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오편 - 집사가 도망 갔다! (1)

집사가 사고를 친 모양이다.

“레오, 너를 어쩌면 좋냐.”

“에휴.”

술 냄새를 풍기며 늦게 들어와 레오를 끌어안거나, 한숨을 푹 쉬며 침대 구석에 찌그러지던 날이 잦아지긴 했었다.

그런데 야반도주라니! 야반도주라니!

며칠 전부터 레오가 좋아하는 상자를 잔뜩 가져다 방바닥에 놓더니, 필요 없어 보이는 집사의 짐을 넣던 게 이 때문이었나.


"이리 나와!"

"냐앙~(내 집~)."

그 것도 모르고 레오는 좋다고 상자 안에 들어가서 놀다가 집사 손에 끌려 나왔다.

“레오. 잠시 들어가자.”

평소보다 힘이 빠진 집사가 싱크대를 열었을 때 레오는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비명을 질렀다.

옵션으로 네 발바닥에 힘을 주고 발톱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캬~옹!”

싱크대 안에는 끔찍한 게 숨어있었다. 회색 체크무늬 이동장.

이동장은 끔찍한 곳으로 레오를 데려갔다.

하얀 옷을 무섭게 펄럭이는 안경 잽이 악마가 고약한 술냄새를 풍기는 곳 말이다.
부서진 나뭇조각에 앞발을 찔렸을 때 안경 잽이 악마는 따가운 약을 바른 것도 모자라 목에 이상한 것을 씌웠다.

원래 상처는 혀로 핥으면 깨끗해진다.

그런데 목 바로 아래 붙인 빳빳하고 괴상한 물건 때문에 레오는 상처를 볼 수조차 없었다.

엘리자베스 칼라? 넥 칼라?

이름처럼 바보 같은 물건이었다.

'레오야! 여기 좀 봐.'

당시 집사는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품위가 사라진 레오의 얼굴을 열심히 사진으로 찍었다.

집사의 일차 배신에 충격을 먹은 레오의 기분 따위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말이다. 아, 그 때 준 참치 캔이 그나마 위로가 됐지.

고것 때문에 눈부시게 하얀 발과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로 덮인 몸통, 하얀 배를 얼마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지….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지난 계절 안경 잽이 악마는 깃털달린 신상 오뎅 바로 시선을 돌리더니 순식간에 날카로운 바늘로 레오를 기절시켰다.

정신이 들었을 때 레오는 아래에 달려있던 소중한 것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캬앙. 냐아옹, 냐아옹! (감히, 감히!)”

눈물을 흘렸던 그 날 레오는 한 마리 수컷에서 한 마리 고양이가 되었다.

이동장에 들어가면 언제나 나쁜 일이 생긴다.

[놔랑! 집사! 나는 안 들어간다 냥!]

“큽!”

온 힘을 다한 레오의 버둥거림에 집사가 신음을 냈다. 삐죽 내민 발톱이 집사의 맨 팔을 긁은 것이다. 그래도 집사의 힘이 레오보다 세다.

결국 레오는 이동장에 억지로 갇혔다.

[끼야옹! 레오 살려!]

레오의 비명에도 집사는 이동장의 지퍼를 단호히 올렸다.

촘촘한 그물망 너머 집사의 팔뚝에 빨간 핏방울이 방울방울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레오를 놔두고 자주 밖에 나간다는 점만 빼면 나쁜 집사는 아니니까.

그래도 우선 내가 살고 봐야 하지 않겠어?

“캬악! 키야옹!”

울부짖는 레오의 말에 대답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챙겼니?”

“네. 어머니.”

집사의 엄마였다. 늦은 오후에 가끔 와서 집사에게 음식을 챙겨주던 사람, 레오가 좋아하는 닭 가슴살 캔도 가지고 와서 레오는 집사의 엄마를 좋아했다.

[거기 인간. 나 좀 풀어라 냥!]

집사의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나이 든 인간 여자는 고귀한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캬아옹! 캭!”

이동장의 망에 앞발을 긁으며 구조 신호를 보내는 레오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그래. 답답하지? 우쭈쭈, 조금만 참아.”

[아니, 인간. 그게 아니다 냥! 나를 꺼내라 냥!]

집사의 엄마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어머나! 훈아. 팔에 웬 상처니? 레오 짓이니?”

“애가 놀라서 할퀴었나 봐요.”

집사가 자기 팔을 보는 엄마에게 뭐라 말했다. 레오라는 단어가 들리는 게 자신의 뒷담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당, 난 모른 당. 그냥 나를 꺼내라 냥!]

울부짖는 레오에게 집사가 왔다. 집사의 엄마가 방바닥에 있던 마지막 박스를 들었다.

장난감과 방석, 화장실 같은 레오의 물건들이 들어있는 상자였다.

[냥! 내 놔라 냥. 내 재산!]

도리도리 머리를 젓는 레오를 집사가 들어 올렸다.
기우뚱, 이동장이 공중에 붕 뜨면서 레오는 갇힌 채로 날기 시작했다.

“자, 이제 가자.”

꼬맹이 시절 이 방에 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떠나다니. 포근한 박스 안에 숨어있던 레오에게 집사가 말했었지.



“이제 여기가 너의 집이야. 나랑 같이 사는 거야. (이제 여기가 주인님 집이에요.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작지만 레오가 좋아하던 모든 게 있던 방이었다.

방묘망이 달린 커다란 창틀, 편한 집사의 침대 겸 레오의 놀이터, 천정이 낮은 옷장, 따끈한 컴퓨터가 있던 책상, 시원한 작은 냉장고까지.

[냐냥. 어디로 가냥? 이렇게 갈 순 없다 냥! 동네 친구들은 어쩌 냥!]

“안녕?”

“흥!”

매일 오후 집 앞을 지나가던 삼색 이쁜이 꼬마 아가씨.

“오늘도 좋은 날이다 냥~.”

“맛난 거 좀 주세요, 짹짹.”

“우와, 저 비둘기들 정말 못 생겼다, 짹.”

노란 털옷이 꽉 끼던 아저씨, 그리고 수다 떨던 참새 떼는 내일부터 문이 닫힌 레오의 방을 보고 뭐라고 할까?

절망과 황당함에 몸부림치느라 레오는 집사가 집주인 아줌마에게 열쇠를 주는 걸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유, 학생. 그래, 잘 가. 야옹이도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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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7-29 17:47 | 조회 : 2,162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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