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제 1차전(1)



마침내, 끝까지 저항하던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며 인위적인 빛만이 남았다.

그 순간, 아카데미 내 모든 학생은 순간이동 되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무작위로 떨어진 그들 위로, 유안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올리스의 게임, 1차전을 개막한다,]

예상했건만 아직 혼란이 가시질 않은 그들 위로, 유안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1차전의 규칙은 아까 말한 바와 같다. 운명은 그대들의 손에, 부디 잘 살아남기를.]


//


가온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아까 말했던 작전을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짠 것이지만, 요점은 간단했다.

그곳이 어디든지 ‘숲’,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비밀공간인 그 ‘나무’로 모이는 것 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엘이였다. 계획을 염두에 두고 그곳에 한번 가보았다. 레이첼은 머리가 좋은 올리스이니 만큼 그 복잡한 길을 외었겠지만.

텔레포트의 눈부신 빛에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일단 그곳이 어디인지 파악한 다음, 최대한 빠르게 숲으로 향한다.

주위를 살폈다. 어찌되었든 이 결계 내에서 치러질 게임이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학교 본관, 거대한 건물 정중앙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노을은 지고 없었다.

그러나 몇 미터 간격 내의, 누군가 서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가온은 창문으로 이동해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직은, 이렇게 피할 수만 있다면 죽이지 않아도 될 터이니.

몇초의 간격 사이, 서서히 다가오는 지면에 몸을 굴리며 내려선 가온은 최대한의 능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한 올리스는 그 능력에 비례해 단련된 신체를 얻는다. 최상위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신체계 중급과 맞먹는 운동신경이 있었다.

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풍경 사이로 방향을 잡으며 몸을 놀린다.

쾅-

방해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가온은 예상외의 공격에 잠시 주춤거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세 명의 올리스가 동시에 한 사람을 공격했다. 중력, 폭파, 올리스 억제의 힘이 삽시간에 가온을 몰아붙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서관 유리가 깨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올리스 억제가 이루어지기 전에 폭팔이 일어났으므로 불의 올리스가 본능적으로 가온을 방어했기에, 아무런 해는 입지 않았다. 다만, 중력 올리스로 억눌려진 몸에 칼이 바싹 대여졌다는 점이 문제였다. 올리스가 억제된 지금, 가온의 신체능력도 평범한 소녀에 불과했다.

억제의 올리스가 꽤나 고전하는 모습이 보였으나-가온의 올리스는 최상급이었으니, 당연한 터였다-솔직히 이 상황은 순식간에 끝날것이고, 그녀는 죽거나 강제로 그들의 팀에 합류될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정해. 죽을 것인지, 아니면 팀에 합류할 것인지.”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가온은 둘 중 무엇이 나을까 고민했다.

위협을 주기 위함인지, 가온의 옆에서 작은 폭팔이 일어났다. 평소라면 솔직히 장난치는 수준도 되지 않았을 텐데. 팔등에 붉게 화상자국이 나는 듯 했다.

‘셋 다 중위에서 중상위급. 상황을 더 끄는게 나을려나. 아마 저 억제 올리스는 조금만 더 있으면 힘이 빠질 것 같은데...칼을 들이대고 있는 중력의 올리스의 힘까지 더해져 버티고 있는 듯 하고. 그리고...’

가온은 거의 의미없는 일이란걸 알지만 머리에 얹혀저 있는 억제 올리스의 손을 밀어냈다. 꿈쩍도 하지 않지만 안색이 나빠지는 것이 손을 대고 있어야만 억제력이 발동 되는 듯 하였다.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 팀에 합류하라니, 너라도 좋다고 달려들 것 같냐. 그리고 너.”

그러면서 머리에 닿아 있는 손을 툭툭 건들였다. 움찔하는 것이 눈에 선했다.

“이렇게 재한적인 올리스라면 아무리 능력이 희귀하고 쓸모 있어도 지금 이 상황이 끝나면 버려질거다.”

도발적인 말에 발끈하며 중력에 올리스가 목에 더 바짝 칼을 들이댔다. 붉은 선혈이 생기며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날 계속 한 팀으로 붙잡고 있으려면 너희 샛이 계속 붙어 있어야 할 텐데. 지금 놔 주면 그냥, 너흴 죽이지 않고 가갰다 약속하지.”

잠깐의 침묵이 흘렸다.

“이게...!”

아, 역시 통하지 않은 건가. 단도로 내려찍는 모습에 그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바보같이 눈 감고 죽는 건 억울하잖아.

그러나 칼이 금속음을 내며 떨어지는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억제의 힘도 약하고, 중력의 힘은 완전히 사라져 몸을 일으켜 보았다. 일단 전체적으로 몸이 욱신거라고, 팔이 좀 익긴 했지만 사지 멀쩡하잖아.

올리스가 돌아오며 신체도 향상됐으니 이런 상처쯤은 곧 나을 것이었다. 뒤에서 솟아오르는 물의 힘을 느끼며, 방금전의 상황이 뒤바뀐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시연.”

뒤를 돌아보지 않은 체 말하며, 가온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미 그들은 시연의 힘에 반쯤 죽어가고 있었다.

“아덴 에이로나...너는...”

그 중 폭파의 올리스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잠시 기침을 콜록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원거리에 있는 그에게까지 닿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가온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귀족의 개로 들어간, 빌붙어 먹은 배신자야.”

그 말에, 옆의 두명도 덩달아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가온은 무표정하게 그들을 응시하며, 나지막히 말했다.

“난 너희를 살려주겠다고 했지. 그 기회를 버린건 너희들이야.”

동시에 불의 올리스가 작동하며 그들의 몸에서 열기를 빼앗아갔다. 말 한마디 더 잇지 못하고 순식간에 주검으로 변한 이들을 보며 가온은 눈물을 흘렸다.

그 능력은 비록 고통스럽지 않게 누군가를 죽게 하지만, 시동하는 자로써는 불을 사용하는 것보다 수백배의 힘이 들어가는 기술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버텼다.

방울지며 떨어지는 눈물에, 가온은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동시에 눈물을 닦으며,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그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그녀의 친구가 있었다.

에이로나가의 귀족이자 물의 힘을 가진 아이.

만약 그가 그 말을 들었다면, 분명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안해.”

그들에게 목숨을 앗아간 것은 저였다.

가온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겨우 달이 뜨기 시작했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길.

미안해, 그렇게 속삭이듯 중얼거린 소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


시연은, 지금 꽤나 놀란 상태였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으나 자신은 단지 가온이 있기에 반가워하며 그 앞의 아이들에게 물 좀 먹인 것 뿐 이였다. 그런데 운다. 대체 뭘 잘못했기에?

...솔직히, 시연은 가온이 우는 건, 더군다나 아무 이유도 없이, 처음 본 행동이었다.

저도 쓰러진 이를 이렇게 가까이선 보는 것은 처음이라, 꽤 놀란 터이지만 아마 올리스가 받치고 있던 기력이 다 되었거나 거의 반 익사상태구나, 하고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최상위급 올리스인 가온과 자신을 상대했으니, 거의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온이 중얼거리듯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내가 왜? 뭘? 내가 뭘 했기에 이러는데!’

속으론 수없이 외쳤으나 옆에서 울고 있는 가온에게 차 마 말 할 수 없어, 어떻게든 달래려 애썼다.

그렇게 울던 가온은,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언제 울었냐는 듯 그 방향으로 빛을 쏘았다. 그 쏘여진 빛에 나타난 이들은, 꽤나 의외였다.

“시연? 가온? 너희...”

7학년 A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레나, 혜민, 연우, 이루. 그들도 의외였는지,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깨뜨린 건 흙의 올리스를 쓰는 아이, ‘연우’였다.

“우린 너희랑 싸울 마음 따윈 없어. 피차 부상만 당하고 승산 없잖아? 그래서 제안하는데, 정원이 괜찮다면 같이 팀을 결정하는게 낫지 않겠어?”

그제 서야 가온과 시연의 얼굴이 밝아진다. 울어 붉어진 얼굴로 환히 웃으며, 가온이 말했다.

“그래.”

그들은 웃으며 숲 속 ‘나무’로 친우들을 인도했다.


//


율은 바람의 올리스를 이용하여 비교적 쉽게 ‘나무’를 찾아간 편이였다. 다만 아엘을 찾느라 그가 떨어진 곳 주위를 살펴며 오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한참은 늦었지만.

“바람의 올리스께서도 오셨네.”

레이첼이 태연하게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 율은 어느 상황에서나 저렇듯 태연하게 ‘보일 수’있는 것이 대단하다고 인정했다.

좁은 입구를 숙여 들어가자 가온이 밝혀놓은 빛 아래 학우들을 마주했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율에게 레이첼이 설명했다.

“내가 아덴과 가온에게 맡긴 게 이거였잖아. 같은 반, 최소 비슷한 수준의 올리스를 찾아오라고. 그들은 완벽하게 성공한 듯한데, 아엘은?”

사실이었다. 특수 능력계-텔레포트를 쓰는 레나, 흙의 올리스인 연우, 정신계-그중에서도 환각에 뛰어난 혜민, 신체계인 이루. 모두 다 7학년 A반이었던 만큼 강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저 애는 누구야?”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이였다. 거의 백발에 가까운 은발을 가진 소년.

“로완. 16세. 능력은 실체화이며 특히 무기 쪽에 탁월하다고 해. 죄다 힘쓰는 것밖에 없을 것 같아 데려왔어. 반대 있나?”

없었다. 다만,

“...그럼, 에드는?”

팀 정원은 10명. 시연, 가온, 율, 레이첼, 레나, 혜민, 연우, 이루 그리고 로완. 거기다 아엘까지 더하면 에드의 자리는, 없었다.

레이첼이 씁쓸히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에드윈 카엔 프롤르네.

“아마 그는... 오지 못할거야. 이미 ‘경계’를 넘어버렸으니까. 다시 살아서, 만나길 바라야지.”

숙연한 분위기가 감도는 그들에게, ‘판’이 갑자기 나타나며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빛을 내며 시연의 손에 떨어졌다.

[1차전 중반부에 접어들었지. 누군가는 다른이를 죽이고, 또 다른 누군가와 팀을 맺고, 그사이 어떤이를 그리워하니.]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그들에게는.

어느새 달이 머리 꼭대기에 떠올라 있었다. 마치 조롱하듯,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명심해라. 기한은 다시 해가 뜨고 저물 때 까지. 그전에 팀이 되지 못한 자들은, 서로를 죽일 뿐.]

아엘, 아리엘을 찾아야한다. 특히 율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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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3-26 19:22 | 조회 : 1,330 목록
작가의 말
시연

본격적인 게임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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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내 캐시 : 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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