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 용사, 소꿉친구와 전사


"자, 용사님! 학교에요. 학교!"

"....."

아무말도 없이 도로 집 쪽으로 돌아가려 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리리는 교실로 올라갔다. 주위의 시선이 아플 정도로 꽂혔지만 신경쓰는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주위도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완전히 짐짝 취급을 받으며 2층의 교실로 억지로 끌려가며 그는 한숨을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마법사 계열은 체력이 약한 게 아니던가.
대체 이 쪼그만 녀석은 어디서 힘이 이렇게 나서 나를 질질 끌고 다니는 걸까.

"에-엥, 그야 용사님을 끌고 다니기 위해 단련했으니까요!"

"......."

리리는 이제 그가 말하지 않아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엉망진창인 용사님과 어울린 시간이 얼만데! 그리고 모르면 텔레파시 마법을 살짜꿍 몰래 걸면 그만이지렁-"

".....막장 마법사 같으니."

"너무하네요. 용사님같은 막장 용사한테 마법이라도 걸 수 있는 게 어딘데요. 전 차원에 걸쳐 저를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구요?"

"없는 게 나아."

"그런 섭섭한 소리 마시고-용사님의, 최저 수업일수를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제 노력 좀 알아주시죠!"

리리는 아직도 일어날 생각이 없는 그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다른 쪽 손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하하하! 오늘은 내가 5분 더 빨랐다!"

평소와 다름없는 교실 풍경을 가로막듯이 리리의 앞에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외쳤다. 분명 이 갑작스러운 등장을 연출하기 위해 벽에 붙어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 빤히 티나는 모양이었다.
리리는 그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그 얼굴은."

"...어휴, 이 안습한 녀석. 아직도 중2병이야..."

"주, 중2병 아니거든?!!"

"지호야, 세간에선 너같은 놈을 보고 중2병이라고 하는 거란다."

"아니니까 그 따뜻한 시선 좀 그만둬!!"

버럭 소리치는 지호에게 그래도 여전히 따뜻한 시선을 주며 리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히 말해 주었다.

"그 어정쩡하게 뾰족뾰족하게 끝을 세운 만화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네가 미래에 이불킥을 할 게 내 눈엔 선하단다...불쌍한 녀석..."

"으아아아아아! 작작해!"

지호는 리리의 손을 있는 힘껏 내팽겨치며 외쳤다. 반 아이들은 잠시 그 큰 목소리에 놀라 그쪽을 돌아봤지만 곧 수근거리며 자신들만의 화제로 돌아갔다.
한가로이 하품을 하며 여전히 리리의 손에 잡혀 있는 그를 지호가 손가락으로 척 가리키며 호기롭게-라기보단 지금 당장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외쳤다.

"야! 용사! 이 원한! 오늘에야말로 너에게 한방 먹여주겠어!"

".....왜 나한테."

"그러게요-뺨 때린 건 전데 말이죠-"

"이이익! 시끄러!"

빽빽 소리지르는 지호의 목소리에 리리는 귀를 틀어막고 달갑잖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어차피 맨날 순살당할거면서-"

"오늘은 아니거든?! 확실히 방어력을 올리고 왔다 이거야!"

지호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배를 손으로 팡팡 치며 말했다. 그리고 리리는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보다 이 녀석은 꽤나 심각한 중2병이라는 것을.
전사 클래스인 녀석이면 적어도 폼 잡아서 자기한테 보호 마법이나 부탁하러 올 것이지 옷 속에 교과서 넣기는 무슨 꼴이란 말인가.

"용사님 어쩌죠. 저 녀석 생각 이상으로 노답이에요. 정상인 포지션인 녀석이어야 되는데 노답이 됐어요."

"....몰라 귀찮아."

"에이이! 당당한 것도 지금뿐이다! 각오하라고!"

지호가 힘껏 땅을 박차며 뛰어올라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얼굴에는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한대 먹이겠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있었다.
그리고,
주먹이 닿기는 커녕 그의 발에 걷어 차여 바닥을 굴렀다.
요란스럽게 책상과 의자가 넘어지고 지호는 영문을 모른 채 기침을 토해내며 엎드려 있었다.

리리가 허허로운 얼굴로 오직 동정심으로 가벼운 치유 마법을 베풀었다.

"거 봐, 순삭이잖아."

"으...."

엎드려 분을 삭이는 지호의 앞에서 언제 일어났는지 모를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매번, 몇년째. 이렇게 하루에 꼭 한번씩은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다.
그 끈기는 인정해줄만한 것이지만 이 정도가 되면 귀찮아지는 법.

그래도 내일도 학교에 오면 또 상대하게 될 것이다.

리리도, 지호도.
쓸데없이 붙여진 동료인데도 귀찮으면 세계건 차원이건 신경쓰지 않고 먼저 부수고 보는 그가 그저 이렇게 휘둘려 주는 건

"오늘도 힘냈습니다, 지호 군. 너의 희생은 잊지 않겠어...!"

"야, 리리 너...나 아직 안 죽었거든?!"

"할 수 없지, 비장의 독 마법으로 살짝 죽여 볼까?"

"뭐, 뭐, 뭐, 뭐라고?!! 야 저리가! 오지 마!!!"

"아직 다 안 나았어! 어딜 가!!"

그나마 남아있는 소꿉친구의 정이라는 것 때문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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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01 01:36 | 조회 : 1,797 목록
작가의 말
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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