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부끄럼이 많은 댕댕이

김하재는 잠시 나에게 붙어 있는 다인을 보더니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검사 끝내고 지낼 때 없으면, 내 집에서 지낼래?”

뭣도 없고, 주인공 집에서 지내는 게 좋겠지.

“좋아.”

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

부드럽게 두터운 철문이 열렸다. 굳은 얼굴의 남자와, 덩치 큰 남자가 같이 들어왔다. 손에 들려있는 서류철을 내려놓은 남자는 자리에 앉고, 덩치 큰 남자는 그 옆에 뒷짐을 지고 섰다.

“일단, 질문에 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종족이십니까?”

이미 적혀 있을 텐데. 이곳에 오기 전에 온갖 검사를 마치고 왔으니.

“엘프와 뱀파이어의 혼혈.”

몇 가지의 질의응답이 끝나고 그는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능력,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그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아마 마지막 질문이겠지. 저렇게 긴장하는 걸 보니 이곳에선 능력에 대해 묻는 것이 꽤나 무례한 일인 듯 싶다.

“물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과 함께 새하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와 유리잔에 담긴 것을 내게 내밀었다. 뱀파이어 혼혈이기 때문일까, 피가 반쯤 차 있었다. 그것을 보니 심장이 뛰는 느낌이다.

달콤한 향이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저것이 동물의 피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한 거부감 또한 느껴졌다. 과일과 채소가 주식인 엘프라서 일까, 인간이었기 때문일까.

한참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자, 유리잔이 치워졌다. 남자는 서류철에 무언가를 쓰는 듯 보였다.

“엘프의 능력은 어느 정도 쓸 수 있습니까?”

모르는데. 애초에 능력이 언급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엘프 능력이 뭐였지, 활을 잘 쏘나? 정령?

멀뚱히 그를 바라보니 활만 덜렁 쥐여 준다. 활을 보니 몸이 먼저 움직여 활대를 잡았다. 시위를 당기자 바람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생겨났다. 그것을 어느 한 곳을 겨눠 쏘아내자 마자 코에서 무언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

화살을 쏘았을 때 몸 안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흔들리는 게 시야인지 내 몸인지 모르겠네.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벽을 잡고 코를 막았다. 코피가 멈추지 않고 내 손을 적셔왔다.

“괜찮으십니까?”

당황스런 얼굴의 둘은 어쩌지도 못하고 내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한층 예민해진 귀가 그들의 소란스러움에 아파하면서도 방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잡아냈다.

“괜찮아요?”

내 어깨를 감싸며 휴지로 코를 막아준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한참을 생각하는 사이 그는 다른 이들에게 뭐라 말하더니 나를 방 밖으로 이끌었다.

“시끄러워...”

귀가 지나치게 아프다. 이명이 울리고, 귀로 들리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숨소리만이 크게 들려오고 도수 높은 안경을 쓴 것 마냥 시야가 일그러진다.

“...조용한 곳에 데려가 줄까요?”

귓가에 속삭이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잃었다.

***

“허억...”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하아, 헉...”

뭐였지? 왜? 왜 기절한 거지? 기절할 이유가 있었나? 능력을 써서? 능력이 왜? 뱀파이어와 엘프는 상극이어서? 그들의 혼혈이기에?

“저주받은 몸뚱아리군.”

침대에 기대앉으며 중얼거리자 입 안에서 뾰족해진 송곳니가 느껴졌다.

“뭐야.”

화장실의 거울을 통해 보니 눈동자가 요사스런 빛을 흘리고 있었고, 송곳니는 마치 뱀파이어의 그것과 같아졌다. 미칠 듯이 갈증이 느껴졌다. 이건 물로 없어질 갈증이 아니다.

“...엘프의 능력을 써서?”

엘프의 힘을 썼기에 뱀파이어의 힘이 강해 진거야?

“말도 안 돼.”

“뭐가?”

뒤를 돌아보자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김하재가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표정을 굳히고 내게 다가왔다.

“너...괜찮아?”

조심스레 내 얼굴을 잡아드는 그의 손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내 피부, 차갑구나.

“왜 이렇게 갑자기...”

그에게서 나는 향기가 지나치게 달콤했다.

“저기...?”

“목말라.”

그의 손에 얼굴을 묻었다. 여기서 김하재의 목을 물어뜯어 피를 취한다면 난 이곳에서 살 수 없어. 그러니까, 안되는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언제쯤 엘프의 힘이 회복될까? 그의 몸을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잠시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내 입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미쳤어?”

“아니. 조금이라면, 괜찮으니까...”

“그러나 내가 못참아서 널 덮치면?”

“내가 막아줄게, 걱정하지 마.”

다른 손으론 연신 내 눈가를 쓸어내린다. 주인공 이 새끼, 착해빠져 가지곤. 조심스레 손가락을 물고 깨물었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피가 혀에 닿았다.

이렇게 조금씩이라니, 불공평하다. 조금 더 오래 이 맛을 느끼고 싶어 피를 이리 저리 뒤섞는다. 부족해. 저절로 김하재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손가락을 핥아 내렸다. 목까지 붉어진 김하재는 손가락을 급하게 빼내며 몇 걸음 물러났다.

“다, 다 먹었지?”

아쉬움에 입술을 핥자, 움찔거리며 더 물러난다. 내가 잡아먹은 것도 아니고, 반응이 왜 저런데. 시간이 지나서인지, 피를 먹어서인지 내 모습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다인이 들어왔다.

“...두 분 다 여기서 뭐하세요?”

“히익...!”

김하재는 문틈으로 도망쳐 버렸고, 나와 다인은 잠시 시선을 얽다가 그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왜 저러죠?”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다인을 지나쳐 병실로 돌아왔다. 부끄럼이 많구나, 주인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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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9-28 19:56 | 조회 : 1,973 목록
작가의 말
11月

하재 시점을 쓸까요 말까요. 쓴다면 한 14금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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