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회의가 파하고, 먼저 평원왕이 평강을 데리고 나간 후, 다음으로 국상이 여러 신료의 인사를 받으며 편전을 나왔다. 편전 바깥에는 자신의 아들인 소랑이 나무에 기대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랑아, 가자.”

국상이 아들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으나 소랑은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국상은 소랑의 눈에 푸른 하늘이 가득 담긴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소랑아!”

국상이 더 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부르자 소랑이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악! 아버지, 오셨습니까.”

소랑이 아픈 엉덩이에서 흙을 털며 일어셨다.

“무언 생각을 하기에 넋을 놓고 있느냐. 퇴궐할 터이니 따라 오거라.”

국상이 말을 끝내고 성큼성큼 걸어가자 소랑이 급히 따랐다. 소랑은 국상의 큰 보폭에 속도를 맞추느라 거의 뛰듯이 걸어야 했다.

“참, 내 너를 공주와 함께 있으라 하였는데 갑자기 공주가 울며 편전에 들어오려 하였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그 말을 들은 소랑은 작게 낄낄대며 웃었다. 아까 평강이 장군의 호령소리라고 묻힐 만큼 우렁찬 소리로 울던 것이 생각난 탓이었다.

“아버지께서 아셔야 할 만치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소랑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피식피식 웃었다. 계속 앞만 보고 걷던 국상이 소랑을 힐끗 보고는 자못 정색을 하며 물었다.

“어허, 그 말 잘 듣기로 유명하던 공주가 갑자기 회의 중인 편전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데,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대단한지 아니한지는 내 판단이다. 어서 말하여라.”

그러자 소랑이 머리를 긁적이며 주눅들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별 것 아니옵니다. 공주께서 폐하께 관심 받고 싶어 하시기에 약간의 조언을 드렸을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공주보고 울라 하였단 말이냐.”

“예,”

실없는 대답에 국상이 실소를 터뜨렸다.

“하. 침, 울기라니, 실로 상책인지 하책인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일단은 목적을 이룬 셈이니 성공이라 할 수도 있겠다.”

국상이 칭찬의 의도로 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소랑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성큼성큼 걸어가는 국상을 쫓아 걸음을 재게 놀렸다. 그렇게 대궐 문을 나서다 소랑이 본 하늘은 구름 없이 맑았다.

‘아까는 구름이 꽤 많았는데, 다들 공주님 울음소리에 도망하였구나. 하하, 아무리 구름이라도 그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당할 수 없었나 보군. 만약 공주께서 남자라면 훌륭한 장군이 되었을 거야. 그러면 내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겠지?’

국상은 대궐 문 밖에서 대기하던 말에 올라탔지만 소랑은 여전히 대궐 문턱에서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보다 못한 국상이 다시 한 번 불러야 했다.

“소랑아!”

“앗! 예! 갑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소랑이 자신의 망아지를 타자 일행이 출발했다. 소랑이 생각에 잠겼던 자리에는 여전히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머물러 있었다.




평강은 자신의 방에서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헤실헤실 웃었다.

“공주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렇게 헤프게 웃는 것은 남들이 이상하게 보는 행동이옵니다.”

평강의 시녀 옥주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평강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쳇, 아까 상부 고씨 차남하고 대화할 때는 내가 아무리 웃어도 이상하게 아니 보더라.”

“공주님, 그것은 서로 대화할 적의 이야기이고, 지금처럼 허공을 보며 웃는 것은 실로 무섭습니다.”

옥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고, 평강은 방금 전 자신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깨닫고 머쓱해졌다.

“옥주, 혹시, 바보 온달이라는 자를 알아?”

평강은 아까부터 신경 쓰던 것을 물었다.

‘앞에 ’바보‘ 라는 수식어다 붙었다는 뜻은 온달이 온전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인데…….’

편전 앞에서 울었을 때도, 그 후 야단맞을 때도 평원왕은 자꾸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말했고, 주변 궁인들도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며 웃는 것을 보았다.

“아니, 공주님, 설마 그렇게 유명한 ‘바보온달’을 모르셔요? 우와…….”

옥주가 놀라 뒤로 물러나기까지 하며 물었다. 그런 과장스러운 반응에 평강도 같이 놀랐다.

“그렇게 유명해?”

“예! 적어도 평양 안에 사는 자는 다 알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공주님 공부만 하는 것은 알아주어야 한다니까. 흠, 한마디로 하면 거지입니다, 거지.”

“거지? 그러면 아버님께서 나보고 거지한테 시집가라는 말씀하셨다는 소리야?”

“예. 온달이 누군지 모르셨군요?”

평강은 벌떡 일어나 씩씩대었고 옥주는 그 모습을 보며 낄낄대며 웃었다.

“아! 정말, 웃지 마!”

평강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쿵, 쿵, 자그마한 발이 내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그런데, 일개 거지인 온달이 왜 유명해?”

평강이 발 구르기를 멈추고 물었다.

“그것이, 온달이 창을 잘한답니다. 겨우 열 살 조금 넘었을까한 녀석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하니 유명할 수밖에요. 노래가 가끔 궁 안으로 넘어오기도 하는데, 정말 기막히게 잘하더군요.”

“그럼, 왜 이름 앞에 바보가 붙었어?”

“애가 좀 모자라요. 언제 귀한 약초를 발견했는데, 사겠다는 사람한테 헐값으로 팔아넘기고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알고도 웃으면서 넘겼다나요? 게다가 머리카락으로 눈을 싹 가리고 댕겨서 각다귀(남의 것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동냥그릇에서 밥을 훔쳐가도 모르고, 알아도 웃기만 하고. 안 씻어서 냄새도 장난이 아니랍니다. 그럴 것이면 머리카락을 짧게 깎는 편이 나을 텐데, 남들이 뭐라 그래도 절대 깎지 않는답니다.”

옥주가 한숨을 쉬며 빠르게 말을 뱉었다. 어지간히도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착하기는 한가 봐요. 맹인 애미를 혼자 부양한다는 것을 보면.”

평강은 온달에게 약간의 측은함을 느꼈다. 그리곤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잊고 온달이라는 사람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긴 머리로 눈을 가리고, 헤실헤실 잘 웃고, 더럽고, 선한 사람. 평강이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방문 밖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님, 막내왕자께서 오셨사옵니다.”

“야, 이게 누구야. 바보 온달과 혼인할 울보 공주 아니신가.”

평강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들어온 막내왕자 고건무는 대뜸 평강을 보자마자 놀리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평강이 그리던 온달의 모습이 와장창 깨지자 평강이 건무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하, 하, 하, 오라버니께서 무슨 일로 납시셨는지요?”

“뭐긴 뭐야, 아버님께서 나보고 너를 좀 놀아주라고 하셨지.”

“아, 그래요? 다른 오라버님께선 다들 바쁘신데 오라버니 혼자만 한가하셨군요?”

열 받은 평강이 건무에게 다가가 발을 콱 밟았다.

“으아악! 요게, 감히 오라버니 발을 밟아?”

건무가 들어오자 방구석으로 자리를 피해 있던 옥주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흥! 어디 오라버니라고 부를 구석이 있어야지.”

“이게 진짜!”

‘휴, 정말 두 분 만나기만 하면 싸우시네.’

밖에서 둘의 말싸움을 가만히 듣던 옥주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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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20 09:33 | 조회 : 977 목록
작가의 말
nic4460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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