 보여준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들어가자.”

은은하게 빛나는 포탈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미로네.”

새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미로 아니야.”

김하재의 말에 대답하며 벽을 더듬었다. 내 손이 들어가는 지점을 찾아 그 안쪽에 들어있던 버튼을 누르자, 미로처럼 보였던 벽들이 움직이며 한 길을 만들었다.

원래 이 던전의 미로는 무한해서 그냥 들어갔다간 못나온다. 조연은 이걸 우연히 발견했지.

“뭐야?”

하얀 벽과 저 멀리 도착지점이 보인다. 절대 뛰어서 넘어갈 수 없는 거리다. 그것을 이어주는 건 얇은 철사 두 개.

“여길 어떻게 건너...”

여기는 조연의 능력이 잠시간의 비행이었기에 통과했었다. 나와 김하재는 그런 능력이 없기에 그냥 건너야만 했다.

“그냥.”

천천히 발을 들어 철사를 밟았다.

“잠, 잠깐. 끊어지면 어쩌려고?”

“안 끊어져.”

던전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천천히 발을 디디며 김하재까지 올 필요 없다고 말해주곤 다음 발을 디뎠다. 양 팔을 벌리곤 천천히 걸어나갔다. 발이 얇은 철사를 제며 피가 살짝식 묻어나왔다. 이 믿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엘프의 특기 중 하나는 중심을 잡는 것이다. 누구의 가르침도 필요로 하지 않는, 엘프의 피가 이어져 있다면 혼혈이라도 갖는 특기.

“끝.”

뛰어서 건널 수 없다 뿐이지 먼 거리는 아니다. 붉은 버튼을 누르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졌다.

“발, 괜찮아?”

내 발에 묻은 피를 보며 김하재가 당황스래 눈을 깜빡였다.

“응.”

쓰라린 정도다. 김하재는 내 말에 얼굴을 굳히곤 나를 앉혀 내 발목을 쥐었다.

“괜찮긴.”

여기저기 배인 흔적에 김하재는 작은 가방 안에서 소독용 솜을 꺼내 정성껏 내 두 발을 닦았다.

“읏...”

생각 외로 아프다. 약을 바르고 붕대까지 단단히 묶자 그제야 김하재는 몸을 일으켰다.

“왜 그런 소...아니, 아니야...”

얼굴이 붉어진 채 김하재는 조금 쉬다 가자며 나에게 돌아 누웠다. 그렇게 조금 쉬다 몬스터도 나오지 않는 던전을 하나하나 깨니 마지막 단계에 다달았다.

“마지막이야.”

보통은 보스가 나오겠지만 이 던전은 아니었다. 화려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환한 빛과 함꼐 잠시 앞이 안보였다.

“드디어 왔구나, 나의 아이들아.”

약간은 돌아버린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투명한 몸체는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듯 했다. 이 던전을 만든 이 이자 정령의 검술을 전수해줄 지박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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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03 12:55 | 조회 : 1,687 목록
작가의 말
11月

분량이 미쳐 돌아가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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