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1)


2월의 여름, 말레이시아는 내가 아는 여름을 모두 가진 나라였다.

뜨거운 햇살, 몸의 모든 땀샘에서 배출되는 땀, 달콤한 과일, 오후가 되면 내리는 소나기 ? 우기여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꼬박꼬박 스콜이 내렸다 ― , 그리고 풀숲이나 나무가 우거진 곳에 무리 지은 모기떼까지.

매일매일 뽑아내는 데이터나 배양액에 잠긴 세포들, 빽빽한 출근길은 한국과의 아득한 거리만큼이나 아련했다.

이른 아침 노점에서 파는 아침을 골라 먹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했다. 호텔 식당에 들러 디저트와 차를 든 다음 카메라를 메고 관광지와 시내를 빈둥빈둥 돌아다녔다.

더위에 지치면 과일주스나 달짝지근한 얼음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돌아올 때는 야시장에 들러 여러 종류의 열대과일을 조금씩 사 들고 왔다.

어둠이 내리면 호텔 방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서비스로 제공되는 티백 홍차를 홀짝이며 웹 서핑을 하다 보면 시계를 확인하며 실험실 책상에 앉아있던 밤들이 오래전 과거처럼 느껴졌다.

몸이 편하니 피부도 안정되었다. 지상 낙원이 이런 것이리라. 이 감정은 여행 마지막 날 관광지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 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밤의 강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출국 전날 새벽까지 망설이던 일정이었다.

반딧불이 관광은 셀랑고르 국립공원이 유명하다.

셀랑고르는 내가 빈둥대며 돌아다닌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차로 1시간 거리다.

관광은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밤에 시작된다. 관광 시간이 문제였다.

수도로 가는 마지막 시외버스가 첫 야간 관광을 시작할 즈음 출발하기 때문이다.

당일치기 구경을 하려면 차를 빌리거나 호텔까지 갈 택시를 예약해야 했다.

아니면 공원 근처에서 숙소를 잡아 밤을 보내야 했다.

차를 빌릴 국제 면허증도, 늦은 밤 외국에서 혼자 택시를 타고 1시간 이상을 달릴 배짱도 나에겐 없었다.

1박을 하기엔 공원 근처에 괜찮은 숙소가 없는 것 같았다.

첫날부터 망설였던 나는 결국 마지막 저녁에 반딧불이 관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엔 사장님의 도움이 컸다.

사장님이 신경 쓰지 않았다면 나는 반딧불이를 보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그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다.

안부 인사차 보낸 메일의 답장을 통해 사장님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가족을 소개해 줬다.


[자네는 휴가 중에도 회사 돌아가는 상황은 궁금한가 보군. X와 R의 연구는 임 부장이 진행하고 있네.

주중부터 우는소리를 하는 걸 보니 유능한 서포터이자 아이디어꾼인 자네가 빠져서 힘들기는 한 모양이야.

그래서 격려차 5월 프로방스에서 열리는 유럽 학회에 보내주기로 했지. 부부동반 항공권을 끊어주겠다니까 아주 실험실에서 살고 있네.
중략…….

아직 반딧불들을 보지 못했다니 안타깝군.

혹시 혼자 가기 부담스럽다면 내가 사람을 소개해 줄 테니 같이 움직여보게.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사촌의 친구가 있는데 이번 주말에 차를 빌려서 가족들과 말레이시아 관광을 한다더군.
반딧불 떼는 자연이 보여주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야. 시간 맞춰보게나.]



싱가포르에서 온 일가족은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나는 가족이 대여한 자동차의 뒷좌석에 아이들과 앉았다.

7살, 10살인 남자애들은 무척 활발했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다가도 과자와 장난감으로 싸워댔다.

사내애들의 손과 발이 거칠게 엉겨 붙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뒤를 돌아보며 한 번씩 주의를 주었다.

꼬맹이들이 있으면 일정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종종 흐르기 마련이다.

마지막 사이다 캔을 가지고 싸우는 애들 때문에 우리는 도중에 작은 가게에 들렀다.

음료수와 약간의 간식을 사고 화장실을 들리는 사이 스콜이 내렸다.

폭우는 미리 검색해둔 유명 해산물 식당을 찾는 내내 내렸다.

미리 인쇄해둔 지도와 안내판을 확인하느라 차는 빗길을 천천히 이동했다.

비가 그치고 도착한 식당은 한창 식사 중인 단체 손님으로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시내로 나와 밥을 먹어야 했다.

늦은 저녁밥을 먹고 공원에 도착한 때는 해가 진 한참 뒤였다. 말레이시아는 밤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야간 관람 시간도 짧다. 입장이 거절되면 과자 봉지들을 들고 어두운 길을 달려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Oh, you are so lucky. The last team is waiting for their turn to aboard.

There are some vacant seats left, so your family can join in.

[와! 당신들 운이 좋아요. 마지막 관광 팀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어요.

빈자리가 있으니 가족들이 거기 합류하면 됩니다.]”

다행히 마지막 운항에 자리가 남아있어 입장이 허락되었다. 반딧불 구경은 공원 강을 따라 작은 배를 타고 도는 것이었다.

“이걸 입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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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6 23:19 | 조회 : 1,062 목록
작가의 말
비금

글쓴이는 SF, 읽은 사람들은 스릴러, 혹은 공포라고 평가한 raptor의 본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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