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푸른 달 이야기

강진호가 생각하기에도 식사는 훌륭했다.
아침식사로는 야채들이 소스로 범벅이 되어 있던 샐러드(소스에서 파인애플과 리치가 섞인 향이 났다.)와 타원형의 빵, 파르시틸이 맨 처음에 한 술 떴던 알 수 없는 생선이 들어간 맑은 국물의 찌개(생선 맛은 그냥 집에서 먹던 생선 맛이었다.), 그 외에도 뿌리 열매의 조림(감자를 간장으로 졸인 것처럼 생겼는데 맛은 팽이버섯 맛이었다.), 자신의 손 정도 되는 길이의 생선 통구이가 나왔다.(파르시틸이 타원형의 빵에 샐러드와 함께 싸먹으면 맛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물고기 요리가 많네요.”
강진호가 말했다.
“이곳은 케스토니아 왕국의 2개의 큰 강 중 하나인 케스 강이니까요. 이 마을은 영웅의 숲에서 얼마 안 떨어진 케스 강의 중류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파르시틸이 설명했다.

"영웅의 숲? 그게 어디야?"
강진호의 질문에 노엘은 강진호의 옆에 있는 히어로스피릿을 가리키면서 입 안의 빵을 삼켰다.
"어제 우리가 있었던 곳이야. 케스토니아 왕국의 성역이자, 이 세계의 성역이기도 하지. 그 숲은 케스토니아 왕국의 엄중한 경비로 지켜지고 있어. 그래서 어제 일이 더 수상한 거고."
노엘의 말을 들은 강진호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 곳에 있던 물건이 지금 자신의 옆에 있다니!

일행이 식사를 마쳐갈 때 즈음, 강진호는 어제 들었던 목적지에 대한 설명을 마저 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우리는 이제 아카루 왕국으로 가는 거야?”
“왕국이 아닌 연합국입니다.”
강진호의 질문에 파르시틸이 대답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카루 연합국에 가시면 왕국이라고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자 강진호가 다시 물었다.
“왜?”
“그건, 아카루 연합국은 검의 부족, 격투의 부족, 중갑의 부족이라는 3부족이 연합해서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왕국이라고 하면 한 부족이 왕이라는 이야기니 당연히 민감해질 수밖에요.”
“참고로, 그들의 국경선을 만드는 타닌 산맥에는 중갑의 부족이, 아울프 강 남쪽에는 격투의 부족이, 아울프 강 북쪽에는 검의 부족이 산다. 그리고 수도는 공동구역이지. 수도는 타닌 산맥과 아울프 강의 합류지점에 있어서 도시의 중앙에는 각종 공공기관과 외국인들이 주로 머무는 공간이 있고, 각 부족 별로 자신들의 부족 방향에 거주 구역이 있지.”
파르시틸에 설명에 노엘이 설명을 덧붙였다.

“근데, 거기에는 왜 가는 거야?”
“아, 그건 임무 내용이니까 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파르시틸이 일어나면서 이야기했다.

“하키 씨, 저희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세요!”
문을 나서며 파르시틸이 인사했다.
“그래, 되도록 자주 들러라.”
“그럴 수 있으면요.”
강진호는 파르시틸이 한 마지막 대답에서 영혼의 무사로서의 바쁜 일정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여관 식당과 거리에서 파르시틸을 볼 때마다 만드는 무거운 분위기들과 수군거림도 그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을 밖으로 나선 강진호 일행은 걷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파르시틸을 향해 따갑게 꽂히고 있었으나 파르시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을 밖으로 일행을 안내하고 있었다.

“저기...미안한데 말야...”
“네, 무슨 일이죠, 진호군?”
“도대체 저 사람들은 너를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야?”

순간, 강진호는 파르시틸의 얼굴 근육에서 살짝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몸 그 자체가 움찔거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계속 옮겼지만 말이다.
“그 이야기는 연합국으로 가면서 이야기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선착장으로 가도록 하죠.”
파르시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강진호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야...진짜 물어볼 줄이야. 생각보다 대담한데?”
노엘이 강진호에게 속삭였다.
“저렇게 반응할 줄 알았으면 물어보지 않을 걸 그랬나..”
강진호가 말했다.

그 때 파르시틸이 멈춰서며 말했다.
“이제 선착장입니다. 상류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며 건너편으로 건너간 후에 광산열차를 타고 국경으로 향할 예정입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배가 강을 건널 동안 제가 이 마을에서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올라탄 배는 버스 2개를 붙인 것과 비슷한 크기의 배였다.
여관의 이미지 때문에 나무배 같은 것인줄 알았던 강진호는 오히려 자신이 알던 배와 비슷하게 생긴 것에 충격을 먹었다.
배의 바깥에는 버벌호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강진호가 생각하기에 내부는 예전, 부모님과 제주도에 갔을 때 탔던 여객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객실로 안내받고는 파르시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가 마을에서 처음 살게 된 때는 10년 전이었습니다.”
“10년 전? 그럼 파르시틸이 16살 때인가?”
노엘은 갓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뭐... 그렇지. 그 때 저는 무파의 당주 자리 문제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어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는 눈을 이내 지그시 감고는 깊은 회상에 빠져들며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때, 그는 지쳐있었다.
가문의 장로들은 자신을 초대 가주의 재림이라며 역사상 최초로 가문의 무술이었던 ‘월형무’의 초승·상현·만월·하현·그믐·삭·월영 7무파로 이루어진 가문의 통합 당주로 세우려 했다.
가문 내 무파 관련자들 중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의 재능을 의심했고, 7무파 중 이단이라 불리우던(초대는 월영을 만들지 않았다.) 월영의 무파 소속이었던 그의 출신을 탓했으며, 원래 가문 내에서 나와야 할 각 무파의 당주들이 가문 밖에서 들어온 외부인 중에서 나왔다는 것을 비난했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에 지쳐있던 어린 천재를 월영파 당주, 연은 불쌍히 여겨 평소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 밀로바트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불쌍한 아이, 파르시틸아. 너는 당주가 되고 싶으냐?”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저는요, 그냥 이 생활이 좋아요. 그저 월영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날들이 좋아요. 제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이런 따사로운 일상들이 계속되었으면 해서 열심히 수련하고, 또 수련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파르시틸, 너에게 또 다른 일상을 경험시켜주마. 어쩌면 당주 문제도 피할 수 있을 거다.”
그는 그날의 밤에 연이 했던 마지막 말을 잊지 못한다.
“그곳이 마음에 들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놀러가마.”
그 날 밤, 연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그는 케스 강 중류 어떤 마을 여관 주인인 하키 씨와 그의 부인 밀로바트에게로 가게 되었다.
그는 3년 동안 마을 여관 주인의 아들처럼 지냈다.
그 또래 친구들(그들은 원래 알던 친구들과는 달리 무사와는 거리가 먼 농부, 상인, 어부 등의 자식들이었고, 그런 일을 도왔다.)과 알게 되었으며, 그도 여관의 일을 도우며 지냈다.
연은 그 녀자신의 말처럼 2주에 1번, 많을 때는 매 주 놀러왔다.
그러면서도 가문의 이야기는 잘 해주지 않고, 무술도장에서 생기는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는 어느새 마을의 청년 중 하나가 되어갔지만, 그러면서도 창을 놓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돌아갈 것 같았고, 돌아가서도 연처럼 간간히 이곳을 들르는 그런 무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연은 여느 때처럼 장로 회의에서 파르시틸은 당주가 될 의사가 없었음을 밝히고 차라리 그저 일반 무사로 받아들여 무파의 전력이 되게 하자고 주장한 후, 거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파르시틸이 당주가 되는 것을 반대해오고 있어 반대파들과 임의적으로 행동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다음 계획을 들어버린다.

파르시틸 암살 작전

내용은 이러했을 것이었다.
파르시틸이 죽어버리면 장로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므로, 현재 파르시틸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에 침입, 파르시틸을 사살 후 마을을 괴멸하고 나와서 장로들에게 파르시틸이 사실 납치되어있었으며, 적대세력에 의해 계속 당주가 되어오는 것을 방해받아왔다고 꾸며 보고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란 계획이었다.

그녀는 계획을 듣고 알았다.
그녀의 월영파도 지금 위기라는 것을.
이 계획대로라면 파르시틸과의 교섭을 진행해왔던 그녀와 월영파도 적대세력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녀는 바로 월영파로 돌아가 전투 준비를 시키고 파르시틸의 친구, 시텔을 마을로 보냈다.
“시텔, 파르시틸을 데리고 돌아오렴. 파르시틸이 돌아와야만 그들의 계획은 무산시킬 수 있다.”
“네, 당주님.”

시텔은 재빨리 출발했고, 적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파르시틸에게 재빨리 돌아가자고 하였다.
“빨리 돌아가야 해! 지금쯤이면 아마 월영파가 너를 납치한 사람들과 공범이라며 공격받고 있을 거야!”
“마을 사람들은? 어떡하고?”
파르시틸이 말했다.

3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길다. 그에게 이미 마을이라는 존재는 커져 있었고, 이곳은 그의 일상에 녹아 있었다.
“걱정 마, 네가 이곳에 있지 않으면 그들이 이곳을 파괴할 이유는 없어!”
그렇게 파르시틸은 마을 입구를 향해 나가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우리들의 당주 후보를 억류하고 있는 이 마을을 적으로 간주한다!”
그리고는 고요한 밤의 적막을 온갖 쇠소리들이 깨부수며 마을은 불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병력은 사실 반대파 가문 모두가 있었다.
찬성파 가문들은 월영파 토벌에 참전한 것이었다.
“파르시틸! 일점 돌파를 해야 해!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가다가 외곽에서 한 번에 뚫고 나가는 거야!”
시텔이 말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는 그 때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기억한다.
마을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월영파를 지키기 위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고민들을 하며 그는 창을 들었다.
머리가 비워졌다.
그저, 적을 모두 베고 나가는 것이 무사였다.
그 날, 밤은 달이 유난히 밝고 컸다.
사방에서 튀는 피의 색들이 선명히도 보였다.
그 아래에서 그가 베고 지나가는 것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마을 사람 시체를 하나 볼 때마다 더욱 미친 듯이 창을 휘둘렀다.

자신이 창을 들고 나설 때 밀로바트 씨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이것은 너의 탓이 아니란다. 얼른 뛰어가서 오해를 풀면 이 문제도 풀리지 않겠니? 걱정 말고 가려무나.”
하키 씨의 말도 생각났다.
“우리 마을 남자들이 그렇게 약해 보이냐? 자기 가족 지킬 힘 정도는 기르고 산다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그녀의 말이 틀렸다.
이 모든 것은 자기 탓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이 잘못이었다.
자신이 너무도 약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강했다.
그들의 가족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노력했다.

사방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렸다.
불은 여기저지서 피어올랐고, 그의 옷과 창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베고 또 베며 무기는 망가져갔고 그 때마다 쓰러진 사람의 무기를 뺏어들었다.
지금의 창이 그의 5번째 무기였다.

그 때, 그의 앞에 검은 모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말했다.
지금의 노엘이었다.
“이봐, 넌 이제 영혼의 무사가 되어야 해.”
“이제는 무언가가 되는 것은 모두 두려워."
파르시틸이 말했다.
“어렸을 때는 양친이 돌아가셨다. 밥 먹고 살기 위해 들어간 월영파에서 행복한 듯 했으나 원하지도 않는 자리 때문에 지금 이 꼴이야. 도망쳐 온 마을도 그렇고. 나에게는 누군가의 자식도, 무사도, 여관집 종업원도 될 수 없었어. 이제는 또 어떻게, 무엇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거야?”
“너는 영혼의 무사가 되면서 모든 것을 지킬 수 있어. 너의 파트너가 될 내가 너를 1초 만에 월영파로 데려다 줄 수 있거든.”

“그러고는 저와 시텔을 노엘이 워프를 태워 데려갔죠. 그렇게 월영파와 찬성파 병력, 그리고 가문의 일반 병력들은 반대파를 잡으러 갔습니다. 저는 따로 노엘의 워프를 타고 갔죠.”
파르시틸이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워프에 넣냐.”
노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노엘에게 영혼의 무사 무기를 받았습니다. 저는 월영봉과 월광검 같은 것들이었죠.”
“저 인간은 다룰 수 있는 무기가 너무 많아서 이례적으로 여러 무기들이 지급되었어. 일단 그 때는 월영봉과 월광검만 줘서 네가 봤던 월형극으로 싸웠지. 그 때 저 인간 혼자서 지원군이 오기 전에 반대파를 엄청 쓰러뜨렸다고. 뭐, 사실상 혼자 다 쓰러뜨린 거야.”
노엘이 끼어들며 말했다.
“어쨌거나 그 때 마을 사람들은 많이 다치거나 죽었고, 밀로바트 씨도 이 때 돌아가셨습니다. 하키 씨도 다치셨고요.”

“어...음....이렇게까지 무거운 얘기일 줄 몰랐네.”
강진호가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앞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가?’
몸서리가 처졌다.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배가 도착한 것 같군요. 저쪽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역입니다.”
파르시틸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너 연합국에서 할 임무는 설명 안 해주냐?”
노엘이 물어봤다.
“아, 맞다. 그건 열차에서 설명드릴게요, 진호군.”
“진짜...... 까먹을 걸 까먹어야지 말야.”
노엘이 고개를 저으며 먼저 배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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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11 17:12 | 조회 : 697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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