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용사, 아침과 마법사


본래 생활하고 있는, 태어난 세계의 시간으로 따져 계산해 하룻밤을 꼬박 새워버리고 말았다. 한 건만 해치우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세계라는 것은 '이 때다!'라는 듯이 그를 몰아세워서 몇번이고 더 사건을 들이밀었다.

대체로 이 용사에게 오는 '사건'은 '버려져도 상관없을 만큼 훼손된 세계'에 한정되어 있다. 그야말로 최악의 세계에만 불려가는 것이다. 차라리 지금 당장 멸망시켜버리는 것이 낫다-그 정도의 세계에만.
하지만 아무리 그런 세계에만 불려진다고 해도 사태의 파악은 고사하고 불려지자마자 세계를 통째로 계속 박살내는 용사란 건 좀 어떨까.
결국 그 짜증과 졸음에 겨운 만행 겸 협박을 보다못해 그는 방으로 강제송환당했다.
겨우, 아침이 되어서야.

"아아...."

그는 침대에 쓰러지듯이 엎드려 누웠다.
이 침대에서 자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순삭으로 부순 세계가 적어도 백은 넘어가며 그 세계에 살던 나쁜 이든 착한 이든 평등하게 쓸어버렸다는 것은 이미 중요치 않았다.
그런 건 옛날부터 그다지 중요치 않은 문제였다.
지금 당장 이 침대 위에서 수면을 취할 수 있다는 평온함과 노곤함만이 그에게 전부였다.

더 이상은 말하기도 귀찮아졌으므로 그는 속으로 말했다.
-애초에 이런 귀차니즘 녀석에게 뭔가 맡기는 세계 잘못이다.

그는 푹신하니 착 감겨드는 이불을 덮고 배게에 얼굴을 묻고, 더 없이 편안함을 느끼며 학교고 뭐고 잠들려 했다.
더 이상의 방해는 없겠지, 그렇게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고 또 다시 평소처럼 귀차니즘을 만끽하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다.
아침의 아직 차가운 햇살이 창문 한가득 들어차 있는 것도 무시하고 그러려고 했다.


와장창!
-하고 창문을 깨부수며 빗자루를 탄 트윈테일의 소녀가 그의 방에 돌진해 들어오며 외쳤다.

"용사님!! 아침이에요오오오오오-!!!"

아침의 정적과, 이불의 포근함과, 밤새 쌓인 피로에 취해 쉬려던 딱 좋은 행복하게 노근한 찰나에 떨어진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아침 모닝콜이었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쓴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피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귀차니스트는 활동적인 인간의 행동력을 대체로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소녀는 흠, 하며 콧김을 내뿜고는 기합을 넣어 그의 이불을 양 손으로 힘껏 당겨 빼앗았다. 한순간에 보금자리를 빼앗겨 쌓인 피로와 깨진 정적에 인상을 찌푸린 채 누워 있는 그에게, 소녀는 활기차게 말했다.

"용사님! 리리에요! 누군지 알아 보시는 거죠?"

"....알람..."

"네네, 용사님의 보람찬 청춘을 책임지는 동료이자 부하인 백마법사 겸 모닝콜인 리리에요. 리리."

"청춘 필요 없으니까 잘래."

"안 돼요. 학교 가야죠."

"잘 거야."

소녀-리리는 잠시 고민하듯 침묵하다가, 어딘지 멍한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꼭 끌어안고는 말했다.

"이불 안 돌려드릴 거에요."

"......"

"분명 이불을 새로 사러 가기 귀찮은 용사님은 이제부터 이불없이 침대 위에서 잠을 자게 되겠죠. 밤마다, 혹은 주말, 혹은 휴식시간에 침대 위를 뒹굴거리는데 뭔가 없는 이 허전함, 그 잃어버린 포근함...!"

"........"

"하지만 잃어버린 이불은 돌아오지 않고...용사님은 언제까지고 2퍼센트 모자란 것 같은 미묘한 휴식 밖에 취할 수 없이..."

점점 박차를 가해가는 묘한 협박에 그는 배게로 귀를 틀어막고 잠시 저항했지만.
결국 짐짝처럼 교복을 입은 채 리리의 빗자루에 실려갔다.
빗자루에 실린 채 들리는 리리의 묘하게 들뜬 흥얼거리는 콧노래에 그는 하품을 내쉬며 생각했다.

사실 아침형 인간이 최강인게 아닐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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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31 00:49 | 조회 : 2,061 목록
작가의 말
양야

아침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의 천적입니다. 으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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