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노예를 소개합니다(3)

“그러니까, 이틀 동안, 전 재산을 탕진했다는 말이네? 그리고 목숨 걸고 돌아온 나를 죄인취급 했고? 아니, 이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너희들이 그러고도 노예냐!!”

팀의 분노에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물론 돈을 쓰지 않고 이틀의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그러나 팀의 계산에 의하면 족히 한 달은 먹고 놀아도 지낼 수 있는 금액을 남겨 두었다. 그런데 그 돈을 이틀 만에 탕진하다니! 발끝부터 올라오는 짜증이, 온몸의 신경을 자극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벌겋게 달아올랐던 얼굴도 금방 사그라졌다.

팀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녀들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문득 설리민과 눈이 마주쳤다.

설리민의 하얗고 고운 백색의 피부가 엘프를 연상케 했다. 매일같이 쌀뜬물로 세안을 하면 가능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하얗고 투명한 빛을 띠었다. 짙푸른 눈동자는 바다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옅은 쌍꺼풀은 미묘한 매력을 풍기며 시선을 빼앗는다. 무엇보다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굴곡진 몸매가 무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독 타이트한 드레스를 즐겨 입는 걸로 보아, 확실히 몸매에 자신이 있는 듯하다.

시선을 느낀 설리민이 머쓱한 듯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푸른 머릿결을 쓸며 매만진다. 문득, 넋을 놓고 설리민을 보고 있자니, 심술이 난 셀린이 팀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두드린다.

“오빠, 그 눈빛 좀 어떻게 안돼요? 말버릇은, 말을 줄이면 그나마 낫지 눈은 평생 달고 다녀야 하는데 팀은 어쩌면 좋을까? 눈깔을 떠버려야 되나?”

“거, 거 조막보다 작은 주둥이로 못하는 말이 없네.”

팀이 멋쩍은 듯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재미가 들린 셀린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한쪽 입 꼬리를 가볍게 올린다.

“오빠, 만약 둘 중에 결혼해야 한다면, 누구랑 할 거야?”

“뭐, 뭐? 너랑 설리민이랑? 으, 내가 왜 그래야 돼?”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설리민과, 셀린이 분노한 듯 팀의 양쪽 다리를 한쪽씩 걷어찼다. 그의 다리에서 퍽 하는 불길한 소리가 터진다. 동시에 바닥에 누운 팀은 때굴때굴 구르며, 하극상이 일어났다! 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곧이어 셀린이 기다란 힐을 신고 누워있는 팀의 얼굴 앞에 멈춰 섰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누가 좋냐고”

너라고 안하면 죽일 거잖아. 라고 퉁명스레 투덜거리는 팀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는 셀린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빙그레 미소 짓는다.

팀은 선택하지 않으면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셀린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셀린도 미녀 중에 절세미녀에 속한다. 자연스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두 눈동자 속에는 루비를 녹여 만든 붉은 빛의 보석이 반짝인다. 관찰하는 팀을 보던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더 잘 보여주려는 듯 생각보다 큰 키로 팀 앞에 밀착했다.

커피색 피부에서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170cm가 조금 넘는 그녀의 키는 모델을 연상케 했다. 물론 셀린도 설리민과 같이 굴곡진 몸매의 소유자였다. 구태여 따지자면, 셀린 쪽이 성숙한 매력과 패셔너블한 스타일링을 갖고 있다는 것? 셀린이 머리를 쓸어 넘긴다. 그러자 먹물로 물들인 것 같은 진한 흑발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확실히 매력적이고 강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녀의 단점은, 늘 미간에 힘을 주고 있어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는 인상에 있었다. 더욱이 짧은 머리를 유독 고집하는 탓에 조금만 길면 늘 잘라버리려 들었다. 다행히도 노예규정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유지해야한다는 특이한 조항이 있어 커트라인을 준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때려죽여도 너라고는 못하겠다. 나보다 더 남자다운 여자라니 좀 그래.”

이를 바득바득 갈던 셀린이 튀어 올랐다. 그러나 온몸을 날려 진정시키려는 설리민에 의해 저지당한다. 김이 샌 그녀가 힘을 풀며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셀린은 기분이 상한 탓에 고개를 까딱인다. 그러자 ‘두둑’ 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뻐근했던 것인지 스스로 목 주변을 주무르던 셀린이 바닥에 대뜸 침을 퉤 뱉어냈다. 전생이 있었다면 깡패였지 않을까? 문득, 왕녀가 말한 전생 이야기가 신경 쓰였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설리민이 더 예쁘지. 인정할게”

“아니, 넌 미모가 문제가 아니야 얼굴만 보면 왕족들도 침 흘리면서 결혼하자 할 걸?”

“정말?”

“아니.”

침묵이 흐르는 듯 했다. 이윽고 정적을 깬 셀린이 하이힐을 들며 몽둥이 삼아 팀의 볼기짝을 두들겼다. 팀은 아물지 않은 상처 탓에 작은 두들김에도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에 신음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지 못 할 푸닥거리로 시간을 보낸 이들은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종전을 선언했다.

“오빠, 그만하자 오늘 저녁을 못 먹었더니 몸에 힘이 없다.”

“그, 그래 나는 3일째 굶고 있어.”

기묘한 하극상을 연출하던 둘이, 한동안의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이윽고 설리민이 답답한 듯 적막을 깼다.

“그러고 보니, 왕녀는 팀에게 뭘 원하는 걸까? 단순히 사찰이라는 명분만 두고 보기에는 이상한데,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믿기 힘든 전생이야기를 한다는 건 무언가에 홀린 게 아닐까? 왜, 그런 이야기 있잖아 돈 많고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은 대게 술이나, 마약 같은 약물에 중독된다는 말, 책에서 읽어본 것 같아.”

설리민의 시퍼런 눈동자가 이슬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쩐지 마차 한편에 괴상한 제목의 책들이 쌓여있더니만, 무슨 장르의 소설을 읽은 것일까, 불필요한 소비력에, 짠돌이 팀이 입을 삐죽이며 다물었다.

설리민은 답해주지 않는 팀이 얄미웠는지 보채듯 등을 두들겼다. 그러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좀비마냥 몸을 축 늘어트렸다.

“아 몰라- 관심 없어, 돈이 썩어나니까 하루 종일, 할일 없이 망상이나 하고 앉아 있는 거지 설리민, 너는 그러면 안 된다. 내일이라도 당장 책을 반납하도록!”

강경한 듯 자신의 의도를 내비치는 팀의 행동이 아니꼬웠던 설리민은 넝마가 되어 버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팀의 바지주머니에서 돈뭉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음흉한 미소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팀이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윽고 눈보다 빠른 팀의 손이 설리민이 쥐고 있던 돈뭉치를 갈취했다.

“주, 죽을라고. 이건 말이야 내가 빈사상태가 되어가며 벌어온 돈이란 말입니다. 앞으로 지갑을 맡기는 일은 일절 없을 겁니다. 두 사람, 다 그렇게 알도록! 대신, 오늘은 한잔 걸칩시다!”

취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괴로운 통증에 시달리던 팀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머금고 손을 까닥이며 잔을 비워내는 시늉을 했다. 물론 지금 술을 마신다면 다음날의 고통이 배가 되겠지만, 그런 것쯤 아무려면 어떻겠나? 지금이 너무 괴로운데.

그렇게 그들은, 마구간에서 여관이라는 직분 상승을 수여받았다. 덕분에 잔뜩 사온 술과 안줏거리로 편하고 안락한 유흥을 즐길 수 있었다.

1
이번 화 신고 2018-10-28 13:48 | 조회 : 1,637 목록
작가의 말
nic5579101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재할게요 ㅎㅎ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