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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테시스 펠레이시아. 내 친오빠놈이다. 솔직히 오빠라고 부르기도 짜증나는데 일단 어쩔수없지...하..왜 부르는건데, 이 오빠놈아! 아침부터 진짜..아니 아침은 아닌가? 큼..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이쯤이면 내가 왜 유테시스를 싫어하는지 궁금하겠지?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테시스는 열렬한 셀레아의 추종자였다. 좋게 말하면 서브남주였달까? 근데 좀 적극적인 서브남주였지. 자신의 이름이랑 셀레아의 성이 비슷하다고 부모님 사진을 구겨질 정도로 끌어안았을 정도니까. 그래봤자 세글자 같을 뿐인데. 갑자기 생각난건데 우리 집안은 왜 다 배드엔딩인거지. 나도 그렇고 유테시스도 그렇고 남주랑 여주를 짝사랑하다가 인생 망한거잖아? 아무튼 그건 넘어가고, 셀레아를 사랑하던 유테시스와 셀레아를 증오하던 나. 누가 봐도 맞지않는 조합이잖아?

''음? 에일린 왔어? 앉아봐. 너한테 좋은 소식을 들고왔지~.''

...이 놈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왜 갑자기 친한척이지.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여버리고 싶어했잖아. 물론 그 이유는 언제나 셀레아였고. 나는 니가 나를 불러서 명치를 치던가, 머리채를 잡던가, 심하면 니 허리에 달랑달랑 달려있는 그 멋진 검으로다가 내 목에 겨눌꺼라고 생각하고 호신용 단검까지 들고왔는데.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나랑 유테시스는 서로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어쩌면 내가 셀레아를 싫어했던것 만큼. 갑자기 확 바뀐 그의 태도에 나는 언제든 꺼낼 준비를 하던 단검에서 손을 놓쳤다. 드레스 안에 단단히 고정시킬때가 있었기에 마련이지 안 그랬으면 더 볼것도 없이 내 다리를 베고 지나갔을 것이다.

얼굴을 얇은 종잇장처럼 구기고 표정을 굳히자 유테시스는 왜 그래?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이리 오라 손짓한다.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눈으로 유테시스를 위아래로 훝으면서 주춤주춤 가까이 다가가자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말이 들리는듯 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하지? 유테시스가 손으로 가리키는 의자에 앉자 유테시스가 자신의 책상 서랍을 뒤적거린다. 저 웃는 얼굴 적응안돼. 나중에 옷갈아 입으면서 보면 소름돋아 있을지도. 유테시스가 서랍 안쪽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무엇인가를 찾는 모습이기에 나는 그제서야 그에게서 눈을 떼고 다른 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 여기 들어와본지 오래됬는데.

그가 셀레아에게 반한지 일주일쯤 뒤부터 그는 내가 셀레아를 괴롭히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날 나 엄청 혼났었지 아마?'

몇 번 타일렀음에도 내가 계속해서 셀레아를 괴롭히자 그는 나를 포기하고 적대적으로 나를 대했다. 맹목적으로 셀레아를 따르기 시작한것이었다. 그전에는 가끔이라면 가끔 자주라면 자주 드나들던 집무실이었는데 그때 이후로는 방 자물쇠를 완전히 바꿔버렸었다. 물론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러고보니 지금의 집무실은 내가 드나들던 그 때의 방과 똑같았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얇은 깃펜들과 꽤 두껍게 쌓여있는 노트, 머리가 긴 그를 위해 어렸을적 내가 선물했던 남색 비단끈까지, 모든게 그대로였다.

워낙에 깔끔한 그였기에 다른 것들은 이해하겠는데 없어야할 물건들이 보였다. 내가 많이 썼던거나 선물해줬던건 다 버렸었는데. 음..빼먹었을리가 없을텐데, 그가 시종을 시켜 물건들은 치웠을때 가장 먼저 치워진게 내가 줬던 비단끈이었다. 그 뒤로 머리카락도 잘랐었지. 그나저나 나 얼마나 과거로 온거지. 이게 아직 남아있을 정도면 적어도 5년? 달력을 찾기위해 책상 위로 눈을 돌렸더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번째 서랍을 찾아보고 있었다. 깔끔했기 때문에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깔끔했기 때문에 좋은점도 있었다. 예를 들면 물건 찾기가 쉽다는 점?

자신이 넣어둔 장소를 착각한건지 머리를 긁적이는 그를 잠시 보다가 고개를 살짝 빼서 책상 위의 달력을 보자 달력의 제일 위부분에 금색의 잉크로 247이라는 숫자가 쓰여져있다. 어디보자, 내가 죽은 날이 252년 11월 쯤이었으니까. 내 예상이 딱맞았네. 괜시리 뿌듯해진 나는 혼자 우쭐해하며 어개를 살짝 으쓱거렸다. 음..그쯤이면 아직 괜찮을 때였지.

'좋아, 아직 별 사건 없이 조용히 있었을때니까 더 잘됐네.'

마침 찾던 물건을 발견했는지 그는 숙이던 허리를 펴고 환하게 미소짓는다. 친할때였던걸 알았어도 아직은 무리야. 가족 사이였다가 틀어졌던거라 그런지 너는 아직 어색해.

''그래서 나는 왜 부른건데?''

아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나네. 내가 존댓말을 했었나? 아니면 그냥 편하게? 기억을 찬찬히 살피며 일단 편하게 말을 꺼냈다. 본의 아니게 좀 삐딱한 말투였지만 나한테는 그게 더 편했었으니까. 그랬더니 나와 똑 닮은 은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올린다. 이게 아니었나? 급하게 요 를 덧붙여 말하자 자신의 입술을 살짝 빼고 중얼거린다.

''우리 에일린이 뒤늦게 사춘기가 온건가..왜 갑자기 말투가 딱딱해진거지? 혹시 켈로이스랑 뭔 일 있었나? 시녀들한테는 삐딱해도 나한테 오면 말꼬리도 좀 늘려주고 그랬는데...''

''ㅇ..아니야 오빠아아. 내가 심심해서 장난 좀 쳐봤지롱?? 왜 그래애, 계속 표정 그러고있을꺼야?''

뭐라고 더 꿍얼거리려 하던걸 급하게 막았다. 짐짓 삐졌다는 표정을 지어주며 지금 휘어진 눈꼬리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힘을 쏟고있는걸 너는 모를거다.

이제 생각났다. 우리 부모님이 마차 사고로 돌아가신 245년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나와 유테시스 사이는 가장 돈독한 오빠와 여동생 사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흔히 소설에서나 볼수있는 '에이 이런 오빠가 세상에 어딨어.' 라는 말의 이런 오빠 역할이었달까? '그런 오빠도 변하게 만들정도로 셀레아가 매력적이다.' 라는 내용을 어필하기 위한 대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으로 얘한테 친한척 해야한다니, 생각만해도 성직자가 되어 오 하나님.. 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오빠! 나 왜 부른거야?''

그래 빨리 말 좀 해봐. 나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아아..우리 집으로 티 파티 초대장이 왔어. 황궁에서 열리는 티파티.''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입꼬리를 씨익 들어올린다.

''켈로이스도 올거라는데? 황제께서 인장까지 찍어 보내셨다고. 이참에 우리 여동생님께서 좋아하신다는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나 한번 보러갈까?''

켈로이스의 이름을 듣자마자 멍해진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유테시스가 나를 짓궃게 놀린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나는 싫어서 이러는거라고! 하물며 동화책에서는 내가 켈로이스를 쫓아다니는 동안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던 유테시스가 켈로이스의 옆에 우아하게 서있는 셀레아를 보며 반하는 내용이었다.

''하하..아니야 오빠. 안가는게 좋을것 같아.''

''음? 왜? 지금 당장 준비할거라고 패션쇼부터 벌일줄 알았는데.''

눈꼬리를 길게 빼며 눈웃음을 짓는 유테시스는 내가 봐도 예쁘..아니 잘생겼지만 그런거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되는거지. 사실은 우리가 사는 이세계가 동화책이야? 켈로이스는 어차피 셀레아랑 결혼할꺼야? 너는 셀레아한테 사랑에 빠진 서브남주 역할로 비참하게 끝날꺼야? 예전에 보던 소설에서 여주가 답답하게 다 비밀로 하길래 왜 저러는거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유테시스에게 말해줬을때 비밀을 지키리란 보장도 확신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끌려갈까봐 조금 겁나기도 한다. 결국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해내지 못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음? 뭐야뭐야. 설마 켈로이스랑 사이가 틀어졌다거나..아니면 마음이 식었거나 한거야, 응?''

와 내가 할 변명을 니가 다 해주네. 그래, 그 변명 참 괜찮다. 마땅한 변명거리가 유테시스에게서 튀어나온것을 듣고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불안하게.

''실은 황제폐하께서 오랜만에 너를 만나고 싶다고 초대하셨거든. 켈로이스는 반대했던걸 황제께서 밀어붙이셔서 초대장을 하신건데...''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가 않냐..나는 황제폐하께 약하다.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때 어머니의 친구로서 우리를 자식처럼 신경써주시던 분이 황제폐하셨으니까. 내가 질투에 미쳐있을때도 폐하께서는 마치 어머니처럼 타이르시고 응원해주셨다. 아 참고로 우리 제국의 황제폐하께서는 여자시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이렇게 나오면 어쩔수없잖아.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수없잖아. 내가 가서 켈로이스에게 붙어있지만 않으면 셀레아랑 우리 오빠놈이 엮일 일도 내가 엮일 일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아까 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희미하게나마 웃을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

***

이전에 봤던 셀레아와 켈로이스의 결혼식에 비하면 수수한, 하지만 그렇다 해도 눈이 부신 티 파티장이다. 결혼식때 사용했던 홀은 아닌것같은데 그럼 황궁에는 이런 홀이 몇 개나 있다는걸까? 그래도 맘 놓고 구경에 정신을 팔고 있을수는 없었다. 레카이나 황제의 총애를 받는 집안이 바로 우리 펠레이시아 였으니까, 뭐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가식적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사교계의 여인들에게 대충대충 손을 흔들어주며 셀레아를 눈으로 찾고있었다. 그러다가도 유테시스가 부르면 금세 표정을 바꾸고 왜 오빠? 하고 애교를 떨기도했다. 이 시간이 그냥 무사히만 지나가라.

''펠레이시아 영애, 황제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내가 하도 안오니까 그 쪽에서 직접 나를 불렀나보다. 나는 말을 전해준 시녀에게 자연스럽게 웃으며 고마워요 하고 말을 꺼냈다.

''오빠! 오빠도 같이 가자!''

너를 혼자 둘 수는 없지. 내가 니 감시하면서 붙어있어야 되는데, 안 그래?

''음? 지금까지는 폐하를 보러갈땐 나를 떼놓고 갔으면서?''

아마 폐하와 켈로이스에 대해 얘기하면 셀레아의 얘기가 튀어나오니 떼어놓고 갔을텐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셀레아를 욕할때 폐하의 표정은 딱히 좋지않았었다. 그냥 내가 얘기하니까 들어준 정도? 조금 찜찜하네. 그래도 이제까지는 별말 안했을테니 괜찮겠지?

''에이..오빠도 참...이제 괜찮으니까 같이 들어가자아.''

거부하지 말고 들어가자! 넘어오라고 제바알. 셀레아를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도 모르는데! 솔직히 너를 싫어하긴 했어도 예전에는 아니었단 말이야. 지금의 나는 너를 엄청 좋아하는 상태여야 된다고! 너를 또 서브로 만들기에는 양심이 찔린다고..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폐하께서는 너를 부르셨으니까..음 이렇게 하자. 내가 폐하의 방문 앞까지 같이 갈께. 누굴 그렇게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나와 만나봤자 안좋을것 같으니까. 거기는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지?''

얘 혹시 예언자야? 그런 설정 있으면 말 좀 해줄래? 아니 얘 직업은 둘째치고 어떻게 안거지?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자 싱긋 웃으며 머리를 장난스레 헤집어 놓는다.

''니 표정만 봐도 딱 나오지. 니가 누굴 불안하게 찾는지 궁금한데?''

이것봐 또 맞췄잖..아니 나 표정이 그렇게 티가 많이 나나? 양 손으로 볼을 주물럭거리자 그가 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치..놀리고있어. 일단 같이 가주기로 약속한거다?''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고 그를 째려보면서 그에게 팔짱을 단단히 낀다. 분명 서로 맞지않는 행동이긴 하지만 이 행동이 지금 상황에는 딱 맞는 아이러니함이었다.

***

''부르셨어요, 폐하?''

가볍게 청보라색 드레스 자락을 들어올려 인사를 하자 폐하께서 부드럽게 미소지으신다.

''매번 말하잖니, 격식차리지 않아도 되니 자주 얼굴보러나 오라고.''

살짝 숙인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부드럽다. 바보같이 웃음을 짓고 그녀를 껴안았다. 땋아서 길게 늘어뜨린 나의 은빛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길에 기분좋게 흔들린다. 잠시 이어진 포옹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우리 둘은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그저 모녀 사이로 보이리라.

''오늘은 청보라색 드레스네? 미로에시도 자주 입었었지.''

''일부러 새로 산거에요. 폐하보러 갈때 입으려구요.''

티 파티날이 되기 전 폐하를 볼때 내가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었었다. 셀레아를 만난 후로는 생각해 볼것도 없이 셀레아 욕만 해댔을테니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그 전 내용만 떠올리려니 상당히 힘들었다. 멍 때리다가 계단에서 드레스 자락을 밟고 넘어졌었다. 그때도 실린이 그 검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나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굴렀었지. 마음같아서는 칭얼거리며 넘어졌던 일을 말하고 싶었지만 폐하께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생각하다가 그랬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다시 한번 본 동화책 속에서의 내용까지 끄집어내 보았지만 애초에 셀레아의 위주로 적혀있는 동화책 내용에서는 악녀였던 나와 여황제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실을 필요가 없었다. 그전의 기억을 끄집어보기에는 대략 8년은 된 일이라 머리 속에서 새하얗게 지워져있었다. 결국 나는 내키는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어차피 셀레아를 만나기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기억만 다를 뿐이지 똑같은 사람이니까 별달리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의 그런 생각은 맞아들었다. 오히려 그녀는 나의 드레스를 보고는 자신의 친구였던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잠시 씁쓸하게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향하던 폐하께서는 내가 그녀의 손을 잡자 다시금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다.

''아 미안하구나, 그 색이 너무 반가워서.''

''괜찮아요, 폐하.''

금세 얼굴에서 쓴 미소를 지워내는 모습은 자신의 기분을 감춰내는 황제라는 직분의 버릇이었기에 나는 옆에 앉은 그녀의 손을 더 힘을 주어 잡았다.

''그래서 켈로이스는 잘 만났니?''

윽..올것이 왔다. 자신의 아들을 좋다고 쫓아다니다가 이제와서 갑자기 싫다고 하면 어느 누가 좋아할까. 나중을 생각하면 솔직하게 얘기하는것이 맞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와는 달리 처음 만났을때처럼 장난기 어린 순수한 미소를 보자 더 힘든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 싫다고 하는게 더 이상하겠지.

''아아..저 그게...이제 저 켈로이스 안 좋아..해요.''

그녀의 눈치를 봐가면서 슬쩍 잡았던 손을 놓고 말하자 그녀가 검은 눈동자를 크게 뜬다. 역시 잘못말했나.

''어머어머..왜 그러니? 켈로이스가 뭐 잘못했어? 아니면...혹시 뭐 들은거라도..''

이렇게 말하는 그녀가 순간적으로 표정에 당황스러움을 드러낸다.

'''에..그런건 아니고요. 그게 아니라 계속 저만 매달리는 것도 이제는 힘들고..그래서요. 솔직히 제가 누구한테 계속 매달리고 그럴 성격은 아니잖아요?''

동화책을 듣고난 뒤의 솔직한 내 감상이었다. 원래대로 말하면 악녀로 산 것에 대한 화가 우선이 되어 켈로이스의 성격이 짜증나고 재수없다 라고 말해야 하지만 그의 어머니 앞에서 더욱이 내가 제 2의 어머니로 생각하는 황제 폐하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진짜 정신이 나간거지.

''하아...그래?''

안도감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 얼굴이었지만 금세 표정을 다시 바꾸셨기 때문에 그 부분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도대체 내가 뭘 들었다고 생각하시는걸까. 내가 켈로이스를 싫어하는 장면이 동화책의 내용에서 나왔을리도 없을뿐더러 나왔다해도 세세히 설명되있지는 않을 부분이라 쉽게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럼 유테스타스 영애는 이제 괴롭히지 않는거지?''

아까는 당황하시더니 이번엔 꽤나 기분이 좋으시다. 내가 셀레아를 괴롭히는게 그렇게나 악독해보였나.

''네. 제가 켈로이스를 안 좋아하는데 왜 굳이 셀레아를 괴롭히겠어요.''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자 나의 말에 기분이 좋다는 것은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신다. 뭐 금방금방 표정이 바뀌는것 보다는 이 편이 나도 좋지만.

''다행이다. 네가 유테스타스 영애에게 무슨짓이라도 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네 눈빛이 정말..''

흘깃 눈치를 잠깐 보시더니 이내 말을 흐리신다. 저도 알아요, 제가 나쁜년이었다걸.

그 뒤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짧게 말을 주고받았다. 폐하께서는 셀레아의 이름이 나올때마다 내 눈치를 조금씩 살폈고 나는 그때마다 아무일도 없다는듯 웃어넘겼다. 마음같아서는 화려하고 넓은 홀이 아니라 그녀의 곁에서 티 파티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지만 내가 단속해야할 유테시스가 바깥에 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는 해도 몇명은 돌아다니기 마련이고 시녀들이 자신들끼리 웃고 떠드는 가십거리의 대상이 그가 되게 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렇게나 싫어했는데도 그의 뒷말이 나오는게 싫다니, 이게 무슨 기분인지.

''그럼 전 이만 가볼께요.''

아쉬워하는 그녀의 표정에 순간 유테시스 따위 버리고 그냥 여기있을까 했지만 그래도 내가 억지로 따라오게 한건데 하는 죄책감이 생겨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 또 놀러오렴. 그리고 그 청보라색 미로에시가 입었던것처럼 잘 어울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나에 게 손을 흔드시며 칭찬하시는 그녀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문 밖에는 유테시스가 다리가 아픈지 허리를 숙여 무릎을 손으로 짚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놀래켜주려고 했지만 내가 한 걸음을 다 내딛기도 전에 내이름을 부르는 유테시스의 목소리를 듣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거야?''

''미안 오빠. 폐하를 뵈니 반가워서.''

툴툴거리는 유테시스에게 팔짱을 가볍게 끼고 폐하도 뵜겠다 집에 가자고 말하자 그는 여태껏 기다렸는데 차 한잔도 안하고 간다며 농담조로 투덜거렸다. 결국 어쩔수없이 새끼 손가락을 걸고 집에가서 둘이서 같이 차를 마시겠다고 약속까지 한 후에야 삐죽 튀어나왔던 그의 입술은 들어갈 수 있었다. 황궁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 하나와 유테시스가 단둘이 걸어가고 싶다고 얘기했다는 이유 둘. 그 두가지의 이유들로 인해 마차를 타고 오지 않았던 우리는 황궁에서 나와 조금을 걸었다. 동화에서는 셀레아의 밝은 하늘색 드레스에 차를 뿌렸다가 켈로이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화가 나서 마차를 내버려두고 나온거였지만. 아 근데 이쯤이면 누가 나올때가 됬는데.

''역시 에일린이었구나. 그나저나 티 파티는 어쩌고 여기에..''

조금은 거만한 태도로 말하는 유테시스를 흘겨보며 말하는 한 남자가 유테시스의 살의를 느끼고는 말을 멈춘다. 곧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뻣뻣하게 말아올리며 펠레이시아 영식도 계셨군요, 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한다. 원래 같았으면 나 혼자 그를 만나고 셀레아를 망가뜨리기 위해 그와 손을 잡았어야 했다. 나중에 나를 배신할줄은 모른체. 황제폐하의 반려, 에티스 드세아닌 델키아. 아니 반려였었던 에티스 드세아닌. 여기까지가 내가 알던 부분이었고 한번 동화를 경험해본 뒤에 미리 알게된 부분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마차사고를 일으켜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혐오스러운 놈. 그가 그전의 동화처럼 나를 만나게되었다. 상황은 완전히 바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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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19 23:12 | 조회 : 646 목록
작가의 말
Ellozen

제 부족한 글을 봐주시다니..! 댓글과 하트에 대한 선물로 준비한건 아니구 그냥 분량조절에 실패한거에요! 그럼 전 이만(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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