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낯선 이


“연맹국에서 사신이 파견된다는구나.”


그는 그 말과 함께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함께 침대에 누워있었기에 허리 아래로 파고드는 그의 손이 선명히 느껴졌다.


“연맹국…?”
“응. 연맹국.”


그러고는 내 머리를 그의 가슴팍으로 끌어 당겼다. 나는 어설프게 그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되었다. 그러나 곧 긴장을 풀고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조심하여라― 루리엔…”


바로 귓가에서 느껴지는 음성에 무언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그의 말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무언의 압박이었다. 바깥세상을 조심하여라.

나를 지탱해 주는 그였기에 나는 조용히 수긍할 뿐이었다. 그러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나의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 겉옷을 두른다.


“나는 너의 세상이고, 너는 나의 세상이다. 루리엔―”
“응….”


그가 등을 돌린 채 말을 이었다. 어딘가 서글픈 느낌에 나는 역시 가만히 그를 받아들인다.


“잠시 업무를 보고 오지.”


약간의 다정한 웃음이 실린 음성과 함께 간단한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서서히 닫히는 문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그의 발걸음이 행해졌던 이동로를 좇았다. 그의 온기가 빠져나간 침대가 허전해 가만히 이불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 그가 어지른 머리칼을 다시 쓰다듬어보았다.

그는 유난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내 뺨을 가장 좋아했다.

그렇기에 나 또한 내 머리와 뺨이 좋다. 그가 좋아한다.
이렇게 난 그를 생각하며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침대에 혼자 남아 그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도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늘 침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그를 기다린다.

오늘은 오래 걸리는 것 같아 가만히 주저앉아 그를 기다려본다. 바닥에 곱게 깔린 카펫을 바라보며 그 문양을 외우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늘 5cm 남짓한 거리까지 문양을 외우고 있을 즈음에야 그가 나타난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조금 많이 바쁜가 보다. 어느새 문양은 5cm의 거리를 초과하고 있었다. 조금은 허전했지만, 이내 다시 문양을 외우는 데에 집중한다.

그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후드를 뒤집어 쓴 낯선 행인이 비쳤다.

왠지 모를 섬뜩한 기운이었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침실로 들어섰다. 그러고 문을 닫으려던 그때, 한 외침이 들려왔다.


“잠시만요―!!”


조급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에 그것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문을 막기 위해 손을 뻗어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상대의 그런 사정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었다.

무언가의 외침이 다시 한 번 더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였다.
그 짧은 순간에, 숨이 가빠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급히 침대로 들어왔다. 그의 체향이 묻어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누군가의 외침이 점점 그쳐가는 듯했다.

가빠졌던 호흡 역시 평정을 되찾는다. 그의 체향 덕분이었다.

빼꼼, 고개를 내빼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누군가가 서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철저한 외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왠지 모를 호기심에 나는 점점 고개를 높이 들게 된다.


“….”


고요한 침묵만이 방을 훑고 지나간다.

상체를 일으켜, 천천히 문 쪽으로 향했다. 한 걸음씩 살살 내뱉었다.

그러고 마침내 도착한 문 앞. 조심히 문에 귀를 대어 바깥 분위기를 파악하였다. 그러자 들려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발걸음 소리도, 말소리도 아무런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호기심인지, 나는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낯이 익는 카펫의 문양이 눈에 띄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복도를 향해 한 걸음 내걸었다. 그와 동시에 낯선 체향이 느껴졌다.


“얍―!!”
“―!!!!”


깜짝 놀란 탓에 찍소리도 내뱉을 수 없었다. 무게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다시 침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우발적인 사고와 함께 말이다.


“아야야……. 들어오기 되게 힘드네―”


엉덩방아를 찧은 탓에 낯선 이를 향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뻔뻔함의 극치였다.

낯선 이는 내 위에 올라탄 채로 어색한 웃음을 자아내 보였다. 미안하다는 뜻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와 나의 공간을 침범당한 기분이었다.


“미움을 받아버린 건가? 미안하게 됐어. 아직 황궁의 지리가 익숙지 않아서 말이야.”


그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말을 나에게 하고 있는 것인지, 탓을 할 거면 황궁을 설립한 이에게 가서 따지라고 하고 싶었다. 그 역시도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이다.

최대한 낯선 이와 멀어지고 싶었기에 그의 가슴팍을 밀쳐냈다. 굳이 이런 말들을 내 위에 올라탄 채로 했어야 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 미안, 미안. 경황없이 굴었군. 음…, 그나저나 너 진짜 곱게 생겼다. 네가 그 소문의 황태자?”
“….”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나는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아니, 마음 같아서는 이미 온갖 육두문자를 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맹국의 사신일 우려가 있어 그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하―! 아니면 네가 그 황태자의 첩?”
“더 이상의 경박스러운 소리는 삼가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저 멀리서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꽤 여러 명의 무리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낯선 이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오히려 후드를 벗어 내렸다. 그러고는 대놓고 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무지 낯선 이를 향해 고운 눈짓을 보낼 수 없었다. 오히려 불쾌했고, 예의를 상실한 인간의 작태였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푸른 청안은, 나에게 역겨운 몽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내 낯선 이를 향해 등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아무 말 없이 그를 연행해 가는 기사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덤으로 등 뒤로 나를 부르는 낯선 이의 부름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6
이번 화 신고 2019-05-12 20:52 | 조회 : 1,871 목록
작가의 말
자낳괴

얍―!!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