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황녀, 에디스(5)

불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얼마 안가 불길은 모든 걸 태울 것만 같았다.
에디스는 겁에 질린 채 달아났다.
아니 하려고 했다.
에디스는 서둘러 벽에 걸려있던 황후의 초상화를 때어 자신의 품에 안았다.
뜨거운 불길로 보호하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에디스는 빠르게 달렸지만 어린아이의 발걸음으론 무섭게 번져오는 불길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에디스는 자신의 뒤로 덮쳐오는 불길을 보고 울부짖었다.
불길로 인해 황후 궁이 조금씩 제 형체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문을 열려고 해도 부서진 잔해들이 문 앞을 가로막고 있어 12살 아이에겐 탈출은 거의 불가능했다.
에디스의 얼굴은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졌고 자신의 어머니의 초상화가 들린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황후 궁 밖에서 소리가 들린 것이.
황후 궁 입구의 문이 열리는 것이.
그리고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에디스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며 그를 불렀다.
하지만......

"에디스, 그 초상화를 내게 넘기고 빨리 나오거라."

황제는 에디스를 구해주지 않았다.
불길에 휩싸인 자신의 딸보다 이미 육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가 버린 자신의 부인의 초상화를 달라고 했다.
에디스는 충격으로 몸이 굳고 사고가 정지됐다.
이쯤 되니 황제가 진짜 자신의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황제는 죽음을 앞둔 딸에게마저 냉혹했으며 잔인했다.
쿠쿵, 소리를 내며 황후궁이 한 차례 더 요란스럽게 무너졌으며 이에 황제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그리고 황제는 에디스를 재촉했다.

"빨리 내놓거라! 그리고 마법으로 탈출하거라. 내가 언제까지고 너를 봐줄 순 없지 않느냐."

저를 안 봐주신다고요......? 내가 필요없어서 봐주질 않겠다는 것일까?

에디스의 아직 흘러내리지 않은 눈물로 인해 빛났다. 그녀의 푸른 눈은 마치 바다처럼 빛났다.
에디스는 황제가 다신 자기를 보지 않을까 두려워 잔해들의 빈틈으로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황후의 초상화를 황제에게 넘겼다.
황제는 초상화를 받고 에디스에게 말했다.

"빨리 나오지 않고 뭐하느냐! 그 안에서 죽고 싶은 게냐! 마법으로 나오라니까."

마법은 황족과 소수의 마법사들만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 황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직 황녀, 에디스는 마력이 미약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마력을 타고 났으니 당연하다고 여긴 걸까?
아니면 갑작스런 재해에 머리가 굳어버린 것일까?
황제는 에디스에게 마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나갈 엄두조차 내질 못하는 에디스를 보며 혀를 찼다.

"왜 가만히 있느냐! 그 곳에서 죽고 싶은 게냐? 아. 설마 이 불도 내가 장난친 것이냐?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한 번이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구나!"

아니...아니에요. 아버지. 장난이 아니에요. 그니까 저 좀 구해주세요! 살려달라고요!

에디스는 황제의 호통에 놀라 딸국질을 했다.
이런 순간에서도 몸은 참 솔직했다.
기사들은 약간 걱정스러운 듯 황제에게 눈빛을 보냈지만 황제는 깔끔히 무시했다.
그건 황태자, 에드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인 황제의 말이라면 단 한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는 에드윈은 자신의 친동생이 죽는 순간에서도 아버지인 황제의 말을 따랐다.

"그대로 죽고 싶다면 가만히 있어라. 거기서 죽는다면 넌 내 딸이 아니다. 유리시아 제국의 수치다."

말을 하면서 어쩐지 괴로워보이는 황제였지만 에디스와 다른 이들의 눈엔 비치지 않았다.
에디스는 문 앞을 막는 잔해들을 마법으로 부서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마력이 없던 자가 마력이 생기겠는가.
결국 에디스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12년이란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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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0-26 18:56 | 조회 : 1,259 목록
작가의 말
달님이

다음화는 황제시점입니다. 황족들은 구르고 또 구를겁니다. 몸이 공처럼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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