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계획 (完)



“제대로 확인한 것인가.”
“예. 확실히 숨통을 조여놨습니다.”


한 기사의 말에 크리엔이 앞에 쓰러져 있는 한 시신을 향해 다가갔다. 꽤 질퍽한 진흙이 밟혔다. 음습한 곳이었다.
크리엔은 시신의 앞에 도착하였다. 그러고 시신의 숨결을 확인하였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한 손은 허리춤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내 용무를 끝낸 듯, 서서히 시신에게서 멀어졌다.


“그렇군.”


엄숙한 분위기에서 크리엔의 말이 이어졌다. 기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크리엔의 말을 기다렸다.


“그 아이가 알지 못하도록 해라. 설령, 이 중 누군가라도 이 일을 그 아이에게 발설하는 것을 들키게 된다면, 그 가문은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예―!”


크리엔은 기사들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그 미소마저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옅었다.

아무리 연맹국의 사신이라고 한들, 어느 정도 서로의 선을 지켰어야 하지 않았나.
크리엔은 조소를 담고 시신을 바라보았다. 꽤 이름이 있는 가문이었으나, 자국에서는 용감하다고 하던 그 무모함이 결국 자신을 파멸로 내딛게 한 것이었다.

한낱 쥐새끼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던가. 크리엔은 다시 한 번 더 섬뜩한 그 날을 떠올려 보았다. 그 아이의 소중한 모습을 담았던 발칙한 눈, 그 아이에게 감히 웃어보이던 그 입매. 아이 또한 이 녀석에게 점점 마음을 여는 듯했다. 이러한 보고를 들었을 때에는 그 마음이 어땠는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자신에게 마음을 열던 그 아이였건만, 어째서 이런 훼방꾼이 나타난다는 것인지. 크리엔은 시신을 향해 혀를 차며 조소를 흘렸다. 네 녀석도 참 안 된 놈이라며 말이다.

자, 이제 연극을 위해서는 그 아이만 오면 된다. 크리엔은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하였다. 그 아이가 쉬이 볼 수 있도록, 그 아이의 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복도에 시신을 눕혀놓았다. 그러고 자신과 주요 관리들과 기사들이 서 있다면, 필히 루리엔은 크리엔이 걱정되어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크리엔은 루리엔이 자신을 걱정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닿자 온 몸에 야릇한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

루리엔에게는 크리엔만이 있으면 된다. 이것이 그의 가치관이었다.


그러고 그의 예상대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리엔……?”


크리엔은 안면에 띠고 있던 미소를 지운 채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조심히 걸어오는 루리엔이 보였다. 크리엔은 그런 루리엔을 향해 양팔을 벌려 보았다. 그러자 띄엄띄엄 걸어오던 루리엔이 서서히 속력을 붙이더니 이내 크리엔의 품에 쏙 안겨왔다. 루리엔이 보지 못하는 크리엔의 만면에는 환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


“크리엔… 크리엔…”


자그마한 아이가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크리엔은 만족감에 루리엔을 더욱 꼭 껴안았다. 그러자 아이는 절로 크리엔의 품을 파고들었다.

크리엔은 그런 루리엔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나의 꽃―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


크리엔의 말에 품에 묻혀 있던 루리엔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그냥… 그냥… 무서워서… 그…”


주위를 둘러보던 루리엔은 잇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주위를 살펴보던 루리엔이, 결국 그것을 보고 만 것이다. 크리엔은 조용히 루리엔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시… 체…? 크리엔…? 이게 무슨….”
“아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크리엔에게 말을 걸어오는 루리엔의 모습은, 크리엔의 정복욕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크리엔은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니, 오히려 안타깝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일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연맹국에서 파견되었던 사신 중 한 명인 게지. 무슨 연유인지 계속해서 응접실에서 벗어나 황궁 중심부에 들어오고 있었다고 하더군.”


크리엔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루리엔의 안색은 창백해져 갔다. 아마도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임을 짐작한 듯했다.


“기사단의 계속된 경고에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기사단을 도발했었다고 하더군.”
“도발을…?”


서서히 반응이 올라오는 루리엔이었다. 크리엔은 계속해서 미끼를 던졌다.


“그렇다고 하더군. 반드시 봐야 할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


이번에는 명중한 것인지, 루리엔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크리엔을 바라보았다. 크리엔은 왜 그러냐는 듯 루리엔을 마주 바라보았다. 루리엔의 얼굴에는 망연자실한 기색이 역력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크리엔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루리엔은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엔은 조소를 삼키며 루리엔에게 물었다.


“루리엔. 안색이 좋지 않군.”


크리엔은 루리엔의 어깨를 잡고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이, 물방울이 넘실거리는 루리엔의 눈이 보였다.

루리엔은 두렵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붙잡는다. 그러고는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어… 어떡해… 어떡하지…….”
“루리엔―”
“나 때문이야…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해…?”


연신 자신을 탓하며 눈물을 흘리는 루리엔이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바로 정면에 있는 크리엔을 바라보았다.

크리엔은 그런 루리엔을 꼭 끌어안으며 토닥토닥 위로를 해 주었다.
품에 안겨있는 루리엔은 마치 유리 인형인 것처럼 느껴졌다. 더욱 세게 껴안으면 마치 부서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루리엔― 너는 늘 네 탓만 하는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말과 동시에 크리엔은 품 안에서 숨을 삼키는 루리엔이 느낄 수 있었다. 계획대로 된 직격타였다. 딱 루리엔의 예민한 부분을 찔러버린 것이었다. ‘그 날의 사건’에 예민했던 루리엔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크리엔은 그런 루리엔을 토닥여주며 웃음을 띄었다.

그러고는 루리엔의 얼굴을 붙잡고 자신과 마주하게 하였다. 울고 있는 루리엔의 눈가에 천천히 입술을 포개었다 뗀다. 촉촉이 젖은 눈가가 느껴졌다. 크리엔은 그런 루리엔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너에게는 짐만 있으면 된단다― 나의 꽃.”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루리엔을 바라보는 크리엔이었다. 루리엔은 그런 크리엔을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엔은 만족스럽다는 듯 환히 웃어 보였다.


애초에 모든 것이 계획된 내용이었다. 한낱 사신이라는 놈과 놀아나는 루리엔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와 멀어지고 자연스레 자신을 찾게 되는 루리엔의 모습을 바라고 계획한 것이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오히려 그의 부름을 무시하고 자신을 찾으며 밤새도록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아이를 껴안고 사랑을 탐하고 싶었다.
애초에 옛날 그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행해졌다. 그 결과 아이는 더 이상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만족스러웠다. 그 타인의 자리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 어쩌다가 나같은 놈에게 걸려버린 것인지. 하늘을 원망해라. 부디 나를 미워하진 말거라. 그때는 더 이상 ‘나의 꽃’이 아니게 될 것이니.


우는 루리엔의 뺨을 쓰다듬어 눈물을 닦아주며 크리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조소를 품은 채 루리엔을 바라본다.

5
이번 화 신고 2019-05-18 22:40 | 조회 : 1,479 목록
작가의 말
자낳괴

6화와 이어지는 수위 글과 '그 날의 사건'에 대한 내용은 향후 외전으로 공개됩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