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제 2차전-무언의 빛, 그리고 판(1)




아리엘의 바람이 그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사이 가온이 에드윈에게 남은 약이라며 한눈에 보기에도 극약 같은 희멀건 액체를 내밀었고,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사양했다.

‘내가 여태까지 이런 걸 먹었었단 말이야?’

고작 몇 방울만이 작디작은 유리병을 채우고 있을 뿐이건만 뚜껑을 열자마자 뇌를 뚫는 듯한 독한 냄새에,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는 정말 토할 듯 했다.

“......이거 율한테 뿌리고 싶네.”

소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에스프레소에 다크초콜릿을 곁들어 먹는 그다.

“에드!”

그리고 그들이 돌아온 건, 에드윈이 막 자신의 몸을 치유하였을 때였다. 최고난도 마력운용에 속하지만, 저 약을 먹는 것 보다는 머리에 쥐가 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복잡한 공식에 비해 효과는 극히 떨어진다. 게다가 자신을 치유하려면 마력도 어마무시하게 잡아먹는 까닭에, 보통은 남에게 부탁하거나 포션을 뿌린다. 아, 포션도 비싸지만.

에드윈은 상념에 빠져있다 몇 초 늦게 자신을 부른 사람을 돌아봤다. 시연과 혜민. 다급히 뛰어온 그들의 몸 곳곳엔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보통의 올리스와 싸웠다면, 결코 나지 않았을 상처들이.

“어떻게 된 거야?”

“아마 율이 여러 무리가 습격해 왔단 이야기는 들었을 텐데.”

아리엘이 말해줬지만. 뭐 안단 사실은 다르지 않으니까.

“그 무리 중엔, 우리가 감내하기 벅찬 이들-즉 케이사가 여럿 있었어. 정황상 아마 팀에 자신을 속이고 들어갔거나, 아니면 직접 유안이 보냈거나. 그런데 케이사들은 공격해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되도 그냥 흩어져서...”

에드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두 소년을 바라봤다. 통괄하여 A반이라 칭하지만 그들은 굳이 자연에 비유한다면 상위, 또는 최상위 포식자에 가까운 존재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애초에 그 사슬에 속하지 않은 이들 뿐이니.

“성과는?”

에드윈이 묻자 혜민이 빛나는 ‘조각’을 들어보였다. 깨질 듯이 얇은, 현재는 죽은 누군가의 올리스였던 것을.

시연이 아공간을 열어 ‘판’을 꺼냈다.

“하여간에, 판은 거의 다 모았어. 좀 있으면 아마 연우가 마지막 조각을 가지고 돌아올거야.”

그 판에 모인건 단순히 조각들이 아니라 아픔이라서.

“...그래.”

에드윈이 말없이 그들 몸 곳곳에 난 생채기를 치유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

혜민이 나무뿌리에 걸터앉으며 말을 꺼냈다.

“네가 쓰러진 1주일 동안 굉장히 많은 습격이나 공격을 받았거든? 그 패턴이 두가지더라고. 우리가 다른 올리스들의 조각을 모으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케이사들이 몰려오거나, 아니면 밤중에 케이사들이, 아주 드물게는 올리스 팀이 습격하거나.”

“당연한 것 아닌가?”

“음, 그게. ‘케이사’ 들은 다른 올리스 팀들을 공격하지 않아. 오직 우리만 공격해. 다른 팀원을 붙잡고 물어봐도, 그게 뭐냐고 하더라. 그래서 말인데, 흩어지는 것과 관련해서 이건 아무래도...”

쾅!

레이첼이 마법으로 남긴 방호벽은 그녀가 떠나면서 남김없이 사라졌다. 마법이란 원래 시동자의 의지가 끊기면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이니. 그러나 올리스로 구성 된 건, 그 힘만 보충된다면 어느 정도 더 유지가 가능하다.

투두둑-

레이첼의 방어벽 중, 작은 틈에서 토사가 흘러들어 오며 조금씩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 틈이 비좁게나마 사람 하나 정도가 들어 갈 수 있을 정도로 커지고, 그곳으로 약간의 흙더미와 함께 연우가 나무 안으로 들어온다.

원래라면 레이첼이 허가해 그 틈을 벌려주는 방식이지만, 현재는 각자 힘을 보충한 부분을 통해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연우만 들어왔어야 하는데-

“이런.”

시연이 낮게 내뱉으며 물을 운용해 싸울 준비를 했다.

시체라고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이 차가운, 케이사들이 연우가 들어오기 위해 벌린 틈으로 그를 쫓아 들어온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 연우는 가속도가 붙은 몸을 강하게 틀어 한번의 공격을 피한 후, 연속적으로 흙은 들어 올렸다.

결계는 시연이 급히 닫아서, 한 명의 케이사가 이 안에 있었다. 바깥에서 결계를 뚫고 있는 자들을 보며 혜민이 방어막을 극도로 강화했다. 시연은 연우를 바라봤다. 어쩔 수 없다. 이 상황이라면 도와주는 게 더 위험할테니.

연우의 목숨이 위험할만한 상황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고 스쳐지나갔다. 압도적인 괴력에 흙의 올리스는 미묘하게도 균형을 잃고, 그 틈을 노리며 케이사는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찰나의 순간이 굉장히 느리게 전개되었다. 연우는 쓰러지는 몸을 최대한 아래로 밀착시킨 후, 지금까지 들어올린 모든 흙을, 한계까지 강화시켜 자신의 몸 바로 앞에 곡면으로 세우곤 충격을 기다렸다.

쾅!

“잘 봐둬, 에드.”

그 강화된 흙에 저 정도로 강하게 부딪쳤다면 아무리 케이사라도 견딜수 없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라진다.

마치 그 현상은 여러 작은 집합이 흩어지는 것과 같아서, 점점이 그 힘이 떠오르며 한 곳으로 향한다.

“무언의 빛?”

“언제나, 케이사는 사라지는 순간 무언을 빛 쪽으로 흩어지지. 그 케이사의 주인, 키사는 유안이고.”


“...무언의 빛에, 유안이 있다는 건가.”

가득 채울 듯 흩어지는 케이사와, 연우의 힘이 풀린 흙벽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이 동시에 일어났다. 쏟아지는 햇빛은 그것을 비췄다.

“윽......”

흙의 올리스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입에 묻어나오는 붉은 피를 보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곤 흙 속으로 꼬꾸라져 내상을 치유했다.

*

“날 버리고 저 둘이 튀는데, 난 아엘이 보낸 그 메시지만 듣고 말이야. 와, 진짜 배신감이 드는게, 너무한거 아냐?”

그도 그럴 것이, 케이사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힘은 강하다. 웬만큼 충격을 주지 않는 이상 망가지지 않는다. 잠시 전에도 연우를 뒤따라오며 붙은 가속력과 그걸 견딜 만큼 흙을 강화하였지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이다.

이미 화상 등의 상해를 입은 나무에 케이사가 부딪쳤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터.

대답을 들은 생각도 없다는 듯, 연우는 땅으로부터 흙을 가득 퍼올려 목까지 시연과 혜민의 몸을 죄이고 흙을 굳혔다. 아까 흙벽을 세우고 지지하며 버텼던 탓에 피를 토하긴 했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수압으로 부수면 되는걸 뭐하러?”

시연이 놀리듯 말하자 가온이 맞받아쳤다.

“야, 네가 그렇게 나무 안에 물을 흩뿌려놓으면 뒷감당은 누가 하라고? 잘못 한 줄 알면 그냥 가만히 있어. 아니면 ‘실수로’ 그 흙을 데워서 전신화상을 입힐수도 있으니까.”

“웅, 나 웬만해선 잘 안 타는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우가 흙을 더 보태 아예 입까지 막았다.

“너 좀 닥치고 있어.”

각혈을 해 입을 가린 오른손에 피가 흐르는 모습에, 한 그 말은 꽤나 무서웠다. 그 모습에 율이 판을 들고 탁자 정중앙에 놓는다.

“그럼, 조각을 맞춰.”

흙의 올리스는 비참한 표정으로 조각을 꺼냈다. 연우가 들고 온 조각은 신기할 정도로 판에 꼭 들어맞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때자 군데군데 금이 간 것 같은 모양은 사라지고, 환히 빛나며 문양이 떠올랐다.

“로즈마리네.”

가온이 중얼거렸다. 작은 잎과 보랏빛 꽃잎을 가진, 그 꽃은 이내 마치 처음부터 그 판에 존재했던 것처럼 새겨지며 자그마한 빛을 바랬다.

‘......어머니?’

그것은 마치 유안이 보여준 기억의 어머니와도 같은 것이라서, 시연은 속으로 의아함을 느꼈다. 왜 하필, 저 꽃일까.

0
이번 화 신고 2016-07-17 21:30 | 조회 : 1,032 목록
작가의 말
시연

어....음... 말없이 휴재해서 죄송합니다. 시험기간 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부터 진도 팍팍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