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 용사, 즉석 직판장


오늘의 판매상품.
슬라임 필살 오의 [맛나는 젤리 어택]용 젤리.

원래 레벨 100이었던 슬라임이 100년의 시간과 자신의 레벨, 모든 스킬을 희생하는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 엄청난 젤리.

1000가지 종류의 맛을 재현할 수 있으며, 구성성분은 모두 슬라임의 신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매우 무해하고 안전하다.
무엇보다 칼로리가 0!
거기다 식사를 대신할 정도로 포만감을 채워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자, 맛도 좋아, 배도 불러! 다이어트에 직방이라구!"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의 직판장으로 자리가 바뀐 것 같았다. 지호와 리리는 이미 생각하기를 포기했고, 원래부터 마이페이스인 용사는 적이었을 다크나이트와 함께 태클조차 없이 젤리나 시식하고 있었다.
간만에 자신의 젤리를 선보일 수 있게 된 슬라임은 한없이 텐션이 올라가고 있었다.

"흐헹! 어때! 대단하지!"

기껏 텐션이 올랐건만 상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막 파인애플맛 젤리를 삼킨 다크나이트가 한숨과 함께 살짝 지적하는 말을 꺼냈다.

"뭐, 살짝 아쉬운 점은 영양가가 그닥 없다는 점이지요."

"그, 그걸 말하면 안 되잖아! 거기까진 아직 개발중이란 말야!"

"...이걸 더 개발시킬만한 레벨은 이미 없지 않습니까?"

"....ㅇㅍㅇ...나에게 이모티콘을 쓰게 하다니..."

슬라임이 그야말로 이모티콘 같은 얼굴을 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크나이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분을 참지 못한 슬라임은 바닥에서 마구 뒹굴었다.

"지금부터 올리면 되잖아! 던전 어디야! 던전!"

"변변한 공격기술마저 잃은 당신이 던전에 가서 어쩌려는 겁니까."

정곡을 찌른 말에 슬라임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를 까득까득 갈았다.

"으갸아-!! 몸으로 덮어서 익사시키면 돼!"

"그 전에 당신이 당하실 텐데요. 몸으로 덮은 순간에. 안쪽에서."

"미, 미네랄은 풍부하다고! 미네랄은!"

슬라임이 마구 땅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반론했지만 결국 미네랄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다크나이트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저야 언데드라 영양가 따위 어찌되든 좋지만요."

"뭐야, 식사 대용으로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용사가 뒤에서 살짝 아쉽다는 투로 더했다. 평소 뭔가 먹는것조차 귀찮은 그에게 있어서 이 젤리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그냥 삼켜도 아무 문제 없고, 체하지도 않고, 배부르고, 맛도 좋다. 특히 귀찮게 씹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순간 리리가 뒤에서 눈을 번득였다.

"새, 생각해보니까 먹는 걸 귀찮아하는 용사님한테 먹이기에 딱이잖아!"

순간 마왕파로 직업 전환해서 같이 젤리나 연구할까-하는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 리리에게 지호가 고개를 저으며 안쓰럽게 말했다.

"분명 조만간 삼키는 것 자체를 귀찮아할걸."

".....나한테 표정 이모티콘을 쓰게 하지 마라..."

리리가 부들부들 떨었다. 최근 숨쉬는 것마저 귀찮다고 종종 숨을 멈추고 있는 용사의 꼴을 떠올리면 지호의 말은 예상이 아니라 이미 확신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밥 씹어먹는게 귀찮다고 그냥 삼켜버리고는 소화제 먹고, 굶고, 물만 마시고.
지난날의 이야기를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나는 리리의 어깨를 지호가 가만히 토닥였다.

"에이씨 니가 뭘 보탰다고 위로질이야."

"-아나 위로해도 뭐래!"

순간 리리가 명치에 꽂아넣으려는 주먹을 재빨리 피하며 지호는 투덜거렸다. 그 말에 곧바로 리리가 눈을 번득였다.

"뭐어?! 니가 위로할 자격이나 있냐! 이 잉여야! 물고기방 그만가고 주말엔 집 청소정돈 도와라!"

"시, 싫어! 영혼의 한타가 기다리고 있거든?! 내가 가야 되거든?!"

"영혼의 한타 좋아하시네 니 교복정도는 빨란 말야! 그거 며칠째야! 바른대로 불어!"

"니가 내 엄마냐!!"

리리와 지호가 평소의 살벌한 투닥거림을 시작했다.
한켠에선 여전히 슬라임은 바닥을 뒹굴며 땡깡을 부리고 있고, 다크나이트는 그런 슬라임을 달래고 있고.

그 사이에서 혼자 느긋하게 앉아 젤리를 우물거리던 용사는 생각했다.
뭔가 목을 가져간다느니 적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어디로 간 건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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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0-13 01:32 | 조회 : 2,131 목록
작가의 말
양야

후에엥, 원래라면 마왕님 등장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네요-마왕님 삽화는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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