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왕, 약간의 이야기를


현 48대 마왕. 유라.
이것이, 지금의 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실 저는 원래 마왕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제 위의 '통솔자'인 아이스 오라버니와, '포식자' 프루루 언니가 마왕후보로서 단단히 입지를 굳히고 있었고. 저는 뒤늦게 태어나 언젠가 둘 중 하나가 마왕이 되면 버림패로서 쓰이고 버려질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마왕으로서의 자질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강대한 마력이나 그를 다루는 마법의 자질. 그 외 특이한 술식. 그 어느 것도 잘해내는 것 하나 없었습니다. 신체능력도 보통 정도로 뛰어난 점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용지물.
쓸모없는 녀석이라며 여기저기에서 매도받았습니다.
거기다 성격도 이 모양. 전쟁이니 싸움을 외쳐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에게는 화평이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아픈 전쟁이 아니라 언젠가 모든 종족이 웃는 얼굴로 다같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는.

안이한 꿈을.

저는 그 꿈을 꾸면서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철저한 실력파. 힘이 없으면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사고방식이 마족과 완전히 벗어난 저는 심했습니다.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저는 여전히 자질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 노력을 좋게 봐 준 친절하신 분들의 도움으로 저는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8살 무렵. 가장 초급 소환술인 슬라임 소환술을 백번째쯤 실패했을 때.
다크나이트와 만났습니다.
아마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한번만 더, 하면서 온갖 매개체와 약품을 모조리 쏱아부었던 탓으로 마법진 자체의 성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던 것과,
제가 연습하던 지하실의 밑이 묘지였던 영향이었겠지만. 완전히 그건 천운이었습니다. 기적이라고 해도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처음 만났을 때 슬라임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갑옷이 튀어나와 놀라서 울었군요. 그때 다크나이트가 몹시 당황하며 달래줬습니다. 좋은 추억이네요.

그는 고대의 초대 마왕의 오른팔이자 대장군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신을 언데드로서 소환해내다니 대단한 마법 자질이라며 앞으로 '마왕'으로서 모시겠다며 그는 말했습니다.
물론 가장 기초 중 기초인 초급 슬라임 소환술에서 실패해 당신을 소환해버렸을 뿐입니다-따위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비밀입니다.
그야 이런 대단한 분을 그따위 걸로 소환해냈다니, 죄송하잖아요.

그를 소환했던 덕분에 저의 입지는 단숨에 뒤바뀌었습니다.
무용지물의 버림패인 공주로부터, 대장군의 언데드를 소환해낸 대단한 공주로.
가족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아버지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받았습니다. 그 냉담한 오라버니나 무심한 언니도 한마디씩 해줬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 말을 들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그렇게 여러가지로 노력하던 도중 연금술 실패로 슬라임을 만들어냈습니다. 어째서 연금을 하고 있었는데 슬라임이 태어났던 것인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만 자연에 방생했더니 어째서인지 Lv.100에 달해 슬라임 퀸으로 진화해 부하가 되겠다며 당당히 돌아왔었습니다.
후, 마왕성의 디저트를 먹어보고는 갑자기 거기에 꽂혀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젤리는 맛있죠. 지금도.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적지만 친절하신 분들.
보호자처럼 챙겨주는 다크나이트와 재치 넘치는 슬라임.
인생 최고로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해도 좋았던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평화에 안이하게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용사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어째서 최전방에 나간것도 아닌데 아버지를 지키지 않았냐며 오라버니와 언니의 매도가 날아들었습니다.
마왕성에서의 마지막 결투를. 저는 눈치채지 못했던 겁니다. 분명 현명하신 아버지께서는 용사와의 충돌을 눈치챈 제가 무슨 행동을 할지 예상하고 싸우신 장소를 결계로 단절했던 거겠죠.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저. 용사의 손에 불타 죽어가는 그 장렬한 마지막.
그건 아마 아버지가 제게 마지막으로 베푼 온정이자,
결코 제 말이 닿을리 없다는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이건 말로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원망해라. 원망해서 인간에게 복수해라. 어차피 이런 운명이다.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오라버니가, 언니가. 인간이나 아인에게 얼마나 심한 짓을 하고 그들을 몰아넣고 있었는지. 마족의 병사들이 얼마나 많은 인간의 마을을 유린하고 그들을 죽였는지.
그렇기에 아버지가 죽은 것은 아마 정당한 복수겠지요.
...정당한 복수였겠죠.
저희도 정당한 복수였겠죠.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너는 아직도 그런 꿈을 꾸냐며 매도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서로 대등하게 돌려주었으니, 평등하게 돌아오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주위에서 매도당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임당한게 분하지도 않냐고.
인간 용사의 손에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인간 병사의 손에 친절했던 메이드인 샤리 씨가 죽었습니다.
곧잘 어울려 놀아주던 시종이자 친구였던 프리디와 쥬디도 죽었습니다.
메이드와 친구들은 죄가 없었지만. 저희가 죽였던 인간들도 죄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 않나요?
원망할 상대는 자신으로 충분합니다. 아무것도 못한 자신을.
더 이상 상대를 원망해봤자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이쪽에서 저쪽을 죽이면 저쪽도 이런 고통을 받고 다시 이쪽에 되돌려주겠죠. 그래요. 저는 이기적인 아이입니다. 더 이상 자신이 상처받기 싫으니까 증오의 사슬을 끊기로 했습니다.

괴로운 건 싫습니다.

인간을 몰살하자라고 주장하는 오라버니.
인간을 가축화해서 먹어치우자고 주장하는 언니.
그 둘을 마왕의 자리에 앉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크나이트가 있는 저에게 오라버니와 언니는 패배했고, 처형을 피해 추방되었습니다. 사실 패배자는 처형이라는 게 마족의 법입니다만 가족이니까요.
...제 어머니를 독살했었더라도 제 오라버니니까요.
어째서 아버지가 살해당했는데도 인간을 미워하지 않느냐고 매도하는 오라버니에게 그렇게 돌려주었습니다. 오라버니는 그대로 떠났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조차 안 되는 세계일까요.

저는 결국 마왕이 되었습니다.
마왕이 되어 각국에 화평을 위한 동맹을 요청했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세계 전체가 적이었습니다. 다시 쳐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끈질기게.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모두가 웃는 세상을 원합니다."

마족은 수명이 길고도 긴 종족. 대부분의 왕국들이 한 세대가 바뀔 때까지 저는 끈질기게 화평을 주장했습니다. 모두가 대등하게, 평화롭게.
서서히 다른 나라들도 찬동해주었습니다. 철저히 이용하려 들고 전혀 찬동하지 않는 나라도 있었습니다만, 가볍게 다크나이트와 슬라임이 제압해주었습니다.
반대한다면 그저 언제까지고. 세월이 계속 흘러도 변함없이 주장을 계속할 뿐.

그러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용사가 태어나지 않았던 겁니다. 마왕은 있는데,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 언밸런스한 상황에 제가 마왕임을 의심하는 목소리까지 높아져갔습니다.
마왕임을 증명해라. 그렇게 말해진 겁니다.
그랬더니 슬라임과 다크나이트가 무서운 기세로 '그렇다면 용사를 찾아서 그 목을 가져오겠습니다!'같은 것을 외치며 전에 제가 대실패한 공간전이 마법진으로 다이빙.
...그 둘은 제가 무슨 마법의 천재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 그거 실패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실패한 공간전이 마법진은 차원이동을 시켰습니다. 이상한 구석으로 실패가 뛰는 것 같네요.
그렇게, 마왕이 없는 세계의 용사님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민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의 제 1과제는.
이 용사님이 자신의 세계를 멸망시키지 않게 하는 것부터인 것 같습니다.

저, 마왕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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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13 01:48 | 조회 : 1,835 목록
작가의 말
양야

이 마왕님 실은 좀 무서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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