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황녀,에디스(6)-황제 시점 1

오늘은 딸 아이의 12번째 생일이었다.
보통 부모였다면 아이의 방으로 달려가 웃으며 축하인사를 전해줬을 테지만 황제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평상시처럼 중식까지 마친 후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으니 재상이 들어왔다.
재상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폐하, 오늘 황녀 전하의 생신이신데 여기서 일을 보고 계시면 어찌합니까?"

질책하는 듯한 말투에도 황제의 시선은 서류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사실 황제는 서류를 보고는 있지만 그 글자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걸 알 도리가 없는 재상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허면 가시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폐하께서 가시지 않는다면 황녀 전하는 그 누구에게 축하를 받는단 말입니까."

황제에게 인정받지 못한 황족은 귀족들의 구설수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황녀를 무시하고 모욕하고 체벌을 한다고 해도 황제가 그의 편이 되지 않는다면 무거운 처벌을 내릴 수 없었다.
본디 귀족 사회에선 아버지의 인정이 중요한 법이었다.

"상관없다. 어차피.그 누가 진심으로 축하해주겠는가."

그 망나니 황녀를 진심으로 축하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비인 자신도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는데 세상 그 누가 황녀를 축하해줄까?

"그래도 황녀님께서 무척 서운해하실 겁니다."

서운이란 말에 황제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내 딸아이가 서운해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이가 서운해 한다.
황제의 마음이 흔들렸지만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에디스가 장난을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그것이 아비인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더라도.

"저렇게 황녀답지 못해서야 원......차라리 딸 하나 없는 편이 더 나았다. 이렇게 속을 썩일 바에야......!"

홧김에 말한 거였다.
딸 하나 없는 게 더 나았다고 말하다니, 이 얼마나 못난 아비란 말인가.
복도에서 구두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황궁에서 구두를 신고 저렇게 달리는 사람은 에디스밖에 없다.
황제는 빠르게 문을 열고 에디스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그는 말문이 막혔다.
바닥에 귀족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장미꽃 머리 핀이 놓여있었다.
살포시 놓여있는 게 아니라 달리다가 떨어진 것처럼 아무렇게나 던저놓아져 있었다.
황제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그 아이가 들은 것일까?
제발 그 아이가 듣지 못했길 바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저물어갔다.
딸 아이의 생일 파티가 열리기까지 이제 겨우 30분 남았다.
황제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까의 불안감 때문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복도에서 황녀의 유모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오고 있었다.

"폐...폐하!"
"그대는 황녀의 유모가 아닌가?"
"예...큰...큰일났습니다. 황녀님...황녀님께서......!"
"또 황녀인가? 그래. 이번엔 또 무슨 사고지?"

유모는 고개를 저었다.

"장난이 아닙니다! 황후 궁에 불이 났습니다! 그 곳에 황녀님께서 계십니다!"

황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화재라니!
검은 연기가 하늘을 메꾸는 것을 보였다.
황제는 속으로 자신의 딸 이름을 불렀다.
황후 궁은 점점 불길에 휩싸여 불타오르고 있었다.
황제는 문을 열었다.
잔해들 사이에서 울고 있는 에디스의 모습에 황제는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에디스의 품에 소중히 안겨있는 황후의 초상화를 보고 눈을 번뜩였다.

왜...그걸! 그 것때문에 마법을 쓸 수가 없지 않느냐!

마법은 손으로 해야했다.
하지만 에디스의 두 손은 초상화로 가득 차 움직일 손이 없었다.
그렇다고 황제가 마법을 쓰기에는 에디스가 잔해들로 인해 다칠 위험이 있었다.

"에디스, 그 초상화를 넘기고 빨리 나오거라."

그래.일단 초상화부터 버리면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도 있지 않나?
극한의 공포에 몰렸을 때, 각성하는 경우가.
황재는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황족은 성력이 없는 신관이나 성녀와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황제인 자신이 애지중지한다고 하더라도 작은 괴롭힘과 따돌림으로부터 그녀를 구할 수는 없었다.
이건 다 에디스를 위해서이다,라고 되새기며 황제는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그대로 죽고 싶다면 가만히 있어라. 거기서 죽는다면 넌 내 딸이 아니다. 유리시아 제국의 수치다."

에디스는 수치가 아니었다.
유리카와 자신의 사이에서 나온 소중한 딸 아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평생 후회하게 되더라도.
황제는 에디스가 각성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결과는 황제의 예상과는 달리, 최악이었다.
아니,끔찍하고 처참했다.
화재 진압을 마친 후, 황제가 아직 나오지 않은 에디스를 찾았다.
이미 황후 궁은 시커먼 재가 되었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재투성이가 된 바닥에 온전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자신의 딸을 안아들었다.
아이의 몸 어디서도 그을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제는 그녀의 코 근처로 손을 가져갔다.
바람이 없었다.
하물며 옅은 바람도.
황제는 초조해졌다.
그는 서둘러 에디스의 심장 위치에 귀를 기울였다.
마력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근, 소리를 내며 움직여야 하는 심장은 멈춰있었다.
완전히.
황제는 재투성이가 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더이상 눈을 뜨지 않는 자신의 딸의 뺨을 스쳤다.
황제는 울부짖었다.
그는 현실을 부정했다.
자신이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리가 없다면서.

"아니...아니다.너는 제국의 수치가 아니다. 수치는 이 아비다. 내가...내가 네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황제는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이 멈춘 후 황제는 에디스를 보물이라도 되는 것마냥 안아들고 혹여 추울까 봐 자신의 망토까지 벗어 덮어주었다.
에디스는 이제 그 온기를 느낄 수 없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난 황제의 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살벌하게도,밝게도.
그저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공허했다.
그 날 황제는 에디스를 그녀의 방에 눕였다.
그리고 보존 마법을 걸어 그녀의 몸이 유지되도록 했다.
그렇게 황녀,에디스는 죽었지만 죽지 못한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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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0-30 10:29 | 조회 : 1,342 목록
작가의 말
달님이

가족후회는 이제부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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