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쓰레기 안녕

씁, 아파서 그런지 잠을 많이 자는 것 같은데. 죽진 않으니 상관없나?

“일어났어?”

김하재는 먼저 일어난 건지 이미 짐을 모두 정리해 두고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뻐근한 눈을 몇 번 깜빡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호기롭게 외친 김하재는 동굴 앞 까진 먼저 걸어가더니 나와선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하, 하하... 어디로 갈까?”

“왜 먼저 걸어간 거야...”

작게 중얼거리니 그걸 또 들은 건지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럽긴 한가보지. 음, 이때 어떻게 적혀 있었더라. 그냥 직진이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 나도 헷갈린다. 그냥 김하재를 믿을까 싶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쪽저쪽 기웃거리는 모습은 그닥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 걷는 게 빠르겠다. 내가 무작정 앞으로 걸으니 김하재도 어어 거리면서 쫄래쫄래 따라온다. 조금 어색하게 걷고 있자니, 김하재가 말을 걸어온다.

“저기, 몇 살이야? 난 23살인데.”

“50.”

조금은 당황해서 어버버 거릴 꺼라 생각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한다.

“안 놀라네.”

“그야 엘프가 외관상으로 어리다는건 잘 알려져 있으니까. 법적으론 성인식을 치룬 엘프만 그 나이로 대하거든.”

그런 설정이었나? 놀라는걸 기대했는데.

저 멀리 보이는 몬스터가 길목을 딱 막고 있다. 돌아가야 되나, 김하재한테 싸우라고 해야 하나.

“저기 몬스터 있는데 어쩔래?”

“그냥 피하자.”

대충 빙 돌아서 조금 더 걷자, 그제야 푸른 포탈이 보였다. 던전은 안녕이다.

“넌 나가는거 처음이지?”

그런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포탈의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쿨럭...”

또 뭐가 문제인지 피를 토했다. 포탈 통과할 때 아프긴 했는데, 포탈도 통과 못하는 몸 인거야?

“괜찮아?”

김하재가 당황하며 닦을 거릴 찾는 사이 대충 소매로 닦았다. 어차피 이 옷 거의 걸레짝인데 뭐.

“생존자다!”

갑작스런 큰 소리에 우리는 앞을 바라보았다. 갑옷을 걸친 남자가 우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구조대다.”

구조대? 원작에선 만난 적이 없었는데 내가 자느라 시간이 엇갈린 듯 했다. 그때, 소란스런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인상의 남자가 등장했다. 어딘가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괜찮으신가요?”

“저는 괜찮은데, 이쪽이...”

그의 목소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듣기가 좋다. asmr같은 거 하면 잘하겠다, 싶은 목소리.

“저기?”

“아.”

너무 딴생각을 했나보다.

“괜찮으신가요?”
똑같은 물음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이 나를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어딘가 탐욕이 서린 눈빛이 금방 사라지고 선한 눈빛으로 돌아갔다. 아, 혹시 얘가 그 쓰레긴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 선한 인상.

여기서 만난다고? 얘 반쯤 흑막 아니었나? 흑막이라기 보단 이익이 되는 쪽에 붙는 거였나. 음, 머리도 잘 굴러가고 수완도 좋고, 아직 던전이 많아질 시기도 아니니까 그쪽이랑 계약은 안했겠네.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그의 옆에 있던, 갑옷을 걸친 남자가 말했다.

김하재를 따라 어딘가로 걸어가는데, 순간 시야가 흔들렸다.

“이런.”

깜짝아.

“역시 안 괜찮으신 것 같은데...”

걱정스런 표정. 속으론 내가 얼마나 이용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고 있겠지만. 뱀파이어랑 엘프의 혼혈이니 좋게 봐주지 않을려나? 내가 계속 바라봐선지 그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 다인이라고 해요. 당신은요?”

“없어, 이름.”

존댓말을 써야하나? 이 몸은 50살인데 법적으론 성인이 아니니까? 뭐, 아무 말도 안하니 괜찮겠지.

“그럼 제가 하나 지어드릴까요? 앞으로 이곳에서 살려면 이름은 필요할 테니까.”

너 네이밍 센스 구리잖아.

싫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어주자,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나 참,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뭘 이름을 지어줘.

“당신은 여기서 저랑 기다려요.”

딱히 마땅한 호칭을 못 찾았는지 당신이라 부른다. 김하재가 들어간 방 앞의 의자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인은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이곳은 처음이죠?”

고개를 끄덕이니 설명을 듣겠냐고 해서 해달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거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아봐야 했으니까.

“당신 같은 이종족은 안전한지 검사를 받고 주민등록증을 발급해 줘요. 만약 불합격 판정을 받는다면 다시 돌려 보네거나 죽이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할 얘기가 아니지 않니?

“그 다음엔 보통 헌터 자격증을 따요. 이종족이면 인간과는 다르니까 더 따기 쉽고, 돈 벌기도 쉬우니까요.”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아니면 정부쪽으로 들어오기도 하죠. 그래서 말인데, 저와 같이 일하지 않을래요? 이래봬도...”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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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9-25 00:03 | 조회 : 2,020 목록
작가의 말
11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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