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침실



포개어졌던 입술이 부드럽게 떨어져 나간다.

내리감고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연유인 것인지, 나 역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어 보이며 서서히 멀어진다.


나는 그렇게 멀어지는 그를 붙잡기 위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행동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휙 돌아서 침실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침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혹시 오랜만에 한 입맞춤에서 내가 실수로 인상을 찌푸렸던 것인가.
아니면, 그의 입술을 살짝이라도 깨물어버린 것일까.

제 아무리 머리를 꽁꽁 싸매고 생각해 보아도, 그에 대한 해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미소만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처음으로 그가 잠자리를 마다했다. 아니, 침실에 발을 내딛지도 않았다.
침대에서도 더 이상 그의 체향은 거의 묻어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짧게 안부만 묻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것도 시종장을 통해 간헐적으로만 소식을 전해왔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가 나를 기피하는 걸까.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하나밖에 없던 그를 잃기는 싫었다.
하지만 그가 나를 피한다면, 나는 그것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가 나를 기피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있어서 존재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서웠다. 너무나도 잔혹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똑똑


평소와 다름없는 소리가 나를 반겨왔다. 하지만 그는 아닐 뿐더러 시종장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 챘지만, 선뜻 문을 열어줄 수는 없었다. 그가 오기 전에 다른 이를 먼저 들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침대에 누워 있던 몸이 무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중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에 대한 거부감이 은근히 든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연이어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상대에게는 미안했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문 앞에 서 있을 그 사람이 먼저 발걸음을 떼어 주기를 기도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오늘은 몸이 안 좋나 보네. 몸 관리 잘해. 점점 날이 추워지는 것 같더군― 그럼 다음에 보자!”


그 사람 특유의 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분히 나를 배려해 주는 기색이 묻어났다. 처음으로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로 인해 무거워졌던 마음이 그나마 조금 가벼워지는 듯했다.

현재에 있어서,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그러고 보면, 나도 그를 위로했어야 할 타이밍이 있었던 게 아닐까? 위로라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줄 알았으면, 그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위로를 건네었어야 했나 보다.

그런 것이다. 업무로 지친 그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서는, 나는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렇다.

어느 정도의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후는, 몸이 가벼워져, 거동을 살필 수가 있었다.


이불 없이는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이 공간이, 조금씩 온기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의 덕분인 걸까?

사실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맞춰서 몸이 점점 나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궁의의 말에 의하면 가벼운 감기 증세라고 하였다.

과연 감기에 그쳐서 되는 것이었을까?


나는 가끔 그와 함께 있어도 두려움을 느낀다.

그가 언제 나를 두고 가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말이다.

그의 사랑을 갈망한다. 그가 너무나도 그립다.
그의 품이 아닌 이곳은 더 이상 나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오한이 드는 듯했다.
점점 날이 추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지금은 완벽히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가 없는 곳은 너무나도 추위에 사무쳐 살아간다. 그가 너무나도 그립다.


뺨을 타고 방울지어 흘러내리는 눈물에 눈을 질끈 감아본다.
고독을 실감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고독을 인정해 버린다. 혼자는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 아니 그가 아니면 그 누구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여야 한다.

그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한다.


고장난 눈물샘으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만다. 그 낯선 이의 환한 미소가 아닌 그의 미소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그렇게 나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분명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침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나를 감싸고 돌 뿐이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그가 돌아와 평소처럼 다시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6
이번 화 신고 2019-05-14 00:08 | 조회 : 2,208 목록
작가의 말
자낳괴

이번 편은 루리엔의 감정선을 최대로 나타내고자 한 편이었습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