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실편 - 손님이 아닌 손놈!

월요일 아침은 그 어느 때 보다 바쁘다.

거기다 오늘처럼 늦잠을 잔 경우는 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매실, 소리. 집 잘 지키고 있어!”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인 어린 식솔들이 허둥대며 대문을 빠져 나갔다.


“꼬꼬꼬(그러게 일찍 일어나지).”


학교로 향하는 형제의 뒷모습을 보면서 매화나무 위의 매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집 잘 지키고 있어. 특히, 소리 너 사고 치지 말고!”


“멍!”


대문을 걸어 잠그면서 행랑어멈이 소리를 보고 하는 말에 소리가 약간 억울함을 담아 대답했다. 까치와 싸우거나 길냥이와 싸운지도 한참 됐는데, 아직도 사고뭉치 취급이라니! 행랑아범은 일찌감치 출근했다.

행랑채 식구들이 모두 나가자 매실은 기지개를 켜고는 나무 아래로 폴짝 뛰어 내렸다. 이제 이 집안과 동네의 평안을 위한 순찰 시간이 온 것이다.

날개깃을 가다듬고 자신의 자존심인 긴 꼬리깃을 열심히 다듬는데 평소와 달리 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스승님, 오늘따라 바람에 짠 내가 납니다요, 멍.”


“바람이 세잖느냐. 거기다 행랑어멈이 소쿠리에 조기를 말리고 있지 않느냐? 짠 내가 나는 것이 당연하거늘.”


“아, 그렇군요.”


하얀 꼬리를 흔들며 소리가 다소곳이 대답했다. 제자로 들인지가 몇 개월이나 지났는데, 소리는 아직도 여러 가지 면에서 느렸다.

몸단장을 거진 끝낸 매실은 나지막이 꼬곡 거리곤 꼬리를 흔들었다.

하늘이 내린 붉은 벼슬이 빳빳하게 솟아 있다. 자랑스런 벼슬 주변의 머리는 연한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등은 윤기 좔좔 흐르는 붉은 깃이 멋지게 덮여 있었다.

가슴팍과 날개는 광택 있는 청색 깃이, 길게 뻗은 꼬리의 앞부분은 하얀색이, 뒷부분은 군청색이 깔끔하고 절도 있게 나있었다. 모든 깃이 고르고 단정하게 배열됐다. 이제 마실 나갈 준비가 다 된 것이다.


“꼬꾜. 내 나갔다 올 터이니, 소리 너는 언제나처럼…”


매실은 말을 차마 다 끝내지 못했다.

휘익.
누군가가 감히, 매실의 머리 위를 지나 매화나무위에 앉은 것이다!

낯선이는 회갈색 날개를 접으며 매실과 소리를 내려다봤다. 날개완 달리 하얀 배, 매끈하게 넘긴 하얀 머리 깃에 까맣고 빨간 점이 박힌 노랑 부리. 처음 보는 새였다.


“어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는 게요?”


소리가 흥분해서 멍멍거리자 몸을 비튼 낯선 새는 똥을 찍하곤 갈긴 뒤 이번엔 빨래건조대를 향해 냉큼 뛰었다.

빨래건조대 위에는 조기가 담긴 소쿠리가 있었다. 아무데나 똥을 싸 갈기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흥분한 소리를 말리며 매실이 점잖게 한소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 새가 부리를 크게 벌리곤 조기 한 마리를 꿀떡 삼켜버렸다.


“오매나, 멍!”


“꼬~꼭끼~오! 무엄하다! 감히 남의 집에서 식량을 훔쳐 먹다니, 어디서 배운 버릇인 게냐!”


매실의 일갈을 무시한 그 새는 조기 한 마리를 더 부리에 물었다. 순식간에 소리보다 더 흥분한 매실의 벼슬과 얼굴이 붉어졌다. 내, 이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리라.

매실의 머리 깃이 사자갈기처럼 펼쳐졌다.

푸드덕.
매실은 양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빨래건조대로 내려앉았다.

도둑이 두 번째 조기를 삼키기 전 분노한 매실이 앉자 빨래건조대가 잠시 휘청했다. 매실은 다시 푸드득 거리며 양 발을 들어 도둑 새의 부리를 쳤다.


“까악 꺄아앙.”


날카로운 고양이 소리를 내며 그 새의 부리에서 조기가 떨어졌다.


“먹을 땐 개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거늘.”


고양이 소리를 낸 새는 다시 부리를 벌리곤 새로운 조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매실이 아니었다.


“어딜!”


매실이 다시 뛰어 오르자 회갈색 새는 머리를 쉭쉭 거리다 풀쩍 날아올랐다. 매끈한 몸통에 다리가 몸에 착 붙는 것이 비행시에 장거리를 뛰는 새가 분명했다. 매실도 덩달아 날개를 파닥여 따라 잡았다.

단거리 비행은 매실이도 잘한다. 몸 상태와 기분이 좋은 날에는 까치와 같이 날아본 적도 있다.

매실의 머리 위를 지나 다시 조기를 물려던 새는 뒤따라 온 매실에게 등을 물리고 꼬리가 발에 차였다.


“꾸에엑, 냐앙!”


노란부리 까만 점의 새가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밀려 땅에 굴렀다. 의기양양한 매실이 부리에 문 하얀 깃털 하나를 버리며 앞에 내려 앉아 가르침을 주려는 순간이었다. 새의 반격이 시작됐다.


“독도류 제 1식!”


“무어…?”


매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침입자가 매실의 부리를 물어 버린 것이다. 하얀 머리에 날렵한 눈을 가진 조기도둑은 노르스름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매실을 봤다. 매실이에 비해 기다랗고 가느다란 부리는 보기보다 힘도 셌다.

머리를 흔들었지만, 평소의 자랑인 벼슬이 같이 물려 오히려 머리를 빼기 힘들었다.

‘이 도둑놈의 새가 감히!’

분노한 매실의 귓불과 부리 밑에 달린 고기수염도 평소보다 붉어졌다. 저런 모습이면 상대가 그 누구든 무사하지 못하리라. 겁을 지레 먹은 소리는 꼬리를 말고 구석으로 가서 두 마리 새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몸을 조금 비튼 매실은 근육질의 다리를 조금 굽혔다 힘을 주면서 뛰어 올랐다. 덤으로 날개도 강하게 한번 파닥거리면서. 평소 운동을 많이 한 보람이 있었다.

양아치 새의 몸이 밀리면서 빨래건조대를 쳤다. 기우뚱. 흔들. 퍽.
건조대 위의 소쿠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반쯤 말라가던 조기들이 매실과 도둑새의 몸을 쳤다가 땅 위로 흩어졌다.

금새 물고기 비린내가 진동하고, 몸에는 투명한 비늘 조각이 붙었다. 매끈하고 깔끔하게 다듬었던 두 마리 새의 몸은 깃털이 부풀부풀하고 군데군데 삐져나왔다.

씩씩 거리며 떨어진 새 두 마리는 잠시 서로를 살피다 다시금 달려들었다. 공기 중에 흰색과 군청색, 붉은색, 회색의 깃털이 날리면서 몇 번인가 물기 많은 똥도 바닥에 떨어졌다.

새들에게 밟히고 차이고, 심지어 하얗고 갈색의 냄새나는 덩어리를 묻힌 조기는 영영 못 먹게 되었다.

푸드덕 파다닥, 쿵
매실과 양이치의 싸움은 빨래 건조대가 넘어 가면서 잠시 멈추었다.

그나마 빨래가 없어 다행이었다. 매실의 벼슬에 맺힌 핏방울이 한 방울 떨어졌다. 노랑부리 까만 점의 새는 발의 물갈퀴가 살짝 찢어져 피가 맺혀 있었다. 발을 절뚝이는 새를 보며 매실은 자신의 물그릇에서 물을 한 모금을 마셨다.


“어디서 구르다 왔는지, …제법 하는구나.”


물을 마시면서 말해 힘든 티가 덜 나는 게 다행이었다.


“최근 들어 싸운 상대 중 …강한 편이군.”


물그릇은 두 개였다. 매실이 것과 소리 것. 소리의 물그릇 쪽으로 주춤주춤 다가가 물을 마시며 그 새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둘 다 목을 할딱거리고 쌕쌕 거리는 것이 지친 것이 분명했다. 소리가 몸을 조금 움직이자 매실과 하얀 머리새가 동시에 소리를 노려봤다. 소리는 점잖고 싸움을 싫어하는 말티즈이다. 다시금 꼬리를 말고 구석에 있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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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30 22:08 | 조회 : 1,525 목록
작가의 말
운봉의 후예

닭은 멋진 새입니다. 수탉은 예쁘고 암탉은 귀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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