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3)

“으악! 아파!”

옆에 앉았던 제 형이 동생의 팔꿈치에 맞아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아이 엄마가 일어난 아이를 끌어안았다.

“석아! 괜찮아?”

엄마의 물음에 진정이 되었는지, 따뜻한 품에 진정이 되었는지 꼬마는 쓰러지듯 안겨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엄마. 흐어엉. 무서운 아저씨 싫어! 아저씨 가라고 해.”



“저희끼리 가서 미안합니다.”

“애 건강이 우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동안 뭘 봤는지 아이는 몸을 떨며 울어댔다. 작은 차의 뒷자리는 겁에 질린 아이와 달래는 엄마가 편히 앉기도 힘들었다. 미안해하는 부부를 먼저 보낸 나는 옆에 있던 정연씨를 보았다.

헤어지기전 아이 아빠와 굳은 악수를 했던 그는 멀어지는 차를 보며 조심해서 가. 라는 말을 소리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도 출발할까요?”

나의 말에 그가 얼굴을 돌렸다.

“그러죠.”



정연씨가 대여한 차가 없었다면 나는 택시를 불러야 했을 것이다.

“차를 쿠알라룸푸르에서 빌렸죠. 동행이 있으면 야간 졸음운전도 막을 수 있으니 좋은데요.”

그는 기꺼이 나를 쿠알라룸푸르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어둠에 잠긴 고무나무 농장 사이 뻗은 길을 두 대의 차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달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운전대를 잡은 그가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아이가 봤다는 무서운 남자가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면 어떻겠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정연씨를 보았다.

“에이, 설마 꼬마가 본 게 저승사자라는 건가요?”

“아뇨. 약탈자입니다.”

말문이 막혔다. 약탈자라니. 일순간 가라앉은 공기만큼 낮은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었다.

“미아씨, 내가 아는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겉모습은 같지만, 행동이나 성격이 달라져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그런 것 말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초가을에 등산을 갔다가 발을 헛디뎌 굴러서 이틀 만에 구조된 적이 있다.

밤의 산은 무척 추웠다. 뒷날 구조받지 못했으면 저체온 증으로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기억나는 모든 과거를 떠올려 되새기고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만들었다.

죽음의 문턱을 들여다본 경험 때문일까. 그 밤 이후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들 했
다. 극한의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삶에 집요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 나의 변화는 가족들마저 놀라워할 정도였다.

잠시 과거를 떠올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에 씌었다는 말인가요? 젊은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의외네요. 충분히 교육받은 현대인이 미신이나 샤머니즘적인 것들을 믿는 경우는 적지 않나요?”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등에 힘줄이 일었다. 도로 옆의 나무들이 뒤로 넘어가는 속도가 늦춰지면서 앞차의 불빛이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거의 멈추다시피 운전을 늦춘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웅. 밤의 도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은 차 안이 답답해 눈을 밖으로 돌렸다. 박쥐와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농장이 뒷걸음질하는 걸 보자니 이 순간이 기분 좋은 꿈을 가장한 악몽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씌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야겠어요. 전 봤어요.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취업 불경기에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하는 데엔 이유가 있어요. 세상을 떠난 친구의 부탁 때문이거든요. 이 친구가 어떻게 죽었는지 들으면 제 말뜻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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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31 20:33 | 조회 : 789 목록
작가의 말
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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