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오편 - 집사가 도망갔다! (2)

레오는 자동차 조수석에 탔다.

뒷좌석에는 시중을 드는 집사와 레오의 짐이 쌓여있었다.


“조금만 참아.”


집사의 엄마가 이동장에 안전밸트를 채우고 출발했다.

“케켁. 꺄옹.(우으억, 크헉.)”

멀미와 분노, 그리고 두려움.

레오는 품위 있는 고양이는 하지 않는 일을 하고 말았다. 오후에 먹은 사료와 캣 닢이 입 밖으로 나왔다. 지난봄에 출산한 친구 야옹이도 이정도로 토하진 않았다.

음식이 나온 입으로 침이 줄줄 흐르는 데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쉬이익. 화장실에 가지 못해 아까부터 마렵던 오줌이 새어 나왔다!

툭.
레오의 멘탈이 붕괴되면서 구린내가 나는 대변도 같이 나왔다.

이동장 안은 레오가 금새 토한 음식과 배설물로 시큼하고 지리한 냄새로 가득 찼다.


“이를 어째, 레오가 많이 놀랐나 보네!”


운전을 하던 집사 엄마의 소리에 레오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조금만 참아.”


이동장에 입을 대고 속삭이던 집사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니야아옹~. 냐~~~[꺼내라 냥! 괴롭다 냥!].”


집사 엄마의 차는 어두운 밤을 한참 달렸다. 차가 멈췄을 때 레오는 반쯤 기절한 채로 토사물 위에 엎드려 있었다.


“도착했다.”


집사가 이동장에서 레오를 꺼냈다. 집사와 살던 집보다 훨씬 크고, 밝은 불빛이 환한 거실이었다.

안경잡이 악마가 있는 무서운 곳이 아니다. 실눈을 떠서 여기를 확인한 레오는 다시 축 늘어졌다.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가 레오에게 아는 체를 했다. 집사와 닮은 나이든 남자였다.


“안녕? 녀석, 멀미했나 보네. 훈아 고양이 씻긴 다음 풀어놔라.”


“네. 아버지.”


평소라면 집사가 레오를 모시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레오는 도망가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긴 시간 멀미와 긴장으로 레오는 인형처럼 얌전히 집사가 뿌리는 물을 맞았다. 요상한 냄새 때문에 평소에 거부하는 거품도 온 몸에 바르고 다시 물벼락을 맞았다.


“어디 아프니?”


“냥. 야앙.[어. 니 때매.]”


윤기 나는 검은 털에 붙었던 더러움이 물과 함께 사라졌다. 팔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집사가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자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골골골. [살겠다 냥.]”


집사의 엄마가 낯선 거실 한구석에 레오의 집을 놓았다. 폭신한 연갈색 소파와 커다란 창문 사이였다.

몸을 말린 레오는 집으로 걸어가 풀썩 쓰러졌다. 머리가 앞발에 닿기도 전에 눈이 감겼다. 피곤한 밤이었다.


"여기가 어디 냥?"


짹짹거리는 새소리, 코를 간질이는 가죽냄새. 그리고 나무냄새.

하품을 하며 일어난 레오는 깜짝 놀랐다. 나무무늬 마룻바닥,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소파, 사각 반듯한 장식장, 벽에서 톡 나온 것 같은 커다란 평면TV가 있었다.

원룸이던 예전 집에는 없는 베란다가 있는 커다란 창문(살짝 열려서 기분 좋은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도 있었다! 그리고 창문 구석에는 레오의 캣 타워가 높이 서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레오의 귀에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바깥쪽에서 나고 있었다.


"냐앙?"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레오는 베란다로 나갔다.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보자 빌라를 나와 어딘가로 걸어가는 집사와 집사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냐아아옹!”


레오의 외침에 본인의 엄마와 이야기하던 집사가 위를 올려봤다. 집사는 손을 흔들며 레오에게 인사했다.


“어! 레오! 일어났어? 나 금방 갔다올게.”


“아고, 형 나간다고 인사하나보네.”


집사의 엄마도 흐뭇한 얼굴로 레오를 보았다.


"나를 혼자 두냥!"


3층높이라 뛰어내리기도 무섭다. 레오는 집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캬웅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새로 이사왔느 냥?"


목이 쉴 정도로 우는 레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담쟁이 넝쿨이 올라가고 있는 빌라 담벼락 쪽이었다. 담 위에는 회색 줄무늬 옷을 입은 통통한 고양이가 몸을 쭉 펴고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아줌마는 누구 냥?"


"누가 아줌마 냥! 아름다운 큰 누님이라 불러라 냥! 내 이름은 나비. 이 동네 골목대장 냥이당. 환상동에 온 걸 환영한다 냥."


큰 소리로 호통을 친 뒤, 나비 누님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레오에게 인사했다.

환상동은 집사의 부모님이 사는 동네였다. 집사가 먼 곳으로 가게 되어 부모님 집에 레오를 데리고 온 것이다.

레오가 새 집에서 대변을 본 다음날 새벽 집사는 레오를 안아 올려 인사를 했다.


“말썽부리지 말고 어머니 아버지랑 잘 지내.”


“냐옹.[왜?]”


레오는 집사를 쳐다보았다. 며칠 전 까끌까끌하게 머리를 깎아서 더 그런 걸까. 인사하는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갔다올 게.”


“야옹. 양양 냥.”[냥. 빨리 다녀오라 냥.]


기분 탓이다 냥. 집사는 금방 돌아올 거야. 레오는 얌전히 집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건 레오의 착각이었다. 그날 밤, 그 다음 날 밤에도 집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군대라는 곳은 정말 먼 데인가 보다. 냐아앙. 레오는 한 숨을 쉬었다.

집사가 나를 두고 도망갔다 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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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6 21:26 | 조회 : 1,941 목록
작가의 말
운봉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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