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준님, 우선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예..?..아.. 네..”

찢어질듯 아픈 가슴과 점점 더 죄여오는 아랫부분 때문에 온 신경이 그곳에 가있었다.
배고픔 따위는 잊은지 오래..
하지만 어제와 같이 또 식사를 거절한다면 그 핑계로 미샤가 내게 더욱 가혹한 벌을 줄 것이 분명했기에 서둘러 식사를 하겠다고 대답을 하는 나였다.

“.... 하준님, 말을 낮추셔야합니다.”
“... 아.. 하지만...”

험상궂어 보이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에게 말을 놓기란 쉽지가 않았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도 많아보이는데..

“보스의 명이셨습니다. 하준님께서 하대를 안하시면 저희가 혼이 납니다.”
“... 아.. 알겠.. 어..”
“부탁드립니다. 허면 식사를 이쪽으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잠시후, 내 앞에 여러 음식들이 놓여졌다.

“이렇게나 많이는 필요없는데...”
“보스의 명이셨습니다.”

그 놈의 보스의 명..

“식사하십시오. 저희는 문 밖에 대기해 있겠습니다.”
-끄덕-

그들이 나가고 나는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으로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음식을 먹으면 화장실이 가고싶어 질텐데.. 내 아래는 족쇄에 가둬져있으니.. 오줌이라도 마리면 아주 추한 꼴이 날게 분명했다.

눈치껏 조금씩 입만 대고 밖의 세르게이를 불렀다.

“하준님, 너무 적게 식사하신게 아닌가요..?”
“아..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아니, 안 좋아서..”

먹기는 했으니 벌을 받지는 않겠지..

“약이라도 가져오라 이를까요?”
“아.... 아뇨..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약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끄덕-
“그러면 지금 바로 집 구경을 하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날 보고는 세르게이가 시선을 돌려 뒤의 남자들에게 말했다.

“둘은 이곳에 남고 나머지 셋은 날 따라오도록.”
“예.”
“하준님, 가시죠.”
“네..그런데 그쪽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하준님..! 제발..”
“아...”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이에게, 더군다나 나보다 나이가 많아보이는 그들에게 말을 놓기란 정말..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그의 간절한 말에 나는 또 한번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제게는 그냥 세르게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세르게이가 앞장 섰고 내 뒤로 3명의 사내가 붙었다.

걸을 때마다 조임쇠와 체인이 흔들거려 아프긴 했지만 사람이란 역시 금방 적응을 하는걸까..? 아까와 만큼 찢어지는 고통은 아니었다.

세르게이를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곳은 집이 아니었다. 궁전이라면 몰라도.. 여기저기 아름다운 장미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보이는 가구들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곳이 보스의 침실입니다. 들어가보시겠습니까? 저희는 보스가 계시지 않을땐 들어갈 수 없어서요.”

내가 있던 방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뇨,..아니, 괜찮아. 이곳은 나중에..”
“예, 그러시죠.”

세르게이를 따라 한참을 걸어도 집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가다 처음보는 사내들이 지나가다 말고 내게 인사를 해왔다. (세르게이에게 한 것인가..?) 그들이 그럴 때마다 나는 몸이 순간 경직되어 걸음을 멈추곤 했다.

한참을 돌아다녔다. 내 인생에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이곳은 미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거주하는 듯 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여기..호텔 아니지....?”

호텔이라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양복을 맞춰입고 나인지 세르게이인지에게 인사를 하는것이 이상했고, 호텔이 아니라기에는 너무나도 큰 집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곳은 보스와 하준님의 집 입니다.”
“..그렇다 하기엔 너무..많은 사람들이 있는걸..?”
“아.. 그들이 불편하셨습니까? 그렇다 하시면 그들에게 말을 해두겠습니다. 하준님이 이곳을 다니실 땐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아닌데요?!..그게 아닌데...!”
“예?”
“아니..아니야, 그러지 말라고..단지 궁금해서 물은 것 뿐이야..”
“아..그렇습니까?”

뭔 말을 못하겠네..

“정원에 가보시겠습니까?”
“..정..원..?”
“예.”
“밖에.. 나가도 괜찮아..?”
“?”
“분명..여기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할거라고..”
“아, 정원 또한 이 집의 일부이니 괜찮습니다.”

그의 말에 그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정말 햇빛과 바람, 비와 눈 같은 자연의 것들을 죽을때까지 못보는 건가 했었다. 나름 신이 난 채 그들과 함께 정원으로 향했다. 날씨는 좋았고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날 반겼다.

“아아.. 바깥 공기 오랜만이다....”

일렬로 서있는 가로수들은 너무나 예뻤다. 정원은 마치 하나의 섬 같았다. 가운데는 큰 분수가 자리하고 있었고 한쪽에는 연못으로 보이는 곳에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영화 속에서만 보던 그런 풍경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정말 크다.. 예뻐...”
“마음에 들어하셔서 다행입니다. 이곳은 보스께서 하준님을 위해 만드신 곳이니까요.”
“으응..? 에에..?.!..뭐..뭐라구?!”
“이곳은 보스께서 하준님께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드리기 위해 계획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저 말은 즉, 여기서 정말 못나가게 할 작정이란 말이 되는 건가..?

그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오랫동안 모든것을 계획하고....

“궁금한것이 있어..”
“뭐든 말씀하십시오.”
“미샤는..뭘 하는 사람이야..?”

미샤는 자신이 누구인지 내게 말해주지 않았었다. 신경쓸 필요없다면서..
이들은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 물었건만....

“.....?”

한참동안 조용하자 뒤를 돌아 그들을 보았는데 4명의 사내들이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그들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뭔가 말실수를 했나..? 하고..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미샤를 보스라고 불렀었다. 이것이 문제였던 걸까..?

“아....미하일 씨..라고 불러야 하나..?..아니면..나도 보..스..라고......... 뭐라 불러야 해....?..”
“보스께서 애칭을 부르도록 허락하셨나요..?”
“내게 그렇게 부르라고....”
“아..죄송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 맞습니다. 저희 중 그 누구도 보스를 이름으로, 혹은 애칭으로 부르지 않기에 너무 놀라 그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세르게이가 내게 고개를 숙였고 나머지의 남자들도 뒤따라 고개를 숙였다.

“..아..아니... 괜찮은데...”

그들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까 무엇을 여쭈셨죠?”
“아..미샤가 뭘 하는 사람이냐고..”
“보스는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여러가지 사업을 하시는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없어서는 안되는 분이시죠. 모든 부문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주고 계신 분이시니까요.”

그가 동경의 눈으로 그를 떠올린 뒤 다시 말을 덭붙였다.

“정말 멋지신 분입니다. 정말요..”

세르게이의 말에 동의한다는 식으로 나머지의 남자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말은 내게 전혀 답이 되지 않았다. 사업가라는 것인가, 정치가 라는 것인가..
내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을 보았는지 세르게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일반인들은 우리를 이렇게 부르더군요. 레드 마피아.”
“아~.....아?!.......네?!!!!! 마.. 마... 피아요?!!!”

겨우 반말에 익숙해지려던 차에 또 다시 존댓말이 나왔다.

“그..그러면...그 분은.... 미샤는...”
“네, 저희를 통솔하시는 보스이십니다.”

마피아의 두목이라니.. 그럼 이 집은..마피아들의 안식처..인거야...?

예전 뉴스에서 들어본적이 있다. 러시아의 마피아 두목이 꽤나 어린 나이의 남자라고..
이들이 말하는 사업이라는 것은 기업인수, 마약거래, 돈 세탁, 무기밀매 같은 것들을 뜻하는 것이겠지..?

그런 무서운 사람이 나를 납치해 왔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필요하다고.. 그러니 이곳에서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과 동시에
난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준님..!!”

마피아의 두목인 미샤는 게이(gay) 이고 그런 그가 하필 나를... 나를...........

“괜찮으십니까..?”
“...... 보내주세요...... 이건 아니야.... 이건.....”

몸을 가누기 힘들정도로 몸이 떨려왔다.

“...날.. 보내줘요.. 세르게이!.. 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줘요..!”

지긋지긋한 눈물을 또 쏟고 말았다.

“하준님..”
“밖에 나가도 절대 신고하지 않을게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나가게만 해줘요... 세르게이.. 제발...”
“죄송합니다. 저는 그 무엇도 해드릴 수가 없어요.. 일단 하준님, 마음에 안정을 취하시는 것이..”
“..제발...제발..! 이렇게 부탁할게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 하.. 하준님..! 일어나십시오. 이러시면 안됩니다..”
“전.. 마피아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당신들에게 필요할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구요...”
“아뇨, 보스께서 하준님을 필요로 하십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미샤의 사람들이다. 내 말대로 해줄리가..
그들은 나를 일으키기에 바빴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셔서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야!!!!밖으로 나갈래요!....들어가기 싫어..!! 제발.....!”

나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내들에게 몸이 붙들려 다시 감옥같은 저 곳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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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30 19:36 | 조회 : 5,523 목록
작가의 말
귤떡콩떡

!!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매번 감사드려요~^_^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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