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제 2차전-혼란(1)



슬펐다.

그게 너무 아파서 분노했다.

-왜 나에게는 아무도 남아주지 않는 걸까요?

대답 없는 물음은 허공을 맴돌 뿐.

그에 나의 마음은 부서져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며 흐릿한 시야가 트였다. 어른거리는 뿌연 장막 뒤로, 한 아이가 있었다.

연한 금발의 호박과도 같은 차가운 눈.

“레이첼.”

너무나도 익숙한, 그래서 역겨운 목소리. 흐릿하던 시야가 선명하게 초점이 맞춰지며 아이의 형상이 보였다. 서늘하도록 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이가.

“역시 넌......”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는 화면들이 줄지어 떠 있는 거대한 방. 은색의 구조물 위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나.

여기가 어디지? 왜, 어떻게 오게 된 거지? 로완은? 에드윈은 죽지 않았나?

그리고 저 아이는 누구지?

빠르게 지나가는 물음에 답한 것은 그 아이의 눈이었다. 기묘하게 얽혀있는, 무섭도록 뚜렷한 이 아이의 호박색 눈.

“......유안.”

이런 아이의 모습이, 내가 그리도 두려워하던 유안이었다.

“일어났구나.”

그는 마치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답했다.

“너는 더 이상 그 아이들과 있으면 안 돼.”

“여긴 어디죠? 에드윈...프롤르네 공작은...로완은......”

어린아이는 눈을 감아 보이며 정중하게,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시체가 된, 세로완 이안다스가 있었다.

*

세로완은 다시금 내게 칼을 겨눴었고, 더 이상 희생당할 이는 없었다. 어쩌면 이 소년의 희생도 무의미하였을지도 모른다.

-‘키사’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대, 세로완 이안다스의 올리스로 얽혀진 맹약 ‘케이사’의 힘을 거둘지 어라.

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너무나도 태연히, 언제나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로 나타난 유안은 그 말 한마디로 세로완의 올리스를 거두었다. 그를 옭아매고 있었던 힘이 사라지며 그 몸을 지탱하고 있었던 생명 또한 다하여, 가련한 그 아이의 생은 매듭지어졌다.

그와 동시에, 주체할 수 없이 온 몸이 떨렸다. 유안이 저 아이를 ‘케이사’로 만든 것도, 증폭된 증오로 배신한 것도, 그래서 내 앞의 소년이 피를 토하고 있는 것도.

모두가 내 죄다.

너무나 슬퍼서, 또 아파서, 어쩌면 감당 할 수 없었기에.

그리하여 지금, 유안은 그 작은 몸집으로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금, 넌 어느 때보다 부서져있어, 꼬마아가씨.”

당신은 그런 날 이곳으로 끌고 왔으면서.

“네가 그를 만나기 전 분명히 말했었어,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정을 주지 말라고. 그런데 넌, 그 선을 넘어버린 듯하구나.”

뒤돌아선 그 어린 그림자가 그렇게 잔혹해 보일 수 없었다.

“그러니 이건 그 대가야. 똑똑히 지켜봐둬, 네 아비가 지은 죄로써 도달하게 된 현재를.”

나는, 꼭두각시 인형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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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05 23:30 | 조회 : 1,043 목록
작가의 말
시연

이번화가 많이 짧습니다. 그리고 저번화가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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