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 CHAPTER 2 ] -( 4 )
Antagonistic Balance : 적대적 균형





뜨거웠다. 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맞대어도 그 뜨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웨인이 혀를 내밀어 속곳 위를 햝자 불룩 솟아있던 부위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부풀어올랐다. 긴장감에 팔딱 팔딱 뛰는 심장을 잠재우며 웨인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오직 그의 그림자 뿐. 얼굴 위엔 어두운 그늘이 져 있어 그의 표정을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가끔씩 그가 고개를 까딱일 때마다 구석에 놓인 촛불 빛이 반사된 그의 붉은 눈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것은 마치 맹수의 것처럼 서늘하게 빛났다가 곧 유령같이 사그라들곤 했다.



"하...."

"흐, 후읍......"



다시금 위험한 향기가 몸을 덮쳐온다. 웨인은 어깨를 절로 움츠러트렸다. 대공의 다리를 절박하게 붙잡은 가냘픈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대공의 머리카락 만큼이나 새카만 기운이 웨인의 발목을 타고 올라온다. 발뒤꿈치에 입을 맞추듯 부드럽게 마주 닿더니, 검은 물결을 일으켜 발가락부터 무릎까지 단번에 제 기운 속으로 휘감아 넣었다. 웨인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휘청거렸다. 분홍빛 혀와 그에 잔뜩 문질러졌던 대공의 속곳 사이로 불투명한 타액이 진득한 선을 만들어냈다.



"으, 으아....."

"가만히 있어."



당황한 웨인이 몸을 함부로 빼려 들자 대공이 웨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웨인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공포에 잔뜩 질린 눈빛. 주체하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그의 손짓. 대공은 몇 차례 한숨을 내쉬었지만, 웨인이 진정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다. 두려움에 헐떡이던 웨인의 숨소리가 잦아들었을 때쯤, 대공은 웨인의 머리카락을 놓고는 제 웃옷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는 슬리브 버튼을 풀고, 소매 고정용 암 가터를 끌렀다. 그가 벗은 검은 셔츠와 칼라 체인이 러그 위로 떨어졌다. 드러난 그의 상반신은 울퉁불퉁 각잡힌 근육과 구릿빛 피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뜨겁게 열이 오른 아랫도리 때문인지 상체에는 구슬땀이 몇 개 맺혀있다.



"입."

"으, 으에?....."

"입 벌리라고 했잖아, 아까."

"에....."



욱신거리는 목구멍 탓인지 발음마저 불분명하게, 이상하게 나갔다. 입술 밑으로 뚝 뚝 흘러내리는 침을 닦을 여유도 없이 웨인은 입을 벌려 다시금 대공의 속곳 위를 머금었다.



"햝지만 말고,"

"우, 우움....."

"빨아들여."

"웁..... 흐으..."

"그래. 그렇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그의 목소리. 굵고 짧게, 간결하게 끊어지는 그의 강압적인 명령. 웨인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제 뱃속 어딘가에서 슬며시 올라오는 이상야릇하며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았다. 생소한 느낌이라 조금 거북했던 것도 같다. 어느덧, 웨인을 위협했던 검은 기운은 다리를 타고 올라와 배꼽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후우....."



내내 무감각한 표정을 짓던 대공이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죽을 각오로 열심히 혀를 놀리던 웨인에게 그는 숨 돌릴 틈 조차도 주지 않았다. 그의 속곳이 거친 손동작에 의해 주르륵 흘러내렸다.



"으, 으...."

"물어라. 이가 닿지 않게 조심하고."



웨인은 그것의 어마무시한 크기에 경악했다. 대공의 양물은 실핏줄이 울퉁불퉁 돋아난 것이 보일 정도로 컸고, 흉기만큼이나 섬뜩했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에 웨인이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입술이 굳게 닫혔고, 다문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웨인이 입을 다무는 것을 본 대공이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후폭풍이 닥칠 것이란 두려움 속에 잠기며, 웨인은 제 무릎 위로 양손을 주먹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뭘 망설이는 거냐."

"......."

"그것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네놈이 남창처럼 햝아댔던 것이다. 이제 와서 순결한 척 빼는 것이 더 우스운 짓이지 않느냐."

"......."

"아니면 생각이 바뀐 것인가?"



대공의 입꼬리가 비릿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의 눈빛은 잔혹한 짐승의 빛깔을 띠며 서늘하게 빛나고 있다. 사슴의 네 다리를 압쇄하고 그의 얇다란 살가죽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넣을 것만 같은 흑표범의 눈빛이었다.



"예를 들어,"

"........."

"나를 회유하고, 설득시킬 바에야 네 시종과 함께 죽는 길을 택했다던가."

"흐읍.. 헉...."



웨인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에 바위가 내려앉은 듯 답답해서 버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 대공에게 저의 목숨은 지나가는 벌레의 목숨보다 하찮고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그런 그가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그 힘에 쓸려나가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저 혼자서 피해를 짊어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건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테이룬의 명줄이 달려있다. 웨인의 손에 끊어질 듯 위태롭게 쥐어져 있었다.



'그의 말이 맞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어.'



웨인이 입을 벌렸다. 그의 양물 끝을 조금 물었다. 웨인의 작은 입은 그 정도도 받아들이기 버거워했다. 입 안에 그의 것이 가득찼다. 동시에 대공이 풍기던 위험한 향도 콧속을 찢고, 파고들 듯이 올라왔다. 후각을 얼얼하게 마비시키는 것 같은 향이었다. 입 속에 퍼지는 비릿한 맛은 핏물을 들이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웨인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입 안 깊숙하게 파고드는 그의 것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목구멍을 찌르는 그의 것에서 드문드문 뜨끈한 것이 흐른다.



"우으읍.... 흡, 끅...."



대공은 웨인의 머리를 휘어잡았다. 뒤통수를 짓누르는 대공의 손길에 뜨거운 흉기가 목구멍 속을 더욱 더 깊숙이 찔렀다. 켁켁대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웨인은 얌전히 제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작은 입은 그게 한계였다. 대공의 커다란 손이 웨인의 머리를 완전히 움켜잡았다. 깊게 끌어당기는 느낌에 웨인이 감은 눈가를 떨었다. 고통을 버티지 못한 눈물샘이 또 다시 눈물을 터뜨린다.



"웁...웁..."



웨인이 나지막히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었다. 신음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목구멍에 양물이 박힌다.



"컥, 크헉, 끅...... 흐으.... 흐...."

"허약해서 그런가. 정말 조금도 버티지 못하는군."



대공은 헛웃음을 지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웨인이 뱉은 타액과 제 씨물이 뒤엉킨 것이 보였다. 아직 제 안의 것을 내보내지 못한 양물은 꺼떡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공은 입을 가리고 기침하는 웨인으로 시선을 옮겼다. 괘씸한 것. 일이 끝나기도 전에 뱉어버리다니. 당장이라도 대공은 웨인의 머리채를 잡고 하얀 뺨을 내리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몸에 열이.....'



방금 전, 대공의 손등에 잠깐 스쳤던 웨인의 이마가 뜨거웠던 탓이다. 화덕에 데인 것 같은 상기된 뺨 위로는 초점을 잃은 푸른 눈동자가 있었다. 증상을 보아선 감기 몸살인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이었던지, 대공은 평소와는 다르게 자비를 베풀었다. 정말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본인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후우....."



대공은 탁자 위에 놓인 실크 손수건을 집어 제 아래를 대충 닦았다. 좀처럼 식지를 않는다. 가라앉지 않고 고개를 당당히 내민 제 음경을 바라보던 대공의 입에서 다시금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의 무례한 실수를 용서한 것만으로도 놀랄 지경이다. 그런데 답지 않게 흥분까지 했다. 머릿속은 갈수록 싸늘하게 식어가는데, 아랫도리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져만 갔다.



"하..."



무슨 연유인가.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했다. 평소의 관계와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상대가 천사라는 점. 은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졌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제정신이 아니군.'

'천사를 상대로 발정하다니....'

'그래도..... 생각보다 불쾌하지는 않았어.'



대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을 감지 않아도 느껴진다. 방금 전의 그 생생한 느낌을. 뜨끈한 입 속에서 어색하게 움직이던 혓바닥의 놀림, 제 것을 찾은 것마냥 찰싹 밀착해 오는 보드라운 볼 안 쪽의 촉감, 마찰을 반복할 때마다 움칠거리며 들리는 입천장까지. 확실히 악마의 것과는 달랐다. 최근에 이 정도로 흥분한 적이 있었던가. 대공은 스스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예상을 못했군.'



웨인을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그의 의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천사에게서 나오는 의외의 관능미에 그는 알게 모르게 매료되고 있었다. 확실히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대공은 발걸음을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 아직도 쓰라린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던 웨인이 그를 돌아보았다. 침대와 대공을 잇따라 바라보더니 얼굴을 굳힌다. 하얀 뺨이 창백한 낯빛을 드러냈다.



"이리 와."

"......."

"아직 끝나지 않았어."



웨인의 시선이 꺼떡이는 대공의 중심으로 향했다. 아직도 그의 것은 크고 거대하다. 웨인을 비웃듯 고개를 떳떳하게 쳐들고 있었다.



"우읏......."



눈물을 머금고 웨인이 다가왔다. 대공은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다 침대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어지간히도 그 시종놈을 아끼나 보구나."

"으흡......"

"그렇다면, 나와 내기를 하는 건 어떠냐."

"......"

"너와 네 시종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그, 흐으, 그게 정말, 저, 저....."



웨인의 목에서 갈라진 단어들이 힘겹게 흘러나왔다. 신음 소리인가, 대답인가. 알아듣기 어려운 볼품없는 목소리였다.



"단, 네가 버텼을 경우에만."

"흐으.... 무, 무슨......"

"결합이 진행되는 동안 기절하지 않는 것이 조건이다. 총 세 번 파정할 동안 버틴다면 내가 너희 천사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지도 모르지."



거짓말. 거짓말이다. 웨인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도 알았다. 그가 말하는 자비라는 단어는 이미 새카만 그림자로 뒤덮인 지 오래였다. 그가 베푸는 것은 더 이상 자비가 아니다. 구원을 말하는 입술 뒤로는 끝없이 펼쳐질 고통이 보였다.

날개가 잘려나갔던 부분이 저릿저릿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잔혹한 의도를 알아챘음에도 불구하고, 웨인은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앞에는 낭떠러지가, 뒤에는 붉은 눈을 가진 거대한 짐승이 떡하니 주둥이를 벌리고 있다. 그것은 날개를 빼앗긴 무력한 천사의 힘으로는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불가항력이다.

16
이번 화 신고 2019-11-26 19:29 | 조회 : 4,008 목록
작가의 말
새벽네시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