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blow up (2)

찰박- 찰박-

기분 나쁜 바닥에 뿌려진 물,

후-하….

기분 나쁜 공기.

찌릿-

기분 나쁜 시선…….

"과연 악몽이라면 이 정돈 돼야지."

따각- 따각-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이건 나의 업보, 나의 죄……. 내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할 짐.

점점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고 어느새 짙은 안개 속에서 말 위에 올라탄 무언가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윽-

속이 울렁거린다. 평소엔 이 정도 즈음에서 깰 텐데…. 아무래도 이번엔 끝까지 가려나 보다.

"한…. 안녕. 오랜만이야."

한. 그는 나의 절친이다. 아니, 절친이었다.

"-내가 죽이긴 전까진……."

말 위에 올라탄 한은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큰 키에 백금 발이었던 녀석의 머리카락은 이젠 완전히 빛바랬고, 나에겐 항상 웃어줬었던….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나에게 웃어줬던 너의 얼굴은 이젠 뼈밖에 남지 않았구나. 온몸이 근육질에 보기 좋았던 구릿빛 피부가 녹아버려 이젠 허연 뼈밖에 남지 않았고, 너의 그 총명하던 검은 눈동자는 사라지고 그 자국만 남아있어. 널 보고 있는 난 어떻게 해야만 할까?

"넌 항상 내 꿈에 나타나서 그렇게 빤히 쳐다보다 사라지지. 널 따라가고 싶지만…. 네가 싫어할까 갈 수가 없어. 널 지금 당장에라도 껴안고 싶지만 네가 날 경멸하듯 쳐다볼까 두려워. 예전엔 널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지워지지 않아. 난 너에게 뭐길래 너는 이렇게 내 꿈에 나타나는 거야? 난 널 죽였어. 날 욕해도 시원찮을 판에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반응 없는 널 상대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지쳤다. 그래, 어쩌면 넌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걸지도 몰라. 알았으면 말해주지 그랬어. 그랬다면…. 넌 지금쯤 나 대신에 살아있을 텐데. 로빈에게도, 체르취 씨에게도 , 솀 선생님을 위해서도... 지금의 나보단 네가 더 필요했을 텐데.

너는 아직도 날 가만히 쳐다본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에 타고는 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런 널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한다. 그래, 오늘도 넌…. 우린 이러다가 꿈에서 깨는 거구나. 그리고 언제나처럼 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겠지. 그렇겠지.

"좋아해."

"……. 뭐?"

한이 말을 했다. 나에게.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고.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널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영혼……. 그래, 영혼에 무리가 왔어. 이제 널 다시 볼 수는 없을 거야. 날 악몽이라 생각했었지? 미안. 네가 정신을 잘 열어주지 않아 악몽이란 모습으로 만나야만 했어."

그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박-

녀석이 말에서 내려 나에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앞에 멈춰서선.... 입술을 포갰다.

"너, 너, 이게 무슨-!!"

난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이것도 미안. 근데 어쩔 수 없잖아."

녀석은 어느새 살아있을 때의 그 눈부신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다만 하나, 그의 총명하던 두 눈은.... 빛이 났었던 두 눈은 탁해져 제빛을 내지 못했다.

"이게 나의 마지막인걸."

"그럼, 그럼 어째서…. 어째서 나한테…?"

-말을 걸지 않은 거야?

"……. 네가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네가 처음으로 내 꿈에 나온 지 벌써 몇십 년은 됐는데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 그렇지."

말문이 막힌다. 적어도, 적어도 50년이다. 내가 200살 때 중순쯤에 한을…. 죽였으니까. 지금은 300살이 좀 넘었다.

"그냥 말을 걸지 그랬어!! 말을 걸지 그랬어!! 나는, 난... 그것도 모르고!!"

쓰담

녀석은 나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그럼 네가 상처받을 거 아냐? 그럴 바에야 내가 100년을 더 기다리지."

"……. 고맙다. 아직도 날 좋아해 줘서. 그런데, 알잖아. 나 이번 생에선 누굴 좋아할 수 없어."

"……. 유희를 하러 간다며?"

"너 설마…. 따라오려고?!?"

"어."

내 기억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조건으로."

"……."

"물론 어느 정도 힘이 길러진 뒤엔 저절로 돌아올 거라 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다치지만 마."

"……. 나보단 널 먼저 걱정해야 할 건데?"

"왜?"

"너, 설마. 이번에 네가 갈 세계에 관해 설명 못 받은 거-"

촤악-

"어풉풉!!!"

***

촤악-

"어풉풉!!"

내 머리 위로 물벼락이 떨어졌다.

"아! 드디에 일어났네!"

정자세로 누워있던 내 몸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떠 봤더니 어떤 예쁜 남자가 서 있었다.

"으힉!"

"풋! 크크큭. 체르취가 보낸 아이가 궁금해 안내자를 담당했는데……. 그냥저냥 괜찮은 것 같네."

"초면에 무례하시네요."

"……. 너."

그는 갑자기 나에게 훅 다가와 말했다.

"날 뭐라고 생각하지?"

……. 아니, 장난하나.

"방금 안내자라면서요?"

-약간 똘끼가 있어 보이지만….

"맞아."

싱긋-

그는 웃으며 말했다.

'뭐지, X신 인가?'

그때 내 눈엔 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그래, 마치 하늘을 박아 놓은 듯한 머리카락-"

"청호(靑狐)들의 왕이다."

.... 어쩌라고?

"……. 시작하죠."

"뭘?"

"제 유희를 위한 일이요,"

"푸훗! 좋아. 따라와."

그는 나를 데리고 걸었다. 걷고 또 걸어 어느 큰 문 앞으로 왔을 때쯤 나에게 말했다.

"이겨. 이기면 모든 게 다 네 거야."

"그게 무슨-"

문이 열리고, 남자는 날 밀어버렸다.

쾅!-

***

자칭 왕이 떠나고 신전 같은 곳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어요?"

이 방은 매우 하얗고 하얗고 하얗다.

그냥 깨끗하다고. 먼지 하나 없이.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은 따뜻하기만 하고, 가끔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들릴 뿐 아무 이상이 없었, 잠깐. 문의 위치가 아주 약간 바뀐 것 같은데? 그래, 한 10㎝ 정도 옆으로.

자세히 보니 주변 벽들도 뭔가 좀 이상했다. 살짝 갈라지거나, 움푹 팬 곳이 꽤 많았다.

파삭-

내가 더듬거리면 만지자 벽 일부분이 과자 부서지듯 부서졌다.

"음…. 혹시 손해배상을 요구하진 않겠지……? 뭐, 줄 것도 없지만 말이야."

그러던 중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어 벽에 정신을 집중했다.

마법의 흔적이다. 시간의 마법 흔적! 100년 전에 마지막으로 본 시간의 마법…. 파괴, 사형, 환생자…?

벽에 박혀있는 시간과 흔적, 기억을 읽으니 단편적인 정보가 떠올랐다.

"으음…. 대~충 날 시험한다는 것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

돌에 박힌 마법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방에 박힌 마법진을 기억한 패턴으로 해독하면 대충 감이 딱 온다. 아마도…….

"환생 그로 인한 대가? 아니 아니, 난 유희를 즐기고 싶은 거지 환생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

패턴 분석 결과…. 나는 유희가 아닌 환생을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난 아마 스크롤을 찢자마자 뒤졌거나, 아니면 신의 눈을 피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 것. 그래서 이 방은 날 '유희'를 목적으로 온 평범한 인간이 아닌, '환생'이라는 편법을 사용하기 위해 온 인간이라는 점……. 이 무슨 개 같은 일이지??

"허, 참, 나, 아니, 이게 무슨……."

그럼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 난 여기서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거야??

"아니! 그럼 그 시험 빨리 좀 시작하던가!!"

쿠궁!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 한가운데에서 돌기둥이 올라왔다. 곧 그것은 절반가량 올라왔고…. 이윽고 천장에 닿았다.

쿠웅!

"미친……. 천장을 뚫고 지나가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기둥은 저 혼자 도도히 빛나며 밝게 빛났다.

"……. 설마 영화처럼 막 저 기둥을 만지면 다음 스테이지가 열려서 막 모험을 떠나게 된다던가?"

……. 내 생각이지만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

뚫어져라 쳐다만 보다 지쳐서 기둥 쪽으로 다가가 눈으로 자세히 살펴봤다.

"삽입된 마법 진도, 마법도, 마력도, 하다못해 과학적 기술이나 암살자들이 쓸법한 함정 같은 것들도 보이지 않아……. 뭔 개 같은 일일까…?"

설마 수동인가?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기둥을 톡. 건드려 봤다.

구구구궁!!

[시스템에 무언가 접촉했습니다]

"뭐시스템 주변에 생물체가 감지됩니다.]

[신상 조사 중]

[조사 완료! 나이 343세, 키 169.5, 몸무게 49, 감정 상태는 어리둥절, 화남, 될 대로 돼라!!]

"뭣!!"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의 안내를 맡은 안내자 칸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하얀 기둥에 파란 이모티콘이 나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흡사 스머프*(짜리몽땅 퍼런 난쟁이족. 지혜롭고 지혜로우며 인간을 그저 그리 생각한다.)같았다.

"으음…. 유은하라고 해."

[그럼 이제부터 당신이 가게 될 행성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줄게요]

이모티콘이 사라지면서 행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 행성의 이름은 '지구'예요. 당신이 살던 지구의 음…. 진화된 버전이라고 하죠. 바다와 육지의 비율은 60:40 거의 반이죠. 이쪽 지구의 인구는 측정 불가! 하루에도 몇만 명이 죽고 몇만 명이 생기는 판국에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게다가 아이의 탄생을 신고하지 않는 사람도 고려하면 지구의 1.5배~3배 사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돈 워리! 행성의 크기가 똑같아도 바다 밑의 수중도시가 건설되어 있어서 사람에 치여 죽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요…. 전쟁터 빼곤..]

"그럼 전쟁이 일어난단 말이야?"

[네. 그것도 요즘엔 더 심해졌어요. 어떤 미치광이 왕이 행성을 제패하겠다는 목적으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으니까요. ]

"그럼 딴 행성을 못 가는 거야?"

[아쉽게도 당신의 스크롤은 행성을 제비뽑기 식으로 뽑는 거여서 한번 정해진 곳은 바꿀 수 없어요]

하아 이런 곳에 날 보내서 어쩌겠단 거지…?

[이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제일 중요한 걸 지금부터 알려드리죠. 눈, 귀 모두 활짝 열고 들으세요. 정! 말! 중요한 얘길 할 거예요!!!]

삐-삐-삐-

갑자기 이명이 들린다.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결국.....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쾅!]

"……. 어?"

2
이번 화 신고 2018-08-11 21:41 | 조회 : 729 목록
작가의 말
뽀송이불

음... 초고속 전개를 위해 달려왔습니다. 재밌게봐주세요!! ?□?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