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창 밖으로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으..”

낯선 천장, 그리고 처음보는 화려하고 큰 방.. 이곳은 분명 기숙사가 아니었다.

“여기가..어디..”

난 어제의 일을 되새겼다. 분명 납치였다. 납치가 분명했다.
정신이 들자 신경이 곤두섣다.

“살려주세요!!! 누.. 누구 없어요...?...!”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하여 큰소리로 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조심히 침대에서 내려와 떨리는 몸을 이끌고 문으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면 밖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긴장감에 손은 점점 더 떨려왔다.

-똑똑-

문 손잡이를 붙잡고 열지, 말지 한참을 망설이던 난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놀라 주저앉아버렸다. 그 순간 문이 열렸고 문 밖으로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보였다.

“깨어나셨군요. 괜찮으십니까?”
“....어...?.한.. 재민...? 재민아!! 나 좀 구해줘.. 나.. 납치를 당한것 같아...!”

그는 날 일으키려 손을 내밀었고 난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곧 보스께서 오십니다.”
“뭐라는 거야! 그 양복 차림은 또 뭐고!!..”
“............”
“일단 나가자. 나가서 얘기해. 우리 서둘러 나가야 해!!”

재민은 쳐다만 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야아..! 왜 그래 무섭게....!...”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고 있었다.

“하준 님, 일단 진정 하시고 침대로 돌아가시는게..”
“...한.. 재민... 왜 그래.....! 나한테 왜 존대를.....”

“뭐지. 무슨 일이지?”

갑자기 들려오는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 그 사내의 등장에 내 앞에 있던 재민은 서둘러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보스.”
“무슨일이냐 물었다. 왜 하준이 울고 있냐고.”

분위기 파악을 위해 재민과 사내를 번갈아 보던 내게 그 사내가 다가왔다.

-딸꾹-

“?”

두 남자의 시선은 모두 내게로 향했다. 이 분위기에 딸꾹질이라니..!
사내의 포스에 눌려 울음을 참으려다가 그만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딸꾹-

“이런 이런, 나의 아기새가 겁을 먹었나 보군. 재민, 넌 그만 나가봐.”

사내가 시선은 그대로 내게 둔채 그렇게 명했고 재민은 또 다시 허리를 깊이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안돼..! 한재민! (딸꾹) 나 데려가...!!”

나의 외침에도 무정하게 나가버리는 재민..

“....사..살려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뿐이었다.

“누가 죽이기라도 한데?”
“살려..주세..(딸꾹)요.. 제게 뭘 원하셔서...!..”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사내가 나를 들어올려 버린 것이었다.
내가 큰 키는 아니지만 제법 무거울텐데도 불구하고 꼭 깃털들듯 나를 들어버리는 그..

“뭐..뭐하시는 거예요!..”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쳐봤지만 끄떡없었다. 근육질의 이 남자는 깃털 들듯 날 들어버린 사내였고 이 정도의 몸부림으로 끄떡할 사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안고는 침대로 향했다.

-딸꾹-

그는 내가 처음 눈을 떴던 그 침대위에 나를 다시 앉히고는 옆의 물컵을 건냈다.

“마셔. 딸꾹질이 멈출거야.”

나는 컵을 건네받지 않고 수상쩍은 눈으로 그와 컵을 번갈아 보았다.

-딸꾹-

왠지 마시면 안될것 같았다.

“뭘 생각하는 거지? 그냥 물일 뿐이야.”
“.......”
“흠.”

나의 의심쩍은 눈을 눈치챘는지 사내는 들고있던 컵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봐, 내가 먼저 마셨어. 괜찮아. 정말 그냥 물이야.”

-딸꾹-

그의 말을 듣고도 내가 마시지 않자 그는 얼굴을 굳혔다.

“마시지 않는다면 억지로 마시게 할 수 밖에 없어.”
“............”

그의 굳은 얼굴은 너무나도 험악했다. 왠지 그의 말에 뭐든 복종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그의 손에 있는 컵을 가로챘다.

“착하네.”

그는 물을 마시는 나를 보며 웃었다.

“..제발.. 저를 돌려보내주세요.. 돈을 원하시는 거라면..잘못 데려왔어요... 저는.... 저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 제발 보내주세요......”

침대위에서 무릎을 꿇고는 애원했다. 딸꾹질은 멈췄지만 또 다시 흐르는 눈물.

“울어도 소용없어. 난 그대를 보내주지 않을거니까.”
“뭘 원하시는 건가요..!보내만 주신다면 뭐든 할게요...그러니 제발....”

나는 더욱 간절히 빌었다.

“돈 때문도, 그 무엇 때문도 아니야. 단지 난 너가 필요한것 뿐이야.”
“.......”
“넌 그냥 내가 하라는대로 따르면서 그냥 내 옆에, 나와 함께 있어주면 그걸로 돼.”
“..저를.. 아세요....? 우리가..만난적이 있나요...?”
“난 너를 1년이나 봐왔어. 역시 난 너가 없으면 안되.”
“....예...?!”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난 처음보는 남자였다.

“저는.. 그쪽 처음..보는데...”
“미하일.”
“네..?”
“내 이름, 미하일이라고.”

대체 나는 이 사람 속을 알 수 없었다.

“여지껏의 사람들은 모두 잊어. 이제 미하일, 이 이름만 기억해.”
“그게..무슨...”
“이제 넌 널 위해 살지도, 그 누구를 위해서 살지도 못할거야. 이제, 넌 나의 것이니까. 날 위해서만 살면 되는거야.”

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는 나의 입술을 덮쳤다. 놀란 나는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짜악-
“하아..하아..!당신 미쳤어?! 너 게이야?!!!!!”

그가 내게서 떨어지자마자 난 그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뺨을 맞은 그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 얼굴이었다.

“..내가 그대에게 뺨을 내주는 것은 이번 뿐이야. 또 그런다면 난 널 묶어둘 수 밖에 없어.”

그가 화를 참고 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화를 내야하는 건 분명 나인데.. 어째서...

“..대체 내게 왜..이러시는 건데요....!”
“단지 난 너가 필요할 뿐이야. 너가 없으면 안돼.”

그는 나에게 굉장한 집착을 보였다.
미하일이라는 이 남자는 1년이란 긴 시간동안 내가 모르는새에 날 지켜봐왔고 이제는 필요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납치까지 해버린 사람이었다.

“내게 저항하지 마. 오늘같은 일은 있어선 안돼. 2주일 정도면 곧 나에게 복종하게 될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하는거야.”
“.......”
“그리고 이제는 여기가 너의 집이다. 이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갈 생각하지마. 도망가도 소용없어. 곧 다시 붙잡혀 올테니까. 도망을 갔다가 다시 붙잡혀 올때는 자비 따위는 바라지마. 도망은 곧 그대에게 죽음이 될테니까. 이해했어?”
“...왜..왜... 대체 내게 왜...”
“하준, 난 그대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 그럴 수 있게 너가 도와줘야해.”
“.....제....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거죠..?..”
“말했잖아. 1년을 봐왔다고. 재민이 아직 말을 안했나보군. 아, 맞다. 근데 재민 역시 나의 사람이니까 허튼 생각은 하지마.”

그는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를 보고 웃고있었다. 그의 표정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제 재민은 너의 친구가 아니란 얘기야.”
“.........무슨....”
“하필 재민과 그대가 친구 사이이던걸 어쩌겠나.”
“다.. 당신은 누구신데요.... 재민인 또 뭐구요....”
“내가 누군지 그건 알 필요없어. 단지 그것만 알아둬. 그대를 납치해 온 것도 재민이라는거.ㅋ”

.... 순간 어디에 한대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떠오르는 기억..
맞다..... 기억이 났다.. 갑자기 미안하다며 나를 들쳐업어버리던 재민이...

“아까 문 밖에 서있는 애들 봤지?”
“.............”
“그들은 내 명에만 움직여. 물론 재민도 포함. 사람 찾는건 시간 문제라고. 도망은 소용없다고 다시 한번 말해두는거야.”
“.........”
“집에서도 재민이 항상 너를 감시할거야. 나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마. 그럴수록 힘들어지는건 너일 뿐이라고.”
“....... 제발...... 미하일씨......... 보내주세요...... 제발...... 제발......”
“말 여러번하게 하지마. 난 널 보내주지 않아.”

나를 내려다보는 그..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날카로운 턱선, 남자다운 얼굴로 포스를 풍기며 185는 족히 넘어보이는 덩치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감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문 쪽을 향해 달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빠른 질주로..

“하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고..”

열심히 달렸지만 그는 나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서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를 가두고 있던 큰 문을 열었을 때, 왜 그가 나를 잡으려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문에서 한발자국 내딛자마자 검은 양복의 사내들에게 도로 붙잡혀 침대 옆으로 원상복귀 되었으니 말이다.

“묶어.”
“예, 보스.”
“?!!!!!! 아.. 아니예요!... 다신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

그 때, 내 눈에 재민이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불러봤지만..

“재민아....!! 한재민..!!!!! 나 좀.... 나 좀 살려줘...!!!”

역시 쳐다만 볼 뿐..

“기억해둬. 나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이렇게 너만 힘들게 돼.”
“자... 잘못했어요......!.... 안그럴게요... 미하일 씨...!!!!”

나의 비명 비슷한 외침에도 그대로 나는 침대 옆 천장 어떤 기둥에 팔을 만세한 채로 묶여버리고 말았다. 나를 구속해버린 족쇄가 너무 위에 있는건지 까치발을 해야만 겨우 서있을 수 있는 높이였다.

“....안 그럴게요....!! 제발 풀어주세요......!!”

애원밖에 못하는 초라한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만 보는 재민..
그에게 배신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나를 구해줄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 역시 들었다.

“하준, 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있을거야. 나를 거스르려한 벌이야. 참고로 난 저녁쯤 돌아올 예정이고.”
“.....이렇게 그때까지 있을 순 없어요.... 제발.....”
“아니, 벌을 받아야 다음에 또 이런 실수를 하지 않지. 밥은 재민이 먹여줄거야. 잘 챙겨먹고.”

벌써부터 다리에 힘이 빠져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까지 이러고 있으라니...

“처음이라 조금 힘들테지만 잘 버티며 기다리고 있으라고.”
“..미.. 미하일 씨..”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큰 방 안에 혼자만 남겨진 나.. 다리에 힘이 빠질수록 손목이 조여와 점점 더 아파왔다. 손목이 부어오를 정도로 힘껏 흔들어보았지만 그것은 절대 풀릴 생각이 없었다.

“씨발............. 씨발!!!!!!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대체!!!!!!!!!!!!!!!!!!!!”

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17
이번 화 신고 2019-06-11 08:03 | 조회 : 3,999 목록
작가의 말
귤떡콩떡

실제 레드 마피아는 점조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군대와 같은 규율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실제로는 조직원들 사이의 서열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제 소설일 뿐입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