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 용사, 궤변적 논리


"요, 용사님은 평화를 지키는 분이시잖아요!? 어째서-"

"...애초에 내가 왜 '지켜야'되는 건데?"

"....네?"

한번도 지켜본적 없는 그 용사는 고개를 기울이며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말했다.

"대부분의 용사들은 마왕을 처치하고 야호, 끝났다-한단 말이지-"

까지 말하고 용사는 생각했다. 이렇게 많이 말하다니 귀찮다고.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손으로 대충 허공에 휘적휘적해서 글씨를 적는 바디랭귀지를 실현해보려 했지만 물음표를 약 세개쯤 띄울 것 같은 마왕의 얼굴과 주변의 썩은 눈초리들을 보고 그만뒀다.

"어, 그래....그러니까-"

"어...죄송합니다 우리 용사님은 말하는 것도 귀찮아해서요..."

"아뇨, 괜찮아요..."

왠지 옆에 있던 리리가 고개 숙이며 사과를 하고 마왕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멍청한 전개였지만 딱히 아무도 뭐라 말하진 않았다.
지호는 배경이 되어 있었고. 다크나이트와 슬라임은 한숨지을 뿐이었다.

"마왕님...항상 말씀드리지만 제발 고개 좀 쉽게 숙이지 마세요 좀."

"어어? 어...하지만...그럼 예의가 없잖아?"

"마왕은 예의 안 차려도 됩니다!!"

다크나이트가 버럭 지적하자, 리리가 반대편에서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다크나이트는 손으로 눈 위를 지긋이 누르며 생각했다.
울지 마라. 이런 곳에서 울면 안 된다.

한참을 말이 없이 어떻게든 안 말하려고 궁리하듯이 보였던 용사는 드디어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는지 완전히 포기하고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어어, 그래. 난 평화니 러브 앤 피스니 전혀 신경쓰지 않아. 그런 것보다 귀찮지 않으면 상관없어."

"와 이 쓰레기."

용사는 리리의 썩소를 무시했다.

"만약 옆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전혀 상관없어."

"와 이거 진짜 쓰레기야."

"차라리 마왕이 나와서 세계를 없애버리면 나는 용사로서 할 일 다 했으니까 더 이상 다른 세계 뒷처리에 불려나가지 않아도 돼! 신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서 마왕 앞으로 텔레포트 할 필요도 없으니까!"

"세상에 맙소사 우리 용사님이 말을 무려 세줄 쯤 했어. 심지어 느낌표!"

태클에 반응해야 하는 건가 주장에 반응해야 하는 건가. 반응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왕은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채 일단 주장했다.

"하, 하지만 어쨌든 세계멸망하거나 싸우거나 안 할 거니까요!"

"세계멸망은 해."

"어째서요?!?!"

"야 잘 생각해 봐."

용사는 나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만약에 세계가 멸망하면, 더 이상 전쟁도 안 나고 싸움도 없을 테니까 결과적으로는 아주 평화로워지지 않겠어?"

"어...."

"인간이 사라지면 수백년 전후로 파괴된 자연도 돌아올거고. 생태계도 회복될 거고. 자원고갈이나 환경파괴의 문제는 싹 다 해결되겠지."

"그, 그건."

"야 아니 잠깐 그거 결국은 인간을 싹 다 죽이겠다는 말이잖아."

배경으로 있던 지호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하자 그제야 이상하게 납득하려던 마왕이 정신을 번쩍 차리고 급히 말했다.

"결국 전쟁이나 싸움이잖아요!"

"마왕님! 저 용사의 사고방식을 배우셔야 합니다!! 세계멸망하면 평화로워진다고요!"

"언제 그쪽으로 갔어요?!"

"그래요! 세계멸망하면 평화로워져요! 마왕님이 통치하게 되니까!"

눈치채지 못한 사이 슬라임과 다크나이트가 용사의 뒤에 서 있었다. 마왕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이번엔 리리가 마왕의 옆에 서 있었다.

"당신은 또 언제?!"

"자, 마왕님! 저 쓰레기같은 용사님에게 한방 먹여줘요!"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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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15 21:33 | 조회 : 1,675 목록
작가의 말
양야

그래요. 이거 사실 옛날에 끄적거렸던 만화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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