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제 1차전-혼란(2)




‘신’은

-왜 나에게는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는 걸까요?

그 무엇도 가지지 못한 아이에게, 이 세계를 주었다.

-왜 나에게는 이런 힘이 주어지게 됐던 걸까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에겐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가진 아이는 어느 것이든 무가치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겐, 이 모든 것이 덧없다.

-나는, 내 존재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 따위 없어 보이는데.

그래서 그 아이는 홀로 무너졌다.

그러나 그날, ‘키사’라는 세계를 오롯이 받았다.


//


소녀가 정을 줬던 모든 이는 죽었다. 그래서 레이첼은, 유안이 그어놓은 ‘선’을 침범하는 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제가 정을 주면, 그는 죽는다. 그가 죽으면, 내가 부서질 테니까. 슬퍼질 테니까. 그러니 내게 다가오지 마.

얕은 행복 따윈 필요 없어. 곧 깨질 텐데. 그러면 또 누군가가 죽을 텐데.

그저 소녀는, 그의 어머니를 사랑한 죄로 그녀가 죽었다. 아버지를 바라보자 그 사람은 미쳐가며 아내를 찾다, 결국 그리도 사랑하던 그녀와 함께 묻혔다. 세로완 이안다스에게 우정을 건네었다. 그런데 로완은, 지금 이리 죽었다. 그리고 소녀의 약혼자는 저를 대신해 죽었다.

내 도움은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아. 소녀는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
아무도 구할 수 없는데, 그들은 저 때문에 죽었다.

소년 또한, 참으로 허망하게 죽었지.

레이첼은 고개를 들었다.

“유안.”

그리고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그 속삭임은 마치 울음과도 같아서.

“당신의 ‘꼬마아가씨’는 부서졌어. 어느 잔혹한 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당신의 인형은 무엇을 하면 될까? 당신에게 그 무엇을 주면 될까. 조각의 능력? 내 생명?”

그 따위가 아닌걸 알면서도.

“당신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게 죽었어. 이제 더 빼앗아 갈 것도 없는데? 내 아비가 지은 죄? 내가 선을 넘겨버린 죄?”

소녀는 결국 웃었다.

“나는 조금도 행복할 수 없는 거야? 내게서 무엇을 원해?”

선명한 녹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과도 함께.

“레이첼.”

그에 유안은 대답했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해?”

-당신이 죽였잖아. 아니, 내가 죽인 건가?

“내가 너에게서 원하는 것은, 글쎄.”

아이는 소녀의 눈물을 닦으며 말을 맺었다.

“로즈마리와 ‘하율’......”

간결하게.

“그들에 대한 복수랄까.”

-살아 있어.



//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에, 나는 눈을 감고 그것을 느꼈다.

“율?”

“아니요.”

아리엘. 그 작은 이름을 떠올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짧게 물었다.

“며칠이나 지났어?”

“일주일 정도 됐어요.”

마법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비록 공격당한 순간에, 육체를 되살릴 순 없어도 이렇듯 빠른 시간에 낫게 하다니. 몸을 일으키려 하자 날카로운 고통이 상반신 전채를 관통했다. 아, 그건 아닌 것 같네. 취소.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다시금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가온의 나무였다. 일주일 전 밤, 피투성이였던 그 때의 흔적은 마치 거짓이라는 듯. 깨끗한 내부였다.

“아엘. 레이첼은? 다른 아이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아엘은 조심스레 말했다.

“일단...케이사들의 공격으로 이루 오빠와 레나 언니가 죽었어요. 그 뒤로도 여러 무리가 습격해 와서, 판은 거의 채운 상태고요.”

달칵. 죽 그릇이 맑은 소리를 내며 놓인다.

“레이첼 언니는, 행방불명 상태에요. 오빠가 죽은......로완에게 끌려갔고요. 다시 돌아와 보니 에드윈 오빠가 살아있어서 최대한 치료했어요. 아마도 언닌, 유안이라는 자에게 있을 거라고 말하는 걸 듣긴 했는데......”

두서없는 말에 나는 작게 한숨지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아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 달라고 부탁했다.

“응, 도련님. 일어났어?”

그래서 온 것이 율.

“너 그냥 가라. 아덴이나 가온 불러와.”

“너 죽었다 살아난 몸인데 이렇게 사람 가려도 돼? 섭섭한데, 도련님.”

내가 비교적 자유로운 왼손으로 그를 밀어내자 밀려나는 척 하더니 웃으며 돌아온다. 나무 문이 꽤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따위 표현 쓰지 말고. 레이첼은?”

체념하고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율은 씩 웃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

“그만하고. 너 진짜 입 다물어.”

이 기분 나쁜 어조에 그 누가 화내지 않을 수 있으랴. 내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 하자, 아까보다 더욱 큰 고통이 밀려왔다. 아놔.

“시연이는 주변 정찰 돌고 있고, 가온이는 요리하고 있고. 아리엘은 낮잠 잘 시간이고. 그치?”

적어도 마지막 건 아닌 것 같아.

“그것보다 너.”

그러나 보기 드물게 정색하는 그의 목소리에 난 허공을 응시했다. 곧이어 그의 눈을 바라보자, 서늘한 하늘빛의 눈이 마주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어질 질문에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왜 죽었던 거야? 레이첼 대신에.”

그에 대한 답 또한,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글쎄”

난 ‘후자’의 쪽이라서.
#41. 제 1차전-혼란(2)

‘신’은

-왜 나에게는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는 걸까요?

그 무엇도 가지지 못한 아이에게, 이 세계를 주었다.

-왜 나에게는 이런 힘이 주어지게 됐던 걸까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에겐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가진 아이는 어느 것이든 무가치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겐, 이 모든 것이 덧없다.

-나는, 내 존재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 따위 없어 보이는데.

그래서 그 아이는 홀로 무너졌다.

그러나 그날, ‘키사’라는 세계를 오롯이 받았다.


//


소녀가 정을 줬던 모든 이는 죽었다. 그래서 레이첼은, 유안이 그어놓은 ‘선’을 침범하는 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제가 정을 주면, 그는 죽는다. 그가 죽으면, 내가 부서질 테니까. 슬퍼질 테니까. 그러니 내게 다가오지 마.

얕은 행복 따윈 필요 없어. 곧 깨질 텐데. 그러면 또 누군가가 죽을 텐데.

그저 소녀는, 그의 어머니를 사랑한 죄로 그녀가 죽었다. 아버지를 바라보자 그 사람은 미쳐가며 아내를 찾다, 결국 그리도 사랑하던 그녀와 함께 묻혔다. 세로완 이안다스에게 우정을 건네었다. 그런데 로완은, 지금 이리 죽었다. 그리고 소녀의 약혼자는 저를 대신해 죽었다.

내 도움은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아. 소녀는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
아무도 구할 수 없는데, 그들은 저 때문에 죽었다.

소년 또한, 참으로 허망하게 죽었지.

레이첼은 고개를 들었다.

“유안.”

그리고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그 속삭임은 마치 울음과도 같아서.

“당신의 ‘꼬마아가씨’는 부서졌어. 어느 잔혹한 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당신의 인형은 무엇을 하면 될까? 당신에게 그 무엇을 주면 될까. 조각의 능력? 내 생명?”

그 따위가 아닌걸 알면서도.

“당신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게 죽었어. 이제 더 빼앗아 갈 것도 없는데? 내 아비가 지은 죄? 내가 선을 넘겨버린 죄?”

소녀는 결국 웃었다.

“나는 조금도 행복할 수 없는 거야? 내게서 무엇을 원해?”

선명한 녹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과도 함께.

“레이첼.”

그에 유안은 대답했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해?”

-당신이 죽였잖아. 아니, 내가 죽인 건가?

“내가 너에게서 원하는 것은, 글쎄.”

아이는 소녀의 눈물을 닦으며 말을 맺었다.

“로즈마리와 ‘하율’......”

간결하게.

“그들에 대한 복수랄까.”

-살아 있어.



//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에, 나는 눈을 감고 그것을 느꼈다.

“율?”

“아니요.”

아리엘. 그 작은 이름을 떠올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짧게 물었다.

“며칠이나 지났어?”

“일주일 정도 됐어요.”

마법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비록 공격당한 순간에, 육체를 되살릴 순 없어도 이렇듯 빠른 시간에 낫게 하다니. 몸을 일으키려 하자 날카로운 고통이 상반신 전채를 관통했다. 아, 그건 아닌 것 같네. 취소.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다시금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가온의 나무였다. 일주일 전 밤, 피투성이였던 그 때의 흔적은 마치 거짓이라는 듯. 깨끗한 내부였다.

“아엘. 레이첼은? 다른 아이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아엘은 조심스레 말했다.

“일단...케이사들의 공격으로 이루 오빠와 레나 언니가 죽었어요. 그 뒤로도 여러 무리가 습격해 와서, 판은 거의 채운 상태고요.”

달칵. 죽 그릇이 맑은 소리를 내며 놓인다.

“레이첼 언니는, 행방불명 상태에요. 오빠가 죽은......로완에게 끌려갔고요. 다시 돌아와 보니 에드윈 오빠가 살아있어서 최대한 치료했어요. 아마도 언닌, 유안이라는 자에게 있을 거라고 말하는 걸 듣긴 했는데......”

두서없는 말에 나는 작게 한숨지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아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 달라고 부탁했다.

“응, 도련님. 일어났어?”

그래서 온 것이 율.

“너 그냥 가라. 아덴이나 가온 불러와.”

“너 죽었다 살아난 몸인데 이렇게 사람 가려도 돼? 섭섭한데, 도련님.”

내가 비교적 자유로운 왼손으로 그를 밀어내자 밀려나는 척 하더니 웃으며 돌아온다. 나무 문이 꽤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따위 표현 쓰지 말고. 레이첼은?”

체념하고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율은 씩 웃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

“그만하고. 너 진짜 입 다물어.”

이 기분 나쁜 어조에 그 누가 화내지 않을 수 있으랴. 내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 하자, 아까보다 더욱 큰 고통이 밀려왔다. 아놔.

“시연이는 주변 정찰 돌고 있고, 가온이는 요리하고 있고. 아리엘은 낮잠 잘 시간이고. 그치?”

적어도 마지막 건 아닌 것 같아.

“그것보다 너.”

그러나 보기 드물게 정색하는 그의 목소리에 난 허공을 응시했다. 곧이어 그의 눈을 바라보자, 서늘한 하늘빛의 눈이 마주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어질 질문에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왜 죽었던 거야? 레이첼 대신에.”

그에 대한 답 또한,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글쎄”

난 ‘후자’의 쪽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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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12 21:05 | 조회 : 876 목록
작가의 말
시연

오늘도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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