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 용사, 이름과 슬라임


"자리에 앉아라-"

선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늘 하는 말을 꺼냈다. 난리를 치며 교실을 헤집고 다니던 지호나 리리도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앉았다. 그도 느릿느릿 자리를 찾아 앉고는, 엎드려서 다시 잠을 청했다.
선생은 잠시 한소리 하려다가,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겼다.
일탈도 한두번 해야지 주의를 주지, 당연한 일이 되면 주의를 주는 것도 무의미할 뿐이다.

한사람 한사람, 차례대로 이름을 부르는 출석체크가 시작되었다.
리리의 이름에서 잠시 주춤했던 선생이었지만, 출석체크는 무난히 끝났다.

"오늘은 딱히 전달사항은 없지만, 특별히 문제 일으키지 말고. 오늘도 열심히 공부에 힘쓰도록-"

평소와 별다를 것도 없는 아침 조례시간의 평범한 멘트였다. 아이들 중 몇몇이 작게 하품을 하며 꾸벅꾸벅 졸았다.
그는 이미 자고 있었고, 리리는 손톱을 다듬으며 한창 딴짓 중이었고, 지호는 아침의 패배에 꽁해서는 창밖을 보며 이를 득득 갈고 있었다.
리리는 실실 웃으며 그런 지호에게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툭 던졌다.

"어차피 맨날 지면서 새삼스럽게-"

"...헹. 언젠가는 이겨 줄 거거든?"

"백만년 지나봐라 되나. 다시 태어나도 무리거든여-?"

".......너는 뭐냐, 그 내 속을 긁기 위해서 태어나기라도 했냐?"

"아니. 마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리리인데?"

상큼하게 양손에 브이를 만들어보이는 리리의 모습에 지호는 질렸다는 얼굴로 경직했다.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가로젓고는 지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머리가 아파 온다-"

"니 머리가 아픈 건 매일의 일이잖아 뭘 새삼스럽게."

"너 진짜 한대 때려도 됨?"

"안 됨."

지호가 가볍게 주먹을 날렸지만 리리 또한 가볍게 주먹을 피했다. 그것도 엄청 얄미운 표정을 하고. 지호는 한대 더 날렸지만 이번에도 절묘하게 허공만 휘저었다.
그런 지호에게 리리가 어딘지 상큼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니가 어차피 주먹 날려봤자 안 맞거든여? 이 둔탱이 근캐야."

"아이 씨 이게...!"

"거기! 조용히 -"

가만히 두다 못해 선생은 점점 시끄러워지는 그 둘에게 주의를 주려고 했다-가 갑자기 교실의 앞문이 쾅! 하고 열리는 바람에 놀라 말을 멈추었다.
리리나 지호도 그쪽을 돌아봤다.
문을 열고 서 있던 건 이 학교의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애였다.

머리카락이 한데 뭉친 불투명한 연녹색의 젤리 같고,
정수리에는 동그랗고 노란 볼 같은 것이 붙어 있는 더듬이가 나 있으며,
커다란 눈은 검은 가운데 십자 모양의 노란 별모양의 동공이 있는-그래 마치 어딘가의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슬라임의 눈동자를 빼다 박은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외계인인가?! 하고 패닉이 되어 있는 반 아이들과 지호, 리리에게 그 여자애는 가슴을 쭉 펴고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당당하고 나름 박력있게.

"나는 '마왕'님의 제 2부하인 슬라임!! 마왕님을 위해 용사, 무영의 목을 따러 왔다!!"

리리와 지호는 투닥거리던 것을 완전히 멈추고 당황한 채로 얼어붙었다.
이 세계에는 애초에 마왕이 존재할 리 없을 뿐더러,

"....세상에 맙소사 지금껏 한번도 안 부른 용사님의 이름을 마왕의 부하가 알고 있어...! 알고 있다구!"

"한번도 소개 안 했는데 알고 있어!!"

-그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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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02 02:12 | 조회 : 1,813 목록
작가의 말
양야

저 이 용사 이름 까먹고 있었어요(소근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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