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 용사, 마왕 등장


여전히 소란스러운 도중에 왠지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저어기-죄송한데요."

슬라임이 기세 좋게 열어젖힌 문에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나타낸, 긴 보라색 머리에 왠 작은 검은 박쥐 날개 같은 것이 나 있는 소녀는 그 자주색의 큰 눈동자를 헤매며 주위를 살폈다.
명백하게, 또 '나 인간 아닙니다'의 꼴이었다.

"여기 머리 이상한 여자애랑 눈이 이상한 남자애 하나 오지 않았나요?"

이미 반에 다른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지호와 리리는 기세 좋게 슬라임 젤리로 질척질척해져 있는 반의 한쪽. 정확히 다크나이트와 슬라임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그에 슬라임과 다크나이트 둘다 상당히 당황한 표정으로 반박하듯이 크게 외쳐댔다.

"어?! 나 머리 이상한 여자애란 인식인거야?! 이래뵈도 머리는 꽤 좋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마왕님 너무해!!"

"마왕님?! 누, 눈이 이상한 건 언데드라 어쩔 수 없습니다!!"

둘이 얼떨떨하게 반박한 말에 '마왕님'이란 말이 있었지만 리리는 거의 흘려들었다.
이 몬스터들이 '이상한' 거 아니면 뭐라고 정상이라고 난리야.

"야 너! 머리가 젤리잖아!! 그리고 넌 어차피 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이 괴짜야! 있어도 이상해! 세상 어떤 몬스터가 미쳤다고 지 레벨 다 날려먹으면서 그딴 젤리를 만들어!!"

"야 마법사! 너도 머리 이상하거든?! 도대체 머리를 어떻게 묶었길래 그렇게 얇은 더듬이처럼 나오는건데?! 너 바른대로 말해봐 머리숱 적지?! 그래서 쓸데없이 기르는 거지?!"

"아니거든 애초에 머리카락도 없는 놈아!!"

"년이거든 멍청아! 마왕님 쟤가 저보고 멍청이라고 놀려요!!"

"멍청이라고 말한 건 너잖"

어? 잠깐 뭐라고?

순간 말을 잃은 리리에게서 쌩하니 도망친 슬라임이 분명히 '마왕님'이라고 부르며 도망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방금 들어온 소녀였다. 작은 키를 이용해 소녀의 뒤에 쏙 숨은 슬라임은 리리를 적개심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면서 떼쓰는 어린애처럼 소녀-아니, 마왕에게 말했다.

"마왕님, 마왕님. 저 꼬맹이가 저 괴롭혀요! 혼내줘요!"

"아니...저기...슬라임이랑 다크나이트가 먼저 쳐들어간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마왕님 너무해?! 우리가 먼저 잘못했을 거라고 단언했어!"

"...아니, 너네가 먼저 내 목 치러 온거 맞잖아."

슬라임이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고 있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었는지 지금껏 가만히 관전하던 용사가 한마디 했다.
지호는 이미 없었다. 이미 존재감을 지우고 쳐박혀 있기로 결심했다. 그저 어딘가의 배경이 되기로 다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을 배짱은 없다. 막장이다.

이를테면 아침드라마에서 시어머니와 기 센 아내가 대치하고 있는 사이에 끼인 남편같은 것이다.

"어...어, 그러니까. 어..."

마왕은 한참이나 큰 눈을 굴리면서 시선을 헤매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그, 그, 정말, 저기 죄송합니다!"

"자, 잠깐만요 마왕님!"

"용사에게 고개를 숙이시다니!"

슬라임과 다크나이트의 당황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마왕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용사를 똑바로 보며 작게 말했다.
극도의 긴장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쑥스러움.

무슨 고백이라도 하려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저기...용사님."

작은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용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마왕은 조금 더 목소리를 키웠다. 점점 얼굴이 새빨개져갔다.

아무리 봐도 고백하는 소녀였다.

"저, 저기, 그러니까요."

".....?"

지호는 배경 속에서 요즘 유행하는 장르를 뒤적이며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마왕은 히로인인게 대세라던가.

"저는 비록 마왕이지만 절대 싸우러 온 게 아니거든요?! 우리 평화적으로! 말로 해결하죠! 말로! 러브 앤 피스!가 대세라구요!"

"......귀찮아."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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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12 15:30 | 조회 : 1,853 목록
작가의 말
양야

오랜만이에오. 전편들에 있는 오타들을 수정할 엄두가 안 나요....그것보다 마왕님 가슴 크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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