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노예를 소개합니다(4)

“그언배!!”

반쯤은 정신이 나가버린 팀이 쉬어버린 목소리를 짜내듯 외쳤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설리민과 셀린은 동정심에 잔을 들었다. 물론 그녀들은 팀보다 술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혼잣말이나 헛소리를 해대는 그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 왕녀 어떻게 생각해?”

셀린이 기가 찬다는 듯,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설리민은 고개를 저으며, 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설리민의 대답이 셀린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댔다. 고작 돈 많고 핏줄 좋은 여자가, 자신들의 고용주인 팀을 이틀이나 감금하고 마사지하듯 두들겼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팀과 셀린은 허울 없어 보여도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사실 사장과 직원 정도인데, 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유는 첫 만남에 있었다.

셀린은 한때 유명한 용병출신의 검사였다. 그런 그녀가 노예로 전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칸포크라는 악덕 백작에게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되었는데, 그 빚을 팀이 탕감해준 사건은 아르테국가에서는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사실 빚을 진 이유도 터무니없는 의뢰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사건도 꽤 억지스러웠다.

하루 만에 고블린의 귀 6천 짝을 혼자서 잘라올 것, 저급 몬스터의 귀쯤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양이 문제가 되었다. 보통 던전지역에 출몰하는 고블린의 양은 100마리 안팎이다. 게다가 마을 근처의 필드주변에는 약 500마리 정도가 서식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수급이 불가능한 것.

결론은 하루에 십여 곳의 마을을 들려야 하는 상황, 말도 안 되는 기동력이 필요했다. 적토마 급의 전설적인 말을 몰며 누비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이 마법을 사용하는 고위 클래스의 마법사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덕분에 1시간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포기하려던 찰나, 팀이 나타나 구원해주었다.

워낙에 떠들썩했던 사건인지라, 마을에 머물고 있었던 팀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자신이 10년 동안이나 쟁여둔 재산을 탕진하며 밑천을 제공한다. 하루 동안 다섯 여 곳의 마을을 돌며 고블린 귀 따위를 구매해, 5500마리분의 귀를 모았다.

물론 그보다 많은 사례금을 받게 된 팀은, 두 배 이상의 자본금을 얻어내면서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 재산으로 그녀를 노예로 고용하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재산의 반을 보태주었다.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꿈을, 고작 하루 만에 이뤄줌과 동시에 그녀를 노예로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짜증이 났다. 자신의 무능함과 뜬금없는 신분하락, 그러나 그녀의 꿈을 이루는데 있어 용병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평생을 일한다 해도 불가능한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을 감안하고 지내오던 근 1년 동안 그에 대한 시선과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이었다.

이후 학대를 받고 있던 설리민을 구출하는 팀의 모습에, 좋은 녀석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문제는, 설리민을 구조하고 마차를 구입하는데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된 것, 후에는 빈곤과 싸우며 전전긍긍하며 함께하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자신의 몸값이 몸값인지라 거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으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럼에도 팀은 불평 없이(?) 늘 보살펴줬던 것 이런 점들이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었다.

그런 탓인지, 자신의 상인이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이 거슬리고 화가 났다. 처음 이틀간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는, 별일이야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망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튼튼한 몸이 아니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갈가리 찢겨진 옷과 퉁퉁 부어버린 눈이 얼마나 많은 역경과 시련을 경험했는지를 예상케 했다. 평소, 팀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 함은 장난스런 눈웃음에 있었는데, 지금은 부어오른 눈 때문인지 괜스레 인상을 쓰는 착각마저 든다.

술에 취한, 셀린은 왕녀를 왕년이라며 한동안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윽고 설리민이 그녀를 진정 시키며 하루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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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0-29 01:48 | 조회 : 1,617 목록
작가의 말
nic55791011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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